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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000년 그리스 문명을 '바다'로 읽다··· 국보급 유물 인천에

6000년을 건너온 그리스 문명의 흔적이 인천에 펼쳐졌다.

6000년 그리스 문명을 '바다'로 읽다··· 국보급 유물 인천에

한·그리스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그리스 15개 국·공립박물관 등에서 출품한 유물 348점을 선보이는 ‘그리스, 바다가 빚은 위대한 문명’ 특별전이 오는 12월 6일까지 국립인천해양박물관에서 열린다. /사진=박준영 기자

[국립인천해양박물관=환경일보] 박준영 기자 = 6000년을 건너온 그리스 문명의 흔적이 인천에 펼쳐졌다. 키클라데스 조각과 미케네의 황금 유물, 신과 영웅의 형상에서 고대 군함 삼단노선의 청동 충각과 ‘배의 눈’,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지중해 세계의 확장을 보여주는 황금 화관과 해저 난파선 유물까지 시대와 성격이 다른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신석기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이어지는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된 길은 ‘바다’다.

서양 문명의 뿌리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를 ‘바다’라는 하나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대규모 특별전이 인천에서 막을 올렸다. 신석기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약 6000년에 걸친 문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스의 신화와 민주주의, 전쟁과 교역의 배후에 늘 바다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은 10일 한·그리스 수교 65주년을 기념한 국제교류전 ‘그리스, 바다가 빚은 위대한 문명(The Greeks: Shaped by the Sea)’을 공개했다. 전시는 11일부터 12월 6일까지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무료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그리스 문화부와 공동으로 마련한 국내 최초의 고대 그리스 해양문명 특별전이다. 그리스 국립고고학박물관을 비롯한 현지 15개 국·공립박물관과 국내 3개 기관이 참여해 총 348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이 가운데 그리스에서 건너온 유물은 342점으로, 유물 가액만 약 1182억원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그리스 문명을 ‘바다’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에게해의 교류와 문명의 탄생, 바다를 건넌 신화, 해전과 민주주의, 올림피아와 범그리스 성소,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헬레니즘 세계의 확장 등 5개 주제로 6000년 역사를 조명한다. /사진=박준영 기자

기존 그리스 문명전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리스 문명의 역사를 정치나 예술, 신화가 아닌 ‘바다’를 중심에 놓고 해석했다는 데 있다.

우동식 국립인천해양박물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리스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없이 열렸지만, 바다와 해양문명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구성하자는 제안은 그리스 측에서도 처음이었다고 했다”며 “그리스 측도 이 취지에 맞춰 전국 15개 국·공립박물관의 유물을 새롭게 구성해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는 수많은 섬이 흩어진 에게해와 지중해를 무대로 성장했다. 육지의 경계가 사람들을 갈라놓았다면 바다는 섬과 도시를 연결했다. 사람과 물자가 바다를 건너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신화와 기술, 제도와 문화도 함께 확산됐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에서 ‘위대한 그리스 문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바다에서 찾는다.

전시기획부는 “해양문명이라는 관점에서 그리스 문명 전체를 기획한 최초의 전시라고 할 수 있다”며 “선사시대부터 헬레니즘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면서 세계 문명에 영향을 준 요소들을 5개의 주제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에게해에서 시작된 문명··· 신화와 민주주의도 바다를 건넜다

전시는 모두 5부로 구성된다. 1부 ‘에게해, 이동성과 그리스 세계의 탄생’에서는 키클라데스·미노아·미케네 문명의 유물을 통해 바다를 오간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가 어떻게 그리스 문명의 토대를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미술사 책에서 접했던 키클라데스 조각을 비롯해 에게해의 해양생물이 표현된 유물, 미케네 문명을 상징하는 황금가면 등이 전시된다. 시대별 유물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다가 서로 다른 섬과 지역의 문화를 연결한 통로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2부 ‘바다를 건넌 신화’에서는 신과 영웅을 표현한 조각과 유물을 통해 그리스 신화가 바다를 따라 이동하며 고대 지중해 세계로 확산된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박준영 기자

2부 ‘바다를 건넌 신화’에서는 그리스 신화가 바다와 함께 어떻게 이동하고 확산됐는지를 살핀다. 익숙한 신과 영웅을 표현한 조각과 각종 유물을 통해 신화를 하나의 이야기를 넘어 고대 지중해 세계를 연결했던 문화적 언어로 바라본다.

