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월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자신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공판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사건 마지막 공판이 5일 마무리됐다. 서울고법 형사12-1부(재판장 이승철)은 이날 윤 전 대통령 사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8명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심 변론 절차를 종결했다.
윤 전 대통령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구치소 방에서 공책에다 펜으로 눌러 써왔다”며 약 1시간20분에 걸쳐 최후진술을 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1심과 마찬가지로 사형을 구형했다. 특검은 “12·3 내란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4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한, 용서받지 못할 헌정 파괴 범죄”라며 “사전에 세운 계획이 틀어진 것을 이유로 형을 감경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날 재판이 모두 끝난 뒤 윤 전 대통령은 검사석으로 가 특검팀 한명 한명과 악수를 나눴다. 이후 방청석에 있는 지지자들을 향해 “날이 추운데 많이 와줘서 고맙게 생각한다”며 “여러분들의 응원이 많은 힘이 된다”고 했다. 이어 다른 피고인, 변호인들과도 악수를 나눴다. 그는 “좋은 책을 많이 (넣어)달라”며 “
역사책 내가 좋아하니까. 전쟁이나 이런 거 있잖아”라고 말한 뒤 법정을 떠났다.
아래는 윤 전 대통령의 최후 진술 전문.
우리나라 정치사와 사법사에 오래 남을 이 사건에 관해 실체 진실을 찾기 위해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재판부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2024년 12월 3일 22시 27분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고, 약 2시간 30분 후인 12월 4일 시1분에 국회는 계엄해제요구를 의결하였으며, 저는 국회의 요구를 즉각 수용하여 국회와 선관위에서 병력을 철수시켰고,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하였으며, 군의 계엄 상황을 종료시키고 12월 4일 새벽 4시30분에 국무회의 정족수가 확보되자 계엄을해제하였습니다. 국무위원 소집이 다소 지체되자 국무회의 전에 먼저 계엄을 곧 해제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도 실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는 현대 국가에서 볼 수 없는 초유의 줄탄핵을 반복하고, 안보, 치안 등 국가의 본질 기능에 관해 헌정사상 초유의 일방적 예산 삭감을 단행하였으며, 건전재정과 투자·일자리 등 국가의 미래를 무너뜨리는 위헌적인 법률을 반복 상정하고, 국정을 발목 잡는 입법 폭거를 일삼았습니다. 헌법이 예정하는 숙의 과정도 생략된 입법·예산·탄핵 폭거는 위헌적인 입법권 남용이자 입법 독재로서 국정운영을 지속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국헌문란 행위였습니다.
헌법재판소도 거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고뇌가 깊었다는 점을 누차 설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전횡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법률안 제출권,헌법 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회부권, 위헌정당 해 산 심판청구권 같은 헌법상 권한으로 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헌재가 제시한 이러한 권한 행사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대외적으로 국권 침탈 적대세력과의 무제한적인 하이브리드전, 대내적으로는 여러 건의 간첩사건 판결문에서 드러난 북한의 지령과 그 이행실태와 같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의 연합공격에 대응하여, 안보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체제를 뒤집으려는 세력들은 민족·민주·자주라는 미명으로 그 정체를 위장하면서, 이 나라 곳곳에 뼛속까지 침투해 있습니다. 노동·교육·미디어·문화 등 모든 분야에 진지와 카르텔을 구축한 체제 전복 세력들이 정치 분야를 내버려둘 이유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간첩사건 판결문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국정 전반에 관해 가장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늘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습니다. 취임사, 3·1절 및 광복절 경축사, 유엔기조연설, 미의회연설 등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하여 한미동맹을 핵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하였고, 한미일 안보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안보, 경제, 과학 기술, 사이버 등 모든 협력의 중심축을 우리나라와 헌법 가치를 공유하는 자유진영 국가들에 놓았습니다. 그럴수록 체제전복 세력은 거대 야당의 힘을 빌리고 합세하여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에 반하는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그 체제를 지키는 방법 역시 자유민주주의적이어야 하므로 그 핵심인 법의 지배 원칙, 즉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체제전복세력의 실체를 깨닫고 경계와 감시 및 비판의식을 확고히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안보와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해서는 주권자의 각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값비싼 첨단무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적대세력의 공격에 대해서 이런 무기가 나라를지키는 게 아니고 주권자인 국민의 국가관, 가치관이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저는 선동탄핵, 방탄탄핵과 같은 줄탄핵이 계속되는 가운데, 선관위 직원 채용부정과 사드배치 군사기밀 누설을 감사하는 감사원장을 탄핵하고 형사사법의 핵심기관인 서울중앙지검장과 핵심 간 부들을 탄핵하겠다고 거대 야당이 또 나섰을 때,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는 핵심 감시·정찰·데이터링크 예산이 일방 삭감되는 걸 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더 이상 그냥 방치될 수 없는 국가위기이고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저는 헌정붕괴와 국정마비로 나라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주권자에게 알리고 각성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장서서 십자포화를 맞더라도 위기를 자각한 국민과 함께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거대 야당도 체제 전복세력과 거리를 두고 우리 헌정질서를 지키고 국정을 회복하는데 결국 동참할 수 있으리라 보았습니다. 자기들도 정권을 잡으 려면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리라 본 것 입니다.
