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옛터민속박물관 학예실장
우리는 선택을 흔히 옳고 그름으로 나눈다. 맞는 선택, 틀린 선택, 성공과 실패로 구분한다. 하지만 실제 삶의 선택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어떤 선택은 틀려서가 아니라, 맞기 때문에 더 아프게 남는다.
이 변화는 특히 AI 시대에 더 선명해지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선택을 점점 더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분석하고, 데이터는 최적의 경로를 제시하며, AI는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끊임없이 제안한다.
우리는 이제 그럴듯한 선택지들 속에서 언제든 더 나은 옵션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분명 진보다. 그러나 이 풍부한 선택지는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더 흔들리게 만든다.
AI 시대의 외로움은 과거와 다르다. 연결이 없어서 생기는 외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 속에서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생기는 외로움이다. 우리는 언제든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더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으며, 더 완벽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가능성은 지금의 현실과 끊임없이 비교되며 불만족을 만들어낸다. 이 간극이 오늘날 외로움의 본질이다. 관계 역시 이 구조 안에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관계를 현실 속에서 지속하는 일이다.
오늘날의 관계는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구조로 지속된다. AI는 더 많은 연결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연결을 실제 삶으로 이어주는 힘은 없다. 그 결과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할 수 있지만, 정작 선택을 확정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또 하나의 변화를 겪는다. 우리는 점점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정보가 흐르고, 추천이 이어지며,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점점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어 있는 상태를 채우기 위해 다시 선택지를 찾고, 다시 연결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일시적인 분산에 가깝다. 결국 문제는 선택의 수가 아니라 선택을 확정할 수 있는 기준의 부재에 있다. AI는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그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점점 더 어렵고,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선택은 단순히 더 나은 것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따라오지 못하는 상태를 자주 경험한다.
이해는 했지만 납득되지 않는 감정, 가능성을 알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망설임. 이것이 AI 시대의 인간이 겪는 가장 현실적인 갈등이다. 오늘의 선택이 아프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틀린 선택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가능성 속에서 하나를 확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픔은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증거다.우리는 종종 그 감정을 빨리 지우려고 한다. 덜 아프기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다른 가능성을 다시 떠올리거나, 선택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 내려진 선택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괴로움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기준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떤 삶을 선택하려 했는지, 어떤 부분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그 기준을 이해하는 순간, 아픔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방향을 확인시켜주는 신호로 바뀐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삶은 결국 자신이 만든 기준 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수많은 선택을 거치며 점점 더 선명해진다. 그래서 선택 이후에 남는 감정들 또한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더 분명하게 만드는 과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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