전시의 핵심은 3부 ‘전쟁과 민주주의’다. 아테네의 해군력과 살라미스 해전을 중심으로 바다의 지배력이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회 변화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 군함인 삼단노선(Trireme)이 적선을 공격할 때 사용한 청동 충각 2점과 선수에 장식했던 ‘배의 눈’이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사진=박준영 기자

특히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군함인 삼단노선(Trireme)의 선수에 장착해 적선을 들이받는 데 사용했던 청동 충각 2점이 공개된다. 배의 선수에 붙였던 이른바 ‘배의 눈’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해외에서 처음 공개되는 유물이다. 그리스 문화부가 약 10년간 진행해 온 해외 전시 프로그램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유물들로, 이번 전시의 ‘해양’이라는 주제에 맞춰 새롭게 선정됐다.

국가 의전용 삼단노선으로 추정되는 배가 새겨진 ‘렌노르망 봉헌비’도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세계 3대 해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과 아테네의 해군력을 실제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전시기획부는 이 부분을 이번 전시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으로 꼽았다. 바다가 단순한 교통로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고, 나아가 아테네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손기정 투구부터 황금 화관까지··· 한국에서 처음 만나는 유물들

4부에서는 고대 올림피아와 범그리스 성소를 조명하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된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를 현지 유물과 함께 선보인다. /사진=박준영 기자

4부에서는 고대 올림피아와 범그리스 성소를 통해 서로 다른 폴리스가 공유했던 종교와 제전의 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가 함께 전시된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된 것으로 잘 알려진 유물이다. 그리스 현지에서 건너온 고대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면서 고대 올림픽의 전통이 현대와 한국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기획부는 “손기정 선수가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가 왜 한국에 오게 됐는지, 현지에서 온 고대 투구와 어떻게 다른지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5부 ‘바다와 대륙을 넘어’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 이후 지중해와 동방으로 확대된 헬레니즘 세계를 다룬다.

대표 유물 가운데 하나는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봉헌된 ‘황금 은매화(Myrtus) 화관’이다. 정교한 금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그리스 예술이 도달한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0세기 초 해저에서 발견돼 수중고고학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는 안티키테라 난파선 출수 유물도 전시장에 나왔다. 난파선에 남겨진 유물을 통해 당시 지중해를 오갔던 물자와 사람, 문화의 이동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은 관람객이 황금 화관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왕관을 쓴 모습을 연출해 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65년 전 수교한 두 해양국가··· 오늘은 조선·해운으로 연결

이번 전시는 고대 그리스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바다’를 매개로 한국과 그리스가 현재까지 이어온 관계도 함께 풀어낸다.

올해는 한국과 그리스가 수교한 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스는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원한 참전국이기도 하다.

산업적으로도 두 나라는 바다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선주와의 인연은 빼놓기 어렵다.

우 관장은 현대가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던 당시 그리스 선주 조지 리바노스로부터 유조선 2척을 수주한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조선산업이 수출산업으로 성장해 오늘날 세계적인 조선국가가 되는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적인 선주국인 그리스와 한국 조선업계의 협력 관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은 고대 해양문명 특별전과 그리스 신화 체험전, 한·그리스 조선산업 협력사를 다룬 팝업전을 함께 선보이며, 내년에는 오만 등과 협력한 아랍 해양문명 특별전으로 국제교류를 이어갈 계획이다. /사진=박준영 기자

박물관은 이러한 현대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한·그리스 조선산업 협력사를 다룬 팝업전 ‘더 퍼스트 웨이브’도 함께 마련했다.

지난 5월 먼저 문을 연 어린이 체험형 테마전 ‘오디세이, 그리스 신화 오디세우스의 대모험’까지 더하면 고대의 해양문명과 신화, 현대 조선산업으로 이어지는 세 가지 전시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은 이번 그리스전을 시작으로 세계 해양문명을 소개하는 국제교류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내년에는 오만 등과 협력해 아랍 해양문명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해외 해양문명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해양유산을 해외에 선보이는 교류도 추진할 방침이다.

우 관장은 “단순히 유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바다가 어떻게 위대한 그리스 문명을 빚어냈는지 느껴봤으면 한다”며 “우리 국민들도 바다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토대인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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