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최근 만기(3년)가 돌아온 정기예금을 재가입하려다 연 2.85% 금리를 제공하는 단기(3개월 만기) 예금을 택했다. 3년 만기 예금 금리가 1년3개월째 연 2.40%로 제자리 걸음을 해서다. A씨는“최근 코스피가 많이 내린 상태에서 주식에 투자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단기 예금에 가입한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단기 예금 금리가 장기 예금보다 더 높은 ‘장·단기(3년과 3개월 만기) 예금금리 역전’ 현상이 심화하면서 고객 수요가 단기 예금에 몰리고 있다.
서울 시내의 한 은행에 예금 금리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중앙일보가 10일 은행연합회에 공시한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를 집계한 결과, 5대 은행 모두 만기가 짧은(3개월) 상품 금리가 만기가 긴(3년) 상품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인 ‘KB Star 정기예금’의 경우 3개월 만기 상품의 최고금리는 연 2.85%에 달했다. 하지만 3년 만기 상품 금리는 연 2.40%에 그쳤다.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 역시 3개월 만기 상품은 연 2.90%의 금리를 제공하지만, 3개월 만기 상품은 연 2.50%에 머물렀다. 이런 현상은 신한ㆍ하나ㆍNH농협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고객이 돈을 더 오래 맡기는 데 따른 기회 비용(포기해야 하는 가치)과 미래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 장기 예금 상품에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금융시장의 상식이 들어맞지 않는다.
김영희 디자이너
최근 상황은 주식시장 호황과 가계대출 규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이 맞물리면서 금리 역전 폭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KB국민은행 상품 금리 추이를 분석해 보면, 근래의 장ㆍ단기 예금금리 역전 현상은 2023년 1월부터 시작됐다. 글로벌 통화 긴축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5% 수준까지 올린 시점이 그때다. 당시 은행권은 고금리 환경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마케팅 전략을 바꿨다. 예금금리가 더 오를 수 있는 상황에선 고객이 당장은 은행에 돈을 맡길 유인이 줄어든다. 이 같은 고객을 붙잡기 위해 은행권이 단기 예금 상품 금리를 빠르게 끌어 올리면서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금리 역전 폭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2024년 10월 이후 안정세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장ㆍ단기 금리가 같아진 뒤(연 2.4%)에는 다시 금리 역전 폭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번에는 증시 호황과 가계대출 규제가 원인이었다. 코스피가 지난해 저점을 찍고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정기예금의 매력도는 크게 떨어졌다. 가계대출 규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6월(6ㆍ27 대책)부터 시행됐다. 대출을 적극 늘릴 수 없게 된 은행들도 굳이 비싼 이자를 주며 장기 자금을 유치할 이유가 사라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선 증시 호황으로 주식 대비 예금의 매력이 줄었고, 은행 입장에선 가계대출 규제로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굳이 장기 예금을 유치할 필요가 없었다. 단기 예금 금리만 올려 고객을 유치하려는 마케팅 전략을 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도 과거에는 ‘안전한 목돈 굴리기’가 목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예금을 주식ㆍ채권ㆍ부동산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기 전 ‘잠시 머무는 파킹(Parking)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전문가들은 특히 금리 인상기에는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해 3개월 단위 단기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등 대기성 상품을 활용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은행권에선 당분간 이 같은 장ㆍ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박현선 KB국민은행 잠실롯데PB센터 팀장은 “주식시장도 조정 국면에 있고, 부동산도 세제 개편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이런 상황에선 단기 예금이나 MMF, 단기 회사채 등에 자산을 파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경석 신한은행 Premier PIB 강남센터 지점장은 “올 연말까지는 단기 예금을 활용하다가 기준금리 추세를 선반영하는 국고채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서면 장기 예금으로 갈아타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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