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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2026년 한국의 외로운 '자결권'

미국은 한국을 대중국 봉쇄의 소모품으로 여기며 반도체와 첨단 기술 공급망에서의 희생적 동참을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이제 미국에게 지난날의 '동맹'이란 가치를 공유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2026년 한국의 외로운 '자결권'

백승종 역사학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는 2026년,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보호를 받는 안식처가 아니다. 미국은 한국을 대중국 봉쇄의 소모품으로 여기며 반도체와 첨단 기술 공급망에서의 희생적 동참을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이제 미국에게 지난날의 '동맹'이란 가치를 공유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이자 하수인에 불과한 듯 보인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일·한 삼각 안보 체제라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 갇혀 독자적인 외교적 선택권을 사실상 박탈당하고 있다. 워싱턴의 권력자들은 한국의 안보적 우려보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전략적 우위를 최우선에 두는 냉혹함을 숨기지 않는다.

'동맹'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매달려 주변국과의 관계 파탄 내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우' 범하지 말아야

과거 우리가 굳게 믿었던 미국의 안보 우산은 이제 구멍 난 낙하산처럼 그 신뢰를 급격히 잃어가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의 망령은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미국 정치권 전반에 뿌리내렸으며, 그들은 자국 이익이 침해될 때 언제든 동맹을 저버릴 태세다. 미국 지식인들 역시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보다는 북핵을 명분 삼아 동북아에 군사력을 주둔시키는 현상 유지에만 골몰한다. 그들에게 북한은 더 이상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자국 방산 산업의 명분을 제공하고 중국을 압박하는 유용한 핑계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한반도의 유사시에 피를 흘리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고 판단하며 여차하면 경제적 보복과 외교적 무시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베이징의 지도부는 한국을 동등한 주권 국가로 대우하기보다 명·청 시대의 변방 국가쯤으로 치부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일본 역시 이러한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재무장을 시도하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확대하려 획책한다. 주변 강대국들이 각자의 제국주의적 욕망에 충실한 상황에서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 우리는 동맹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매달려 주변국과의 관계를 파탄 내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잃어버린 '자결권' 회복하고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주체적인 몸부림' 필요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포하며 러시아와의 군사 밀착을 통해 남측과의 대화 창구를 완전히 봉쇄해버렸다. 이제 북한도 더는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냉전 구도 속에서 핵 무력을 과시하는 길을 택했다. 2018년에 우리를 잠시 들뜨게 했던 대화 분위기는 이미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고, 평화 조약이나 관계 정상화는 기약 없는 망상이 되어버렸다. 설사 제갈공명이 다시 살아나 중재에 나선다 해도 이미 굳어진 강대국 간의 대결 구도를 깨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은 이러한 긴장 국면이 자국의 동북아 통제력을 강화한다고 믿으며 남북의 대립을 은밀히 조장하고 있다.

역사가로서 필자는 우리가 1870년대 후반 자결권을 상실했던 그 치욕적인 역사의 입구에 다시 서 있음을 느낀다. 15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민족의 운명을 타국에 맡기는 비극적 순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맹목적인 동맹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만약 무너져가는 동맹의 가치에 매달려 국가의 자아를 잃어버리다면 이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잃어버린 자결권을 회복하고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주체적인 몸부림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마 그 점을 분명히 알고 있을 테지만, 휘하의 고위 관료들이 동맹의 망상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가, 전 서강대 및 독일 튀빙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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