저들은 헌법상 권한을 남용해왔지만, 저는 헌법의 틀 안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군 투입을 최소화하여 국회에 질서유지 병력과 선관위에 보안 점검팀만 보내고 계엄선포 는 TV생중계로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하면서 국가위기 상황과 원인, 국민에 대한 호소 등을 담기로 하였습니다. 대국민 담화를 하면 예산국회 시기에 국회에 많은 의원, 직원, 기자들이 있을 텐데, 그에 더하여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 것이 예상되어 소수의 실무장하지 않은 병력을 보내 안전사고 방지와 질서유지를 맡기고, 거대 야당이 선관위를 감사하는 감사원장을 탄핵하여 직무정지를 시키려는 의도가 선관위 비호를 위한 것이라 판단되었고, 23년도 국정원의 선관위 보안점검 결과를 떠올려 방첩사와 사이버사령부의 전문가를 보내 선관위 전산시스템 해킹대응 보안점검 이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사이버사령부는 국내 최고의 해킹 대응 조직이므로 기본적인 보안 상태를 금방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한편 23년 하반기 이종섭 국방장관 탄핵추진으로 국방장관 직무정지를 막기 위해 교체된 신원식 국방장관에 대한 탄핵이 24. 7. 또 추진되었습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오물풍선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9·19 군사합의로 포기한 전방 감시·정찰 자산 의 회복과 대북 확성기 재개,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파병 모니터단 파견 계획을 이유로 신 장관까지 끌어내리려 한 것입니다. 어느 나라 국회인지 정당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신원식 국방장관을 국가안보실장으로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장관으로 지명하자(이 두 사람은 육사 1년 선후배로 합참 작전부장과 수방사령관 등 주 요보직을 인수인계한 사이임) 이제는 고교동문인 김용현을 국방 장관에 앉히려는 걸 보니 계엄을 준비하려는 것이라고 공격하면서, 24. 8. 민주당 최고위에서 “계엄을 하면 즉각 무산시키겠다”고 선언한 것을 비롯하여 24. 9. 국방장관 인사청문회, 24. 10. 국정 감사 등에서 계속 계엄 이슈를 들먹이며 계엄을 선포하면 바로 무산시키겠다고 호언하였습니다. 나중에 야당의 계엄 유도설이 등장할 만큼 거대 야당은 오히려 국정 마비 공세를 가속화하면서, 아울러 계엄 대비 비상계획까지 준비하고 있을 것이 충분히 예상되었습니다.
저는 감사원장 탄핵소추가 구체화된 24. 11.말~12. 2. 오직 김용 현 국방장관과 단 둘이서만 계엄에 관해 논의하였습니다.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호소형 계엄선포이고 군의 투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극도의 보안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 장관에게 부사관 이상 숙련된 간부로 비실무장 병력 250~280명의 2개 팀을 구성하여 1개 팀은 국회질서유지를 위해, 1개팀은 선관 위 몇 곳에 분산 투입하되, 12. 2. 야당도 정무적 부담으로 감사원장 탄핵발의를 안 하면 계엄은 없었던 일로 하고, 발의를 하면 그 다음 날인 12. 3. 시민들 퇴근시간 후인 밤10시경 생방송으로 계엄선포를 한다는 지침을 주었습니다. 또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 전까지 일체 누구에게도 보안을 유지하며 투입될 부대 지휘관에게도 알리지 말고, 대국민 담화 이후에 소속부대에서 투입인원을 선발·출동시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원심재판에서도 모두 객관 적으로 확인되고 인정된 팩트입니다.
당시는 정기국회 마지막 예산국회 기간이었고 국회본관과 의원회관에 의원들과 직원들이 늦게까지 남아있고, 관계 행정부처 공무원들도 인근 오피스텔을 얻고 철야근무하며 국회와 일하고 있을 때이며(그래서 예산안이 통과되면 22년 12월, 23년 12월 수고한 공무원들을 대통령실에 초청하여 격려 만찬을 베풀어 주었음), 소통관에는 적어도 수백 명 이상의 기자들이 남아 있을 상황입니다. 제가 정기국회 회기 이후나 주말에 계엄을 선포하지 않고 예 산국회 시기 특히 감사원장 탄핵소추의결 전날인 주중 평일에 계 엄을 선포한 이유는, 그동안 거대 야당이 계엄을 선포하면 즉시 해제 요구하여 무산시키겠다고 했으니 대통령은 헌법상 권한으로 선포하고 국회는 국회권한으로 해제 요구를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서로 당당하게 헌법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국회질서유지와 선관위 보안점검 이외 다른 것은 준비한 것이 없었고, 거대 야당이 즉시 계엄해제요구를 의결할 것이니, 이를 바로 수용하여 계엄 해제를 하고, 그 이후부터 계엄선포의 원인이 된 자신들의 잘못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를 공격할 것이 분명하므로, 저도 지금까지 자제해온 거대 야당의 패악에 대한 비판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나라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상세히 알리고 대응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김용현 장관에게도 충분히 숙지시키고,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들의 국회 출입에 불편이 없도록 하라고 각별히 당부하였습니다.
