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2015년 흥사단 투명 사회운동본부 윤리 연구센터가 청소년 정직 지수 조사를 했다. 전국 초·중·고등학생 약 1만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것이다. 질문 중 하나가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저질러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냐?"였다. 그 결과 고등학생의 56%가 "괜찮다"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중학생은 39%, 초등학생은 17%로 비슷하게 답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청소년 윤리의식을 보기 위한 설문 결과이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금전, 윤리에 대한 가치관을 파악하려는 목적이었다. 초등학생과 고교생의 정직성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 위주 교육 방식으로 청소년의 공동체 의식과 윤리와 도덕의식이 황폐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관련 수치는 더 높아지는 추세다. 취업은 어렵고, 연애나 결혼도 돈이 없으면 못 한다. 집값은 도저히 생전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도 생긴다.
캄보디아에서 유혹한 고액 알바라는 것이 보이스피싱 등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청소년들이 대거 갔던 것도 어쩌면 이런 비뚤어진 윤리의식과 가치관 때문인지 모른다. 누가 피해를 볼지 모르지만, 비대면으로 외국까지 가서 전화 금융사기에 종사하면서 한몫 쥘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런 청소년들의 윤리의식으로 볼 때 언제 어디서 범죄가 일어날지 모르니 사회 안전 등에 비상등을 켜야 한다.
10억원의 가치는 사실 어지간한 보통 성인들 기준으로 봐도 큰 돈이다. 지금은 아파트 가격이 워낙 많이 올랐지만, 집 하나 있고 10억원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면 살아가는 데 별 지장 없을 정도로 넉넉한 돈이다. 노후 대비 3억원만 있어도 실질적으로 별문제 없고 10억원이라면 꽤 든든하게 생각될 금액이다. 백만장자가 백만 불을 의미한다면 15억원이다. 부자라는 상징적 기준선인 동시에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나는 1차 목표선이라 할 수 있겠다.
1988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 터미널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18년 동안 머물렀던 1945년생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의 자전적 실화 <The Terminal Man>이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터미널'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는 이 영화 덕분에 27만5,000불(한화 약 4억원) 의 저작권료를 받았지만, 돈도 제대로 못 쓰고 공항에 돌아와 2022년 70대 중반에 샤를 드골공항에서 작고했다고 한다. 정신적 방황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돈도 제대로 못 쓰고 공항으로 돌아간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무국적자라서 취업도 안 되고, 의료 보험, 금융 등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흥사단 조사처럼 1년 수감 생활과 바꾼 범죄의 대가로 받은 10억원만으로는 여생에서 충분한 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전과자라서 결혼도 어렵고 취업도 안 되면 10억원 까먹는 것은 순식간이다. 실제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기 어렵다.
흥사단 조사 자료를 보고 혀를 끌끌 찰 일이 아니다. 내 자식들과 손주들까지 그 수치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수십 년간 고집해 온 줄서기 입시제도와 치열한 경쟁 구도, 그리고 배금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때이다. 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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