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기도 판교에서 개최된 딥엑스 기자간담회에서 김녹원 대표가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서버용 AI칩 시대에서는 한국이 패스트팔로워였지만, 온디바이스 AI 시대에는 우리가 퍼스트무버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딥엑스가 있습니다.”
창업주인 김녹원 딥엑스(DEEPX) 대표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놓은 이 한마디는 회사가 그리고 있는 미래 전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AI 반도체 시장의 중심은 데이터센터용 GPU다. 하지만 김 대표는 2030년 이후에는 로보틱스, 스마트공장, 자율주행, 지능형 감시체계 등 이른바 ‘피지컬 AI’가 AI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가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저전력·저발열·저비용 구조를 갖춘 온디바이스 NPU가 핵심 인프라로 부상할 것이며, 현재 그 시장은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초기 국면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대표는 “지금의 반도체 붐을 이끈 것은 데이터센터지만 2030년부터는 피지컬 AI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며 “자율주행차, 로보틱스, 스마트공장, 자동관제 시스템 등이 일반화되면 그 수요를 데이터센터가 모두 커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문제도 있고, 통신망으로 오가는 정보량에도 한계가 있다”며 “결국 현장에서 바로 AI를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현재 AI 시장에서 범용 연산의 주류는 엔비디아 GPU가 차지하고 있다. AMD,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팹리스 생태계가 짜여 있고, 한국은 이 분야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 플레이어가 전무했다.
다만 최근 들어 AI 연산이 데이터센터 밖으로 확산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배터리 제약이 큰 로봇, 이동체, 산업용 기기, 카메라, 스마트 디바이스 등에서는 고성능만큼이나 저전력·저발열이 중요해졌고, 이 지점에서 NPU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딥엑스는 자사 1세대 양산 칩인 DX-M1을 앞세워 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딥엑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전력 효율과 가격 경쟁력을 꼽았다. DX-M1의 평균 소비전력은 2~3W 수준으로, 엔비디아의 엣지 AI 플랫폼인 젯슨(Jetson) 계열과 비교해 전력효율이 약 20배 높고 가격은 동급 제품 대비 10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쟁력의 배경에는 작은 다이(Die) 크기가 있다. 같은 웨이퍼에서 더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제조 원가를 낮추고, 결국 가격과 발열, 소비전력 모두를 유리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딥엑스 칩(왼쪽)과 경쟁사 칩(오른쪽)을 비교해놓은 전시. 딥엑스칩은 손을 댔을 때 미지근한 정도라면, 경쟁사 칩은 1초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발열이 심했다. (사진=김지윤 기자)
발열 성능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이른바 ‘버터 실험’도 다시 언급됐다. 경쟁사 칩과 딥엑스 칩 위에 각각 버터를 올려놓았을 때 경쟁 제품 쪽 버터는 빠르게 녹은 반면, 딥엑스 칩 쪽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는 내용이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동일 성능에서 저전력, 저발열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피지컬 AI 기기에서는 발열이 곧 제품 신뢰성과 직결되는 만큼, 이러한 특성은 단순한 전기료 절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딥엑스가 이 같은 흐름을 우연히 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선제적으로 준비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 창업한지 이제 8년이 됐는데,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마음으로 기술을 준비했다”며 “어떤 한 분야를 선도하려면 지금 메인이 된 기술만 봐서는 안 되고, 2~3년 뒤 테슬라나 엔비디아 같은 리딩 업체들이 어떤 병목에 걸릴지를 예상해 그 앞단 기술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지컬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서버 중심 AI 시장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그 틈을 한국 기업이 파고들 여지가 있다는 점을 선제적으로 분석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1990년대 인텔과 ARM의 경쟁 구도를 소환했다. 당시 인텔 칩은 PC에서는 강력했지만 모바일 환경에서는 발열과 배터리 효율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저전력 설계에 강점을 가진 ARM이 스마트폰 시대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그는 현재 AI 반도체 시장도 비슷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봤다. 데이터센터에서는 엔비디아가 압도적이지만, 이를 데이터센터 밖 현장으로 끌어내리면 전력과 발열, 비용 측면에서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엔비디아 칩이 데이터센터에서는 강력하지만, 데이터센터 밖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해법은 아니다”라며 “온디바이스로 생태계의 축이 이동하면 딥엑스 같은 구조의 칩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상용화 속도도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김 대표에 따르면 딥엑스 1세대 칩 DX-M1은 지난해 하반기 본격 양산에 돌입한 이후 빠르게 고객사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2건 수준이던 양산 계약은 올해 3월 기준 30곳으로 증가했다.
통상 반도체 업계에서는 고객사가 PoC(개념검증)를 거쳐 양산 주문으로 이어지기까지 2~3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딥엑스는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실제 주문으로 연결되는 사례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차세대 제품 준비도 병행 중이다. 딥엑스는 올해 2나노 선단공정을 적용한 2세대 칩 DX-M2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는 1세대 DX-M1을 5나노 공정에서 생산하면서 90% 이상의 수율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삼성의 제조 역량도 우수하지만, 딥엑스의 설계 노하우가 수율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2나노는 선단공정인 만큼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설계 최적화를 통해 높은 수율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현재 딥엑스는 2·3세대 제품 양산에 필요한 파운드리 비용 확보를 위해 투자 라운드를 진행 중이며, 국내외 FI들과 접촉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 조달도 논의중이다.
기업공개(IPO)와 관련해서는 속도보다 실적에 따른 시장 검증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대표는 나스닥 상장과 국내 상장을 모두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국내 상장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밝혔다. 시기는 미정으로, 내부적으로 조율 중이다.
김 대표는 이미 국내 상장을 위한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마친 상태다. 다만 그는 “상장 이전에 시장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실적과 상업적 성과가 먼저 쌓여야 한다. 상장을 서두를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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