제가 계엄을 해제하자마자 거대 야당은 탄핵소추와 내란몰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이후로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과 탄핵 반대 여론이 50%를 훌쩍 넘었고, 여론조사기관에 대한 조사방해와 압력이 들어올 정도였으며, 탄핵반대 집회가 탄핵찬성 집회보다 10~20배 이상 규모를 이루었고, 수많은 고교생, 대학생, 청년층까지 탄핵반대와 계엄지지에 나섬으로써 거대 야당과 체제전복 세력에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만일 제가 탄핵소추로 직무정지되지 않고 대통령실과 정부 내각의 조력을 받아, 또 정부 인사들과 함께, 거대 야당의 반헌법적 전횡과 체제전복세력의 실체를, 또 그로 인한 국가위기 상황을 국민들에게 더 자주 더 소상하게 설명했다면, 무너진 헌정질서와 마비된 국정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끌어내라고 했다는 날조로 내란 프레임을 만들어 일사부재의 원칙도 잠탈하고 탄핵소추를 밀어부친 후 정작 헌재 심판에서 내란의 점은 심판청구 철회를 한 것은 헌 정사의 코미디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24년 12월 3일 23:15~23:34까지 짧게 5번, 1시간 10분 지나서 12월 4일 00:48 1번 모두 6번 경찰청장에게 현장 상황을 묻는 전화를 했습니다. 23:15~23:34 시간대는 경찰에서 계엄해제요구안 심의의 결권을 가진 국회의원과 이를 보좌하는 직원들은 헌법상 국회출 입을 막을 수 없다는 자체 법률판단 하에 국회의원과 직원들을 게이트를 통해 출입시키고 있었고, 23:15 통화 시 경찰청장은 사람들이 국회경내로 마구 몰려가서 일단 게이트를 차단하였다가 (gate 1차 차단), 서울청장 김봉식의 법률검토 결과 국회의원과 직원은 들여보내야 한다고 하여 출입시키고 있다고 제게 보고하였고, 저는 “당연히 그래야지. 김 청장이 수사통이어서 법을 잘 아네, 잘했어, 그렇게 하세요”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경찰청장은 국회 게이트 관리는 계엄군의 소관으로 알고 있었는데 군이 오지 않아 자기들이 하는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보고했습니다.
저는 공무원 시절이나 선거운동 시절 국회를 자주 가 보았지만 야간에는 게이트를 대부분 닫고 몇 개만 열어 놓고 출입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소수의 비무장 질서유지 병력도 본관 앞 경내 마당에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였지 게이트 관리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김용현 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엄선포 3시간 전 경찰지원을 요청한 것도 국회경외 외곽에서 인파관리와 안전사고 예방을 당부한 것입니다. 또 TV에서 본관 현관으로 국회의원들이 계속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외부에서 경내로 들어오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항소심에서의 국회 CCTV영상 검증에서도 의원회관 앞 경정문을 통해 신분증을 태그하고 회전문으로 계속 들어가는 것이 확인되었고, 서울경찰청장 김봉식은 24:00까지는 2차 차단이 사실상 집행되지 않았다고 하고, 국회경찰대장 목현태는 자신이 경정문 관리를 국회경찰대에 맡겨 국회의원과 신분증 소지자는 그 이후에도 모두 출입시켰다고 증언하고 있어 CCTV 영상과 일치합니다. 민주당 관계자들에게도 경정문으로 들어오면 된다는 카톡이 공유되었다고 합니다. 게이트 옆 회전문을 통해 국회의원과 직원들의 출입에는 지장 없이 조치한 것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청장은 헌재 심판 시부터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계엄 해제 직후 대통령으로부터“경찰의 초기 출입조치로 계엄이 빨리 해제되고 잘 끝났다”는 격려 전화를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김봉식 서울청장 등은 2차 차단조치가 포고령 발령에 따른 경찰자체 판단이었다고 진술하지만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계엄해제요구 심의·의결권이라는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들여보내야 한다고 23:07 이전에 판단했다면 “계엄령의 하위규범인 포고령은 계엄이 해제되면 당연히 효력을 잃는 것인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실상 의원과 직원의 출입조치가 이루어져 12. 4. 00:47에는 이미 190명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착석하여 계엄해제요구 심의에 들어가고 12. 4. 01:01 요구안이 190명 찬성으로 가결됩니다.
