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취중잡담] 스타트업 문다 신지현 대표 인터뷰
문다의 신지현 대표. /더비비드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도시공원설계자 프레데릭 옴스테드는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정서적 휴식처가 없다면 인류의 정신 건강은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문다의 신지현(29) 대표는 음악으로 센트럴파크 같은 정신적 풍요를 주고 싶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한 악기 레슨 플랫폼으로 출발해 기업 대상의 공연 서비스를 거쳐, 현재 글로벌 온라인 음악 콘텐츠 채널을 운영하며 일상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예술로 적시고 있다. 그를 만나 음악을 축으로, 예술가와 관람자 모두가 행복한 선순환을 구축하는 여정에 대해서 들었다.
외교관을 꿈꿨던 소녀가 창업으로 눈 돌린 이유
신 대표는 대학생 때 창업했다. /더비비드
신지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독도나 위안부 문제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국가에 기여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교관은 개인의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현실을 인식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마음에 품은 뜻을 비즈니스로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진학 후였다. “우연히 접한 대학 오픈 강좌에서 한 교수님이 ‘기업은 경제적 가치 창출을 넘어, 국가나 사회기관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 비즈니스는 선택지에 없었는데요. 그 말에 깨달음을 얻어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좋은 학교 입학, 대기업 입사, 해외 MBA 후 컨설턴트로 근무. 소위 ‘창업 엘리트 코스’를 계획했지만 뜻밖의 계기로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연결하는 O2O 서비스에 매료돼 있었습니다. 전문가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구상하곤 했는데요. 진짜로 그런 서비스들이 시장에 나온 것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상상만 한 걸 누군가는 실행하고 있었던 거죠. 문득 제가 회사에 다닌다고 비즈니스를 더 잘할 수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이후 각종 창업경진대회에 나가는 등 예비창업가 단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제게 맞는 아이템을 찾아 나서기 위해 여러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과외를 10개씩 뛰며 사업 밑천을 마련했죠. 노력은 통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출전을 계기로 시드 투자를 받았거든요. 용기를 얻어 2021년 12월 문다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악기 레슨 플랫폼으로 출발
악기 레슨 매칭 플랫폼 시절 서비스 화면. /문다
첫 사업 아이템은 유초등 악기 레슨 매칭 플랫폼 ‘문다’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의 트럼펫 레슨 강사를 찾다가 구상한 아이디어였다. “동생에게 적합한 강사를 찾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10년 전의 매칭 시스템과 달라진 게 없었거든요. 저 역시 어릴 적에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오래 배웠는데요. 선생님과 성향이 맞지 않아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음악 교육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검증된 레슨 강사와 학생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죠.”
하지만 창업은 예상치 못한 변수의 연속이었다. “학부모들이 교육비 지출에는 적극적이었지만, 한 명의 아이에게 여러 교육 서비스를 분산 지출하는 경향이 있어 결제 단가가 높지 않았습니다. 매칭 플랫폼 특성상 수수료 20%를 넘기 어려워, 레슨 성사 시 얻는 수익이 몇 천원에 불과했습니다. 설상가상 매출이 늘어날수록 운영비도 비례해서 올랐어요. 성장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플랫폼 시절 업무협약을 맺는 모습. /문다
생존을 위해 피벗을 결정했다. 대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음악’이라는 축은 유지하기로 했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어릴 적 음악을 배운 경험이 저를 이루는 근간이 됐거든요. 원래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예체능 활동이 사람을 얼마나 많이 바꿀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창업가에게도 마켓핏(Market Fit) 이란 게 있는데요. 저는 딥테크보다는 문화와 예술의 힘을 사회 문제에 녹여내는 것에 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브라비에서 더 파이널 리허설로
브라비 공연 모습. /문다
고민에 빠진 찰나, 유명 대기업이 로비에서 임직원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는 소식에서 다음 아이디어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디캠프의 프론트원에서 비슷한 공연을 자체적으로 열어봤다. 반응이 좋았다. 첫 사례가 생기니 다른 기업의 문의가 이어졌다. 문의를 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공연에 대한 지불 용의가 개인 고객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기업 맞춤형 음악 공연 큐레이션 솔루션 ‘브라비’(Bravi)를 론칭했다. GS건설, LG화학, 현대홈쇼핑 등 여러 대기업이 임직원 복지 차원에서 브라비를 도입했다. KT는 각 지사에서 런치 콘서트를 열었다. 다만 한계가 있었다. “특정 고객사가 빠져나가자 매출이 반토막났어요. 특정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는 리스크가 컸던 거죠. 지속가능한 모델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TFR 채널 화면. /문다
브라비 공연을 보며 미소 짓던 직장인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이들에게 정신적인 쉼을 누릴 시간을 주겠다는 비전은 유지하고 싶었다. “오프라인 공연의 감동을 온라인으로 전달한다면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글로벌 진출도 가능할 것이라 가설을 세웠습니다. 지난 1월 음악 콘텐츠 채널 ‘더 파이널 리허설’(The Final Rehearsal, TFR)을 유튜브에 개설했죠.”
