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씨(36·이마트 가전바이어)는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아들 단하(1년 5개월)를 업고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올랐다. 아들 몸무게 11~12kg에 젖병과 기저귀, 겉옷까지 챙기면 어깨에 걸리는 총중량이 17kg 안팎이다. 트레일러닝 마니아였던 그는 주말마다 이 무게를 지고 전국의 산을 올랐다. 하루에 많게는 4개의 산을 연달아 오르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본인을 위해 선택한 동행 등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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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씨가 아들 단하를 업고 산을 오르고 있다. 트레일러닝 마니아였던 박 씨는 단하가 태어난 뒤 아내와 자신을 위해 아들을 업고 주말 산행을 시작했다. 올 4월부터 지난달까지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박선호 씨 제공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등산 캐리어부터 샀어요. 아이가 생기면 제 운동만 챙길 수 없다고 생각했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운동도 하고 싶었는데, 답이 애를 업고 등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말에 제가 아들을 데리고 나가면 아내는 집에서 쉴 수 있죠. 저는 아들과 추억을 쌓으며 운동하게 되죠. 아내가 원하면 같이 가기도 하고요.”
박 씨는 아내 박채형 씨(32)가 걱정할까 봐 처음에는 아들을 업거나 유모차에 태워 동네 평지부터 같이 걸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100대 명산을 오르기 전엔 서울 종로구 서촌 집에서 가까운 인왕산과 북악산, 남산을 올랐다. 그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보니 아내도 안심했다”고 했다.
박 씨 부자의 주말 산행은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에게 삶의 여유를 안겨 줬다. 주말엔 육아란 짐을 벗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평소 몸 쓰는 일을 좋아했던 아내도 부자 산행 약 5분의 1을 함께 했다. 아내도 평소 걷기를 즐기고, 축구와 수영, 농구도 했던 활동적인 성격이다. 부자의 첫 산행은 북한산, 가족 전체의 첫 산행은 지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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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씨(오른쪽)가 올해 5월 아내 박채형 씨, 아들 단하와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박선호 씨 제공
비가 오지 않으면 휴일엔 어김없이 산을 탔다. 하루에 2개, 3개를 오르는 날이 많았고 4개를 오른 적도 있다. 충남에서 칠갑산과 오서산, 용봉산, 가야산 정상을 하루에 다 밟았다. 박 씨는 “100대 명산 하시는 분들이 최단 코스를 많이 오른다. 나도 그렇게 다녔다. 북한산 쪽은 산들이 이어져 있어서 능선을 타고 이어 붙이면 하루에 두세 개는 가능하다”고 했다. 트레일러닝으로 다져온 탄탄한 다리가 여기서 힘을 냈다.
“아들 돌 때 아내와 함께 지리산에 간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게 가족 첫 등반이었죠.”
멀리 나가는 날은 부모님이 함께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행해 주셔서 아기를 봐줄 손이 있었다. 연휴가 있으면 가족 여행을 겸해 아예 멀리 나갔다. 전국을 돌아야 하니 여행과 산행을 겹쳐 놓는 방식이었다.
아들은 산에서 잘 적응했다. 문제는 체력이 아니라 지루함이었다.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짜증 내지는 않았어요. 잠도 잘 자고요. 그냥 산행이 길어지면 못 움직이니까 답답해했죠. 그런데 100대 명산 완등이 끝나갈 때쯤, 아이가 걷는 맛을 알아버린 다음부터는 자꾸 내려달라고 졸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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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씨가 아들 단하와 함께 계룡산 관음봉에 올랐다. 박선호 씨 제공
내리막은 아기에게 자는 시간이다.
“계속 흔들리니까 요람 탄 것 같아서 잠을 잘 자요. 우리 아기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하산 땐 다 자고 있어요.”
가장 힘든 건 산이 아니라 운전이었다. 아기는 잘 있고 어머니가 봐주시는데, 멀리 가는 길의 운전대를 몇 시간씩 붙잡고 있는 게 고역이었다고 했다.