원심의 어이없는 증거 판단에 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경찰청장은 24. 12. 수사초기부터 제가 12. 3. 23:15~23:34, 5번 12. 4. 00:48 1번 모두 6번의 통화에서 자신에게 다짜고짜 “국회 들어가려는 의원들 모두 체포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25. 11. 이상민 장관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말을 바꾸어 제가 “담 넘어가는 의원들을 체포하라”고 했다고 증언했으며, 25. 12. 이 사건 원심에서 같은 증언을 했습니다. 23:15~23:34에는 의원들과 직원들을 출입시키고 있었는데, 그러면 게이트에서 의원을 체포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몰려있던 인파들 사이에서 난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의원과 직원들 출입은 헌법상 권리라서 들여보낸다는 보고를 받고 칭찬과 격려까지 해 놓고 바로 게이트에서 의원들을 다 체포하라고 한다는 말인가요? 소수의 기동대 경력밖에 없는데, 그냥 의원들을 현장 기동대에 맡겨 아무나 마 구 체포한다는 말입니까? 또 12. 4. 00:48에는 이미 190명이 착석하여 본회의가 시작되었는데 어디서 누구를 체포한다는 말이며, 12. 3. 23:15~23:34 통화 시에는 담 넘어가는 의원이 없었고 보이지도 않았는데 담 넘어가는 의원을 어디에서 체포한다는 말입니까? 경찰기동대가 의원들을 체포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요? 1차와 2차 게이트 차단이 경찰 자체 판단으로 경찰청장 자신의 재가로 이루어져 의결 방해로 형사 책임을 지게 될까 봐 저의 체포지시를 거부하여 계엄 해제의결이 이루어지게 한 공로가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조지호 경찰청장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란몰이를 당하여 억울한 상황을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만 진상은 상식에 기해 정확히 판단되어야 합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제가 자신에게 국회에서 “인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하여 “의원”이라 이해하고 부하들에게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한 것이라 증언하였습니다. 곽종근이 여단장에게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시각은 12. 4. 00:24이고 군 통신망에 녹음되어 있습니다. 여단장이 대대장에게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시각은 12. 4. 00:30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전사 병력은 00:20까지만 해도 의원과 민간인을 분리하여 불법 진입하는 민간인을 나오게 하고 의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임무가 하달되었는데, 갑자기 00:24 곽종근이 여단장에게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돌발적인 지시를 합니다.
특검은 정부비화폰 통화내역이 없을 때, 제가 12. 4. 00:20 곽종 근에게 국회에서 “인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했습니다. 곽종근은 전후 사정상 “의원”으로 받아들였다고 했고요. 저는 헌재 탄핵심판정에서도 제 기억에 00:30 이후에 곽종근에게 전화해서 현장 상황을 물어보니 잘 몰라서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하였더니 본부 지통실이라고 해서 “아 영상으로 지휘하는 거구만 요 수고하세요”라고 통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통화 시간은 40초이고 그 이후 전혀 곽종근과 통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원”이라는 말을 일반인들은 “인원수”라는 뜻으로 쓰고, 군인 이나 예비역들은 “인원”이라는 말을 군인이나 예비역인 사람을 지칭할 때 쓴다고 합니다. “그 인원 실력이 출중해” 이런 식으로. 24. 12. 6. 김병주TV에서 곽종근은 김병주에게 “요원, 인원 끄집어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다가 옆에서 박선원이 “의원이라고 해야지” 하니까 말을 바꾸어 “의원 끄집어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후 헌재 재판관 질문에 “의원”이 아니라 제가 분명히 자기에게 “인원”이라고 했다고 답변했습니다. 24. 12. 4. 00:19 김용현 장관과 곽종근의 비화폰 통화내역(1분42초)이 나오는데 김 장관은 이 통화에서 “본관 현관에 인파가 많은데 안으로 들어가려는 특전사 요원, 인원들 민간인들과 충돌 생길 수 있으니 끄집어 내”라고 했다 합니다.
