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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고] '공정의 불신'을 먹고 자라는 지역불균형의 덫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화두 앞에서 지금 대구·경북이 마주한 가장 위험한 징후는 단순한 예산 부족이 아니다. 정책의 뼈대를 이루어야 할 ‘공정성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전형무 경북도 지방시대특별보좌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화두 앞에서 지금 대구·경북이 마주한 가장 위험한 징후는 단순한 예산 부족이 아니다. 정책의 뼈대를 이루어야 할 ‘공정성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의 불확실한 재정 로드맵, 명분 없이 국회 법사위에 발이 묶여 있는 대구경북행정통합 특별법, 권역별 체감 격차를 키운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거점국립대 육성책에 이르기까지 약속은 요란했으나 실행의 문턱마다 배제와 지연이 반복됐다. 대구·경북 시도민의 가슴속에 깊게 파고든 “결국 우리는 또 뒷전인가”라는 냉소는 결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이 아니다.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이처럼 팽배해진 ‘공정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역 불균형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살찌우는 가장 완벽한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첫째, 비수도권의 오랜 ‘제로섬 게임’은 이제 공정한 경쟁조차 거세된 ‘중앙정부의 자의적 간택’으로 변질되고 있다. 과거에는 한정된 파이를 두고 영남과 호남, 충청이 공공기관 유치, R&D 예산, 첨단 전략산업 지정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부딪치는 소모전이었다면, 지금 지방이 마주한 현실은 그보다 훨씬 기만적이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과 국토의 미래를 내다본 국가 전략에 따라 공정하게 배분되고 유치된다는 최소한의 믿음마저 사라졌다.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정권의 정치적 유불리와 선거 표 계산, 중앙 권력의 입맛에 맞춘 밀실에서의 ‘불공정한 선택’이다.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사활을 걸고 준비한 혁신안과 자생적 노력은 허탈하게 무력화되고, 오직 중앙의 눈에 들기 위한 눈치 보기와 줄서기만이 횡행한다. 공정한 룰이 깨진 자리에서 지방은 공정한 경쟁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중앙의 일방적 시혜에 목을 매는 처지로 전락했고, 이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뜨릴 비수도권의 자생력과 연대의 불씨를 근본부터 짓밟고 있다.

둘째, 제도의 불신은 ‘시혜성 정치’와 ‘밀실 야합’을 부활시킨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체념은 결국 정권의 입맛, 선거철 셈법, 실세 정치인의 영향력에 매달리는 후진적 관행을 정당화한다. 이는 과거 우리가 목도했던 성공적인 국가 경영의 궤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 구미, 울산, 창원으로 이어지는 영남권 산업 벨트를 구축한 것은 지자체의 줄서기나 단기적 정치 셈법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국토의 다핵화를 통한 국가 자생력 확보라는 전략적 결단과 인프라의 전폭적 실행력이 뒷받침된 결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전국 10개 혁신도시를 지정하고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며, 시스템과 원칙에 기반한 균형발전의 철학을 제도화했다. 지금처럼 공정성이 흔들리고 정치적 줄다리기가 우선하는 방식은 두 지도자가 남긴 결단과 원칙의 유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셋째, 불신의 칼날은 외부가 아닌 지방 내부를 베어 넘기는 것을 넘어, 중앙정부의 ‘노골적인 지역 차별’이라는 구조적 덫으로 이어졌다.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행정통합 추진 과정을 비교해보면 그 불공정한 간극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광주·전남의 통합 논의에는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제도적 뒷받침과 예산 지원 신호가 이어지며 힘을 실어주는 반면, 가장 먼저 메가시티의 깃발을 들고 선도적 모델을 제시했던 대구·경북은 왜 여전히 헛바퀴를 돌며 법안 통과조차 지연되고 있는가. 원인은 명확하다. 지역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추동력을 불어넣어야 할 중앙정부가, 유독 대구·경북에 대해서만 철저히 방관과 계산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타 권역 통합에 쏟아지는 정책적 배려와 달리, 대구·경북의 절박한 요구는 정권의 정치적 셈법에 밀려 이중잣대를 마주해야 했다. 중앙정부의 입맛에 따른 선택적 지원이 지역 간 격차를 부추기고, 먼저 달리기 시작한 대구·경북의 발목을 정치적으로 꺾어놓은 셈이다.

불신은 불균형을 낳고, 심화된 불균형은 다시 불신을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화려한 청사진 뒤에 숨어 지방의 출혈 경쟁을 방치하지 말고, 역차별 없는 지역균형발전의 ‘예측 가능한 집행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공정의 룰을 바로 세우고 이를 엄격히 지켜내는 실행력만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살릴 수 있다.

지역 역시 단기적 피해의식에 갇히기보다, 공정한 원칙과 투명한 시스템을 당당히 요구하는 성숙한 협력의 주체로 서야 한다. 공정에 대한 신뢰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지방이 쏟아내는 분노와 불안은 결국 지역 불균형이라는 견고한 벽을 지탱하는 자양분으로 허망하게 소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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