박 씨는 트레일러닝계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2015년 해군 장교 시절, 배 위 생활이 답답해 달렸다. 자연스럽게 마라톤도 시작했다. 2017년부터 산 달리는 재미에 빠졌다. 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 잇는 ‘불수사도 산악마라톤클럽’에 들어가 매일 새벽 산을 탔다. 입문 2년 만에 2019년 코리아 80km 15시간 8분(15위), 거제 트레일런 100km 22시간 11분(20대 1위), 서울 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 100km 14시간 59분(6위)을 찍었다. 2021년 5월에는 서울 둘레길 160km를 22시간 32분에 완주했다. OSK(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가 2015년부터 비공식적으로 연 이벤트성 대회에서 이렇게 빠른 기록은 처음이었다.
빅선호 씨가 2021년 5월 열린 서울 둘레길 논스톱 트레일러닝 160km 특별 이벤트에서 22시간 32분으로 1위를 한 뒤 상품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OSK(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 제공
2023년 7월 서울트레일런 42km 2위를 차지한 뒤 대회 출전은 멈췄다. 아내를 만나 연애하고 집을 짓고 결혼해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신혼여행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박 씨는 매일 10km를 달린다. 하루는 경복궁 둘레(약 2.5km)를 세 바퀴 돌고 집까지 왕복해 10km를 맞춘다. 청계천, 인왕산, 한양도성길, 북한산 등을 달리기도 한다. 회사까지 편도 2km 넘는 길도 걸어서 출퇴근한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주 3~4일, 한 시간씩 한다.
이렇게 운동을 하는데 체중은 10kg이 늘었다. “아들을 업고 하루에 산을 두 개, 세 개를 올라도 산을 달리던 운동량에는 못 미쳤어요. 아들이 태어나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해 근육량이 늘어난 측면도 있습니다.”
박선호 씨(오른쪽)가 2021년 5월 열린 제19회 불수사도북 클라임바톤( Climb+Marathon) 대회에서 5시간 50분 7초로 2위를 한 뒤 1위 신영하 씨와 함께 포즈를 취쟀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박선호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모습. 박선호 씨 제공
박 씨는 다시 트레일러닝을 하려고 몸을 만들고 있다. 충남 태안 안면도에서 경북 울진 망양정까지 849km 동서트레일을 완주할 계획이다. 일부 임시 개통했고, 내년 완전 개통 예정인 트레일 및 트레일러닝 코스다.
“원래 최고의 버킷리스트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 산을 달리는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을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실행할 수 없으니 동서트레일을 하고 싶어요. 길이 안전하게 잘 나와 있다고 해서요. 아들이 어리니까 혼자서라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국토 종단 마라톤 완주도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전남 해남에서 강원 고성까지 622km를 달리는 극한 레이스다. 국토 종단을 하려면 인천 강화에서 출발해 강원 강릉까지 308k를 달리는 국토횡단을 먼저 완주해야 자격을 얻는다. 조만간 순서대로 밟을 생각이다. 수영을 못해 미뤄둔 철인3종도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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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씨가 아들 단하와 함께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다. 박선호 씨 제공
하지만 욕심은 버렸다. “제가 예전처럼 잘하려면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해요. 지금은 그게 안 되죠. 가족이 먼저입니다. 시간 날 때 틈틈이 몸 만들고 짧게 시간 내 도전할 계획입니다.”
박 씨는 속도는 내려놓았지만, 삶의 여유를 찾았다. 벌써 내년 3월 둘째가 태어날 때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산행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블랙야크 선정 100대 명산을 올랐어요. 찾아보니 100대 명산 선정 주체가 4곳이더라고요. 다 합치면 150개쯤 돼요. 둘째랑은 중복되는 것을 빼고 다시 100개를 오르면 됩니다. 첫째가 초등학교 갈 때쯤엔 3부자가 함께 걸어서 오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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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씨가 아들 단하와 함께 100대 명산을 올랐다는 인증서. 박선호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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