국방장관의 특전사 요원, 인원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대통령의 의 원 끌어내라는 지시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25년 중반기 정부비화폰 통화내역이 드러났습니다. 제가 곽종근에게 통화한 시각이 12. 4. 00:31(40초)로 확인된 것입니다. 특검은 시간을 끌다가 원심 결심 단계에 가서 통화 시각을 12. 4. 00:20에서 00:31 으로 공소장 변경하였습니다. 25. 11. 곽종근은 원심 증언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부하들에게 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했다는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대통령이 이미 수방사령관에게 그와 같은 지시를 하고 수방사령관이 공수여단장에게 전달한 것 같다고 말을 바꾸었지만, 비화폰 통화내역 확인 결과 제가 수방사령 관과 통화한 시각은 곽종근과 통화한 00:31 이후인 00:32~00:36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다시 자기가 먼저 부하들에게 그런 지시를 했고 나중에 대통령이 00:31 또 그런 지시를 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재차 하달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곽종근의 진술과 증언 어느 것이나 도대체 믿을 수 있습니까? 본관 안에 진입한 707특임대장 김현태는 본회의장이 어딘지도 몰랐고 오직 본관 정문인 정현관으로만 가려 했다고 합니다. 거기가 자기 임무위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곽종근 사령관으로부터 본회의장에서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국회 CCTV 영상에 고스란히 나옵니다. 국회 사정을 모르는 곽종근은 본회의장에 들어가 의원을 끌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국회에 자주 가본 대통령이 전국에 전세계에 중계방송 되는 본회의장에, 또 그 안에 수천 명의 의원과 직원들이 있는 가운데 실무장도 안한 소수 병력이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 계엄사령관은 특전사에게 국회에서 공포탄조차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원심은 이런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을 버젓이 내란의 증거로 채택해 사용합니다. 참으로 기막힐 노릇입니다.
국회본관 앞마당에 있던 특전사 병력 80여 명은 음주상태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이 계엄 이거 빈총으로 쇼하는 거네” 라고 하면서 폭행을 당했지만, 총기 등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소 극적으로 저항하고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대응하지 않고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모두 국회질서유지와 안전사고 방지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체포에 관한 계엄사무를 지시했다는 주장도 황당합니다. 국정원은 수사권이 아예 없고 홍장원은 해외업무담당 차장입니다. 계엄사무를 국정원에 지시할 것이면 홍장원과의 통화 직전까지 대통령실에 있었던 조태용 국정원장에게 지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홍장원은 해외순방 지원 등 업무로 2~3차례 국정원장 배석자로만 본 사람이고 조태용은 선거운동도 함께하고 제가 주미대사,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을 시킨 사람입니다. 정보기관은 군 조직 이상으로 업무지시의 위계가 정확한 조직입니다. 상식에 입각해서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특검은 제가 선관위에 계엄군을 투입한 것이 선관위 직원을 강압적으로 조사하여 부정선거 증거를 조작함으로써 내란을 정당화하고 선관위라는 헌법기관을 무력화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원심은 헌법기관 무력화라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부정선거 수사를 강압적으로 해서 부정선거 증거를 조작하려 했다고 합니다. 워낙 보안을 강조하여 계엄선포 직전까지 방첩사에 알려주지 않다 보니 저나 국방장관이나 24. 12. 3. 당일 방첩사가 인사이동이 있어 환송회식 등으로 24:00경에서야 대원들이 귀대하게 된 것을 몰랐고, 사이버보안 전문가를 미리 물색, 대기시켜 놓지 못하고 장비도 준비하지 못하여 정보사 요원 10명만 선관위 본부에 들어 가 방첩사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12. 4. 01:01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가 나오자 즉시 철수했으며, 건물 외곽에서 경비를 담당하던 특전사도 모두 즉시 철수했습니다. 항소심의 선관위 CCTV 영상 검증에서 상세히 드러났습니다. 직원들에 대한 억압행위도 없었고 협조를 받아 서버 사진 찍은 게 전부이고 압수조치라는 것도 없었습니다. 전산시스템 보안점검은 해킹에 얼마나 대비가 되어 있는지 해커의 관점에서 점검하는 것입니다. 1년전 국정원의 선관위 보안점검에서 해킹에 형편없이 취약한 실태가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군을 대거 투입하고 계엄을 장기간 유지하며 정변을 꾀하는 쿠데타를 하려 한다면, 왜 계엄선포 직후에 선관위에 보안점검을 하려 했겠습니까? 계엄이 거대 야당에 의해 곧 해제될 것이니 기본적인 보안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지 사이버해킹 전문가를 투입하여 신속히 점검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제도 개선을 꾀해보자는 것 아닙니까? 쿠데타를 하는 세력이라면 선관위 보안점검을 왜 그 시간에 하겠습니까? 그리고 선관위 서버의 보안 상태 점검으로 부정선거 수사를 할 수 없습니다. 해킹취약성 점검과 부정선거 수사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지금 선관위 특검이 진행되고 있지만 막대한 수사단 규모에다가 실물 투표지까지 검증해 보아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고 어느 지역구 어느 선거를 대상으로 할지도 특정되어야지 그냥 막연하게 부정선거 수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특검의 주장과 원심의 판단은 상식에 크게 벗어납니다.