TFR 채널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월 152명에 불과했던 구독자 수는 두 달 만에 5800명으로 급증했다. “유명 드라마 OST나 K팝, 팝송을 클래식으로 재해석해 콘텐츠의 장벽을 낮췄습니다. 시청자의 70%가 25세에서 44세입니다. 저희가 타깃으로 하는 직장인 연령대죠. 영어로 채널을 운영하는 덕에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글로벌 시청자 비율도 고르게 분포하고 있죠.”
다양한 부가 사업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한 안경 브랜드와 기술검증(PoC)을 진행했다. “성수동에 있는 안경 팩토리를 배경으로 연주자들이 안경을 쓰고 공연하는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성수동과 클래식. 이질적인 것을 엮어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목표였죠. 광고인듯 광고 아닌 고감도 콘텐츠를 지향합니다.”
연주자에게는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 보장
신 대표는 각 서비스를 기획할 때마다 음악인들의 처우 개선 방안을 고려했다. /문다
신 대표가 피벗을 거듭하면서도 놓지 않은 본질은 음악인들의 생태계 개선이다. “문다 시절부터 명문 음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실력자들이 생계 문제로 음악을 포기하는 현실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클래식 공연 파이를 뺏는 것이 아니라, 기업 로비 공연, 유튜브 같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짰습니다.”
그렇게 300명 이상 검증된 음악인들을 확보했다. “연주자는 브라비에서 공연 기회를 얻고, TFR을 통해 연주 기회를 얻으면서 포트폴리오까지 쌓을 수 있습니다. 연주자들에게는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보장합니다. 한 달에 400만원 이상 정산 받는 연주자도 있어요. 연주자분들에게 늘 우리는 갑을 관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합니다. 저희가 연주자 생태계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고 인식할 때마다 이 일을 멈춰 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
문다 팀 단체 사진. /문다
문다는 2021년 디캠프, 브이엔티지, 부엉이벤처스로부터 시드투자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3월 그랜드벤처스와 전북대투자조합으로부터 시드 브릿지 투자를 유치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300명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TFR을 홍보, 마케팅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짜고 있다. 신규 개봉 영화, IP비즈니스, 공간 마케팅, 한국 진출을 앞둔 해외 기업 등 TFR에 적합한 영역을 고민 중이다.
신 대표의 계획은 명확하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예술가와 관객 모두가 이득을 보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2040대 직장인이 저희를 통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적인 휴식을 누렸으면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과 음악 생태계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시키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신 대표는 인공지능(AI) 도입 속도가 빨라질수록 ‘진짜 음악’같은 예술의 가치가 더욱 빛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10년 뒤에 무엇이 바뀔지가 아니라, 무엇이 변하지 않을지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10년 뒤에도 인간성, 그리고 예술이 주는 인간적인 감동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AI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듣기 좋은 멜로디를 출력할 수 있지만, 연주자의 개별적인 해석과 그 안에 담긴 인간적인 고뇌까지 복제할 수는 없습니다. 연주자에 따라 다른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음악의 본질입니다. 음악으로 행복도를 높여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제가 멈추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온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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