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최기영 시인
히말라야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살던 네팔에 재해가 닥쳤다. 해발 5,200미터. 거대한 산이 무너져 내렸다. 오랫동안 얼음으로 굳어 있던 빙하가 녹고 영구동토층이 약해지면서 산 아래 계곡으로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물이 흐르는 계곡마다 콘크리트를 부어 물길을 붙잡아 놓았던 댐과 시설물들은 밀려드는 물의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산에서 쏟아져 내린 물은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단단한 거대한 댐을 순간 무너트렸다. 물은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며 계곡을 따라 흘렀다. 무엇보다 마음을 현장에서 댐을 건설하던 많은 사람과 함께 우리 노동자 아홉 명의 생사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정부는 급히 구조대를 파견했다고 한다. 무사히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댐을 건설하는 것은 물을 저장하고 전기를 생산해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번 재난을 단순한 자연재해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행한 개발로 인해 지구는 매시간 뜨거워지고 있다. 그와 함께 빙하가 녹고 영구동토층이 약해지고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는 복수라는 감정이 없으니까. 다만 인간이 자연을 밀어붙인 만큼, 그 결과가 자연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을 뿐이다.
과학은 인간을 풍요롭게 했다. 그러나 과학이 누구의 손에 들려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는 다른 문제다. 자본을 좇는 과학은 더 많이 만들고, 더 빨리 움직이고, 더 깊이 파고들고,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땅속의 광물을 캐냈고 산을 뚫었다. 강을 막고 바다를 메웠으며 숲을 베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의 얼음까지 건드리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발전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발전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무엇인가. 뜨거워진 대지와 말라가는 강, 녹아내리는 빙하, 불타는 숲,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이다. 이번 네팔의 재난이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구는 하나의 몸이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에서 녹은 얼음이 네팔의 계곡으로 흘러내리듯, 우리가 이곳에서 내뿜은 탄소와 이곳에서 벌인 개발의 흔적 역시 국경을 모른다. 어느 나라가 가해자이고 어느 나라가 피해자라고 단순하게 선을 긋기도 어렵다. 뜨거워진 지구에서 안전한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어지는 재난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남겨진 지구는 언제까지 사람을 품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히말라야의 얼음이 녹는 소리는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는다. 그 얼음이 다 녹고 난 뒤의 세상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번 네팔의 재난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히말라야 빙하가 다 녹기 전에 자본을 위한 과학을 멈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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