방첩사 등의 정치인 체포 시도 관련입니다. 원심도 대통령은 보고받거나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도 없었고 계엄사령부도 구성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혐의도, 증거도, 수사조직도 없었습니다. 막대한 군 투입으로 국가 전반을 이미 장악하여 불법천지 상태가 되었다면 몰라도 사법절차에 따라 수사해야 하고 혐의도 없는 체포를 사법기관과 국회가 허용할 리 만무합니다. 국회가 석방을 요구하면 석방해야 하고, 법원이 사후영장을 기각하거나 보석 등으로 석방을 명하면 석방 해야 합니다. 실제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로서, 그냥 말만 있는데 그 말도 서로 다릅니다. 실제로 방첩사가 어떤 정치인을 체포했는데 대통령이 이를 보고받고 “무슨 짓이냐 당장 석방하라”고 해서 풀려났다면 이런 일이 행위자의 개인 책임을 넘어서 내란죄의 집합범 차원으로 포섭될 수 있습니까? 그렇 다면 아무 일도 없고 말만 있는데 그마저 서로 다른 이 경우를 국헌문란에 포섭되는 것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2년 가까운 각종 수사와 여러 재판과정에서 제가 장기독재를 구축하기 위한 개헌을 목표로 언론장악, 정치규제와 정당해산, 헌 법정지와 국회해산, 국민투표에 의한 헌법개정, 총선에 의한 국회 재구성과 장악 등 일련의 정치 일정을 계획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군을 대거 투입하여 국가 전반을 장악하고, 계엄 상태를 장기화하여 군정을 펼치는 것 그 어느 것도 전혀 기획되거나 준비된 것이 없음은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오로지 “지금 현재의 이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려 한 것입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특검은, 원심 재판 초기부터 12. 3. 계엄이 계 엄선포의 요건인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위헌적인 불법 계엄이고 불법 계엄에 기해서 군을 국회와 선관위에 투입한 것은 내란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헌법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계엄=내란”이라는 것입니다. 또 헌법과 계엄법에 위배되는 포고령 1항과 영장주의에 위배된 선관위 진입은 헌법과 법률의 효력을 정지·소멸시키는 국헌문란이라고도 합니다. 상위 법규에 위배된 하위 법규가 있다면 하위 법규의 해당조항은 효력이 없는 것이지 그 하위 법규를 만든 것이 상위 법규의 효력을 일반적으로 정지·소멸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어떠한 처분이 영장주의에 위반되었다면 그 처분이 무효이거나 그 처분을 행한 사람이 법적 책임을 질 문제이지 그것이 헌법의 영장주의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거나 소멸시킨 것이 라는 주장은 특검의 내란죄 논리가 박약함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헌법상 계엄선포는 대통령의 독점적 배타적 권한으로서, 그 요건 은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속하는 것이고,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오로지 국회의 계엄해제요구라는 정치적 통제만 받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이고 헌법학계의 통설입니다. 계엄선포의 헌법상 요건에 100% 들어맞는 전시, 사변 상황에서 도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해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검은 1년 내내 계속된 원심재판에서,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한 위헌적인 불법 계엄 선포와 군 투입은 그 자체로 내란이라는 프레임에다가 의원 체포 및 의원 끌어내기를 얹어 붙였는데, 조지호 경찰청장과 곽종근 특전사령관의 그동안의 진술과 증언이 정 부비화폰 통화내역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이진우 수방사령관이 국회에 계엄해제요구권이 있는지도 몰랐고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 계엄해제요구 심의를 저지하라거나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고 증언하자, 결심공판에 이르러, 장기독재 구축과 개헌을 목표로 한 친위쿠데타라는 주장으로 공소장을 변경하였습니다. 특검은 24. 12.에 이미 압수하였지만 용도 폐기한 노상원의 수첩 같은 것을 25. 12. 법정에 들고나와 개헌을 목표로 한 정치일정을 제가 알지도 못하는 노상원과 논의한 것이라고 하 면서 친위쿠데타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수첩이 23. 12. 까지의 일들만 적혀 있었는지, 쿠데타 계획이 23. 10.경 내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내란죄의 법리에서나 증거에서나 특검의 이러한 행태는 스스로 무죄임을 자인하는 것이 었습니다.
1961년 5. 16., 1972년 10. 17.유신, 1980년 5. 18. 당시에는 몇 개의 신문사와 방송사 1~2개, 노조와 시민사회는 전무하다시피 하였고, 이미 정보기관과 공안기관의 권력이 막강하여 민주주의 경험이 부족한 국민들도 6·25전쟁 경험으로 권위주의 통치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었으며, 정보·공안·정계·군부 등이 합심하여 조직적으로 정변의 기획과 군의 투입, 정치일정을 준비하였습니다. 또 계엄을 장기간 유지하며 정변의 기획 준비단계부터 국민투표에 의한 개헌과 선거까지 계엄상태에서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2. 3. 계엄선포 당시는 극단적 여소야대, 수백 개의 언론사, 유튜브와 SNS 대중화,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시민사회 권력 등이 있었고 계엄의 장기 유지는 아예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군과 경찰, 공직사회도 거대 야당과 언론 및 시민사회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 방어적으로 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거대 야당은 계엄을 선포하면 즉시 무산시키겠다고 반복해서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장기독재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가지고 있는 권력이란 오로지 법에 의한 권한밖에 없고 그것조차도 온전하게 행사하기 어려운 여건이었습니다.
