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20일 오전, 충북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 노인전문요양원에 취재진 40여명이 모여들었다. 치매 노인 등을 보살피는 작은 요양원이 언론의 조명을 받은 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때문이다. 김 회장은 차남 보복 폭행 사건으로 형사처벌과 사회봉사 200시간 명령을 받았다. 이날 80대 어르신에게 죽을 떠먹이며 봉사활동을 한 김 회장은 기자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스스로도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걸 알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국내 재벌 총수 일가는 헌법의 수혜를 톡톡히 입는다. 헌법으로 정한 대통령의 사면 권한에 따라 남은 형기를 면제받는 ‘특별사면’의 단골 대상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 사면된 주요 그룹 총수는 김승연 회장(2회)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2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회),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2회),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1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회), 이재현 씨제이(CJ)그룹 회장(1회) 등이 있다.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명분은 늘 ‘경제 살리기’였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09년 8월 유죄가 확정되고 불과 넉달 만인 그해 12월 사상 최초의 ‘원포인트 특별사면’을 받았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라는 구실을 들었다. 최태원 회장도 2008년 5월 대법원 유죄 확정 석달 만인 그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최 회장은 사면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그해 말, 개인적인 파생상품 투자를 위해 계열사 자금을 가져다 썼다.
총수 사면과 경영 복귀가 정말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는지는 확인된 적이 없다. 사면의 ‘명분’만 필요할 뿐, 그 결과와 영향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이창민 교수(한양대)와 최한수 교수(경북대)는 지난해 논문에서 “2003~2013년 형사처벌된 재벌 총수 9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총수의 사법 처리와 계열사의 수익성·성장성 등 주요 경영지표 간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제로(0)였다”고 지적했다.
최신원 전 에스케이네트웍스 회장이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 10개월여 만에 ‘명예회장’이라는 새 직함을 달고 회사로 돌아왔다.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고서다. “이런 식이면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상법 개정은 해서 뭐 하느냐”는 개탄이 많다. ‘회장님의 화려한 컴백’에 제동을 걸 제도적 장치와 사면권 남용 방지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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