특검은 또 24. 3. 29.~24. 11. 9. 몇 차례 만찬이나 술자리에서 다소 만취된 제가 좌중들 앞에서 비상대권 같은 얘기를 했다고 하면서 계엄 논의 내지 가담자 포섭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마 내란죄의 국헌문란 목적에 관해, 판례가 간접 사실로도 증명할 수 있지만 목적범의 목적은 엄격한 증명이 이루어져야 하고 국헌문란을 위한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 업무 관련 만찬과 술자리를 계엄논의와 포섭으로 엮으려 한 것 같습니다. 제가 24. 11.말~12. 2 김용현 국방장관과 계엄에 관해 논의하면서 군 지휘관들에게도 12. 3.밤 계엄선포 담화전까지는 일체 보안에 부치라고 당부했고 그래서 선발과 출동이 늦어진 사실은 객관적 팩트입니다. 선관위는 준비가 안 되어 방첩사가 계엄 해제 결의 전에 도착하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만찬자리나 술자리에서 다소 취기에 젖어 대통령의 비상대권 운운했다면 오히려 그 당시에는 계엄 같은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명정상태에서 이런 얘기 듣거나 논의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24. 11.말 이후 김용현 장관 말고는 전혀 없습니다. 가담자 포섭과 논의도 술 마시며 운을 띄워보고 동조하는 듯하면 명정상태에서 만나 의견도 묻고 논의도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주취 중 발언은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런 상태에서 무슨 계엄을 논의하고 가담자를 포섭한다는 것인지요? 그래서 곽종근, 이진우, 여인형이 제게 포섭되어서 제가 그들과 거사를 논의했다는 겁니까? 내란의 증거가 전혀 없다보니 뭐라도 만들어 붙여야 하는 모양입니다.
원심은 이런 가능하지도 않고 증거도 없는 친위쿠데타 주장을 모두 배척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독재를 구축하려 했다는 친위쿠데타가 인정되지 않으면 국회의 해제 요구를 즉각 수용한 계엄은 내란이 될 수 없는 것이고 무죄가 선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심은 상당기간 국회 건물을 봉쇄하여 국회의 심의 회의 표결 업무를 못하게 함으로써 국회라는 헌법기관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하고 군경을 투입하여 폭동을 일으켰다고 하 면서 내란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헌법기관을 전복하거나 장기간 무력화하려는 것은 자신이 헌법기관을 장악하여 권력을 확장하거나 찬탈하고 스스로 보호하기 위 해 장기독재를 구축하는 헌법 개정을 하는 것입니다. 헌법기관의 상당기간 무력화라는 “목적”은 헌법기관의 권력을 찬탈하고 권력을 확장하려는 “동기”와 동전의 양면입니다. 그냥 “거대 야당이 미워서”물리적으로 국회 건물을 봉쇄하여 상당기간 국회가 일을 못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스스로 내란의 죄책을 지고 감옥에 가려는 동기에서 했다는 것인가요?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아니면 국헌문란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원심 재판 초기부터 “나는 군을 대거 투입하여 국가를 장악하거나 독재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 일정을 세운 바 전혀 없다”고 줄곧 주장하였고 대통령이 헌법에 기해 선포한 계엄은 국회의 요구에 따라 즉시 해제 한 이상 내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2·12, 5·18 사건 판례에서는 5·18 전국 확대 계엄선포도 폭동에 포함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계엄은 신군부가 대통령과 내각을 억압하여 강제로 심의·선포하게 한 것이라는 사실 인정에 기초한 판단이었습니다. 나아가 당시 계엄은 80. 5. 18.~81. 1. 24.까지 8개월 간 지속하면서 그 사이 많은 유혈사태,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개헌국민투표, 대통령 간접선거 등이 있었습니다. 전국 수백 개의 보안 목표에 수만 명의 무장병력이 장갑차·탱크를 앞세우고 시민들을 상대로 억압과 폭력을 행사했고, 신군부가 내각을 폐지하거나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으나 내각 이 신군부의 지시에 저항하지 못하고 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 들 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사실상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과 유사한 “상당기간 무력화”라는 것 으로 국헌문란의 개념을 다소 확장하여 판결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발생한 국헌문란 행위와 결과에 대해 목적범의 목적을 인정 한 것입니다.
그러나 원심은 발생하지도 않은 “국회건물 봉쇄”, 실행할 능력도 없는 “상당기간의 국회건물 봉쇄”, 실행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상당기간 국회건물 봉쇄”를 상상하여 국헌문란의 목적을 지어냈습니다. 권력을 찬탈하고 확장하며 장기독재를 구축하고자 하는 동기가 없다면 더더욱 “상당기간 국회건물 봉쇄”를 왜 하 겠습니까? 수백 개의 언론사와 막강한 시민사회, 여야정치권 등 이 며칠만 국회 건물을 봉쇄한다고 해도 가만있겠습니까?
원심은 24. 12. 3. 밤 소수의 병력으로 국회 건물을 봉쇄하려 했는데 국회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을 예상하지 못해 봉쇄에 실패한 것이지 봉쇄 의도는 있었다고 판시합니다. 그러나 당시 예산 국회 기간이라 국회에 의원, 직원, 기자들이 많이 있고 몰려들 인파도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을 제가 하지 못하고 소수의 비실무장 병력을 보낸 것이라는 말입니까? 앞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줄이겠습니다. 또 하루 당일의 봉쇄와 의결방해만으로 상당기 간 국회무력화라는 것이 인정될 수도 없습니다. 가사 국회건물을 몇 시간 봉쇄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며칠이라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까? 민주당이 계엄선포하면 즉시 무산시키겠다고 반복해서 으름장을 놓았는데 경찰기동대 300여명과 특전사 수십 명으로 국회 봉쇄가 가능합니까?
또 원심은 대통령이 언제 계엄을 해제할지는 대통령 마음이고 언제 해제할 것이라는 얘기를 미리 하지 않았으니 상당 기간 계엄이 유지되고 국회가 봉쇄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언제 해제하겠다고 미리 발표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야당이 계엄을 선포하면 신속히 무산시키겠다고 계속 선언했고 또 계엄선포 직후 신속하게 국회에 의원들이 들어가는 게 TV에 나오는데 얼마 못 가 해제되겠구나 생각하는 것이고, 국회에서 해제 요구하면 즉시 수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특검과 원심은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문에서 종북세력을 척결하겠다고 했고 야당을 종북세력이라고 보았으니 국회라는 헌법기관을 척결해서 무력화하려는 목적이 드러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민주당과 이 정부가 내란세력 척결이라고 외치는데 이 역시 법과 재판에 의하지 않고 그냥 없애겠다는 뜻입니까? 자유민주사회에서 체제전복세력 척결이라고 하면 비판하고 감시하고 법에 따라 처리하자는 얘기 아닌가요? 게다가 계엄선포 대국민 담화문에는 헌법기관인 국회가 종북세력이고 국회를 척결한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12. 3.계엄에 투입된 군경은 국회의원과 국회관계자 그리고 시민을 상대로 억압하거나 폭력 내지 유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습니다. 선관위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소심 CCTV 영상 검증에서 이미 모두 확인하였습니다. 국회질서유지와 선관위보안점 검 준비를 위해 간 것뿐입니다. 경찰이 자체 법률검토 결과 국회 게이트를 차단한 사실은 있지만 경정문을 통해 국회의원과 직원 들은 다 들여보내고 있는 것이 CCTV로 확인됩니다.
음주상태에 있거나 과격한 시민들이 군을 상대로 폭행을 가해도 소극적으로 저항하고 그들을 억압하거나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 계엄해제요구 결의가 있자 즉각 철수하면서 경내 마당에 있던 시민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떠났습니다. 폭동이라는 것이 없었고, 더구나 지역의 평온을 해칠 폭동은 더더욱 없었으며, 국헌문란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한 폭동도 전혀 없었습니다. CCTV 영상이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내란죄를 저질러 놓고 반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TV생중계로 계엄선포 담화를 하고, 2시간 30분 만에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를 결의하자 즉시 수용하며 군을 철수시키고, 국무회의를 소집하여 계엄을 해제하였으며, 소수의 비실무장 병력을 질서유지를 위해 보내 아무런 억압행위나 충돌 없이 사상자 전혀 없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된 계엄이 내란이라고 하면서 법리에도 맞지 않는 황당한 논리와 거짓 증거를 들이대고, 정치 기소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교만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대통령은 나라가 위기상황이고, 행정·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곤란하다고 판단될 때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할 헌법상 권한이 있습니다. 군을 최소화하여 투입하고 국회 요구에 따라 신속히 해제하였습니다. 저는 국회나 선관위 같은 헌법기관을 무력화시킨 사실이 없고, 상당 기간 무력화시킬 능력도 이유도 없었으며, 계획하거나 의도하거나 목적한 바도 전혀 없습니다. 군경이 시민이나 국회의원과 공무원을 상대로 억압과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없고, 그런 일을 지시한 바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국회의 정치적 통제를 수용한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행사가 내란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판사건이 조작기소라고 주장하는 정치권력자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를 처벌하고 사법부 수장을 모욕주고 탄핵하겠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현대 문명국가의 사법시스템도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나라가 위기 상황인 게 맞구나 싶습니다. 우리 모두 환난의 한 가운데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의로운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으로 버티며 서로 위로해야 합 니다. 법리상 말도 안 되는 주장, 진실일 수 없는 거짓 증거들을 배척하시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재판부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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