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8일 부산 북구 구포시장 오일장에 인파가 몰려 있다. photo 류열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4월 8일 부산 북구 구포역 앞에서 만난 70대 택시기사 문모씨는 기자가 '하정우'라는 이름을 꺼내자 "영화배우?"라고 잠시 뜸을 들였다. 이어 기자가 '청와대 AI(인공지능) 미래기획수석'이라고 말하자 문씨는 "AI 인재가 와(왜) 여기까지 내려오느냐고. 전공 살려가지고 국가를 위해 일하면 되지. 정치판에 와봐, 시장 다녀야 되고, 이리저리 경조사 챙겨야 되고. 뭐 의석 하나가 문제가 아니고 국가 전체의 문제 아닙니까." 하정우(48) 청와대 AI 미래기획수석이 오는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질 예정인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지 하루 뒤였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보수의 텃밭이다. 그러나 부산 서북부에 있는 북구갑은 사정이 다르다. 북구갑은 2024년 총선에서 부산 18개 국회의원 선거구 가운데 민주당 의원이 당선된 유일한 지역구다. 이재명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전재수 의원은 이 지역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내리 3선(20·21·22대)을 했다.
북구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60대 전모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무현이 인권변호사 한 곳 아닌가. 지금도 그런 변호사들이 북구에 많은 걸로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 북구·강서구 을에 출마한 바 있다. 비록 낙선했지만 '바보 노무현'으로 불린 그 정신이 북구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AI인재가 왜 여기까지…"
북구갑 재보궐선거를 둘러싸고 현재까지 거론되는 이름은 크게 네 명이다. 하정우 청와대 AI 수석을 비롯해, 과거 북구·강서구갑에서 재선(18·19대)을 한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 북구갑 무소속 출마가 유력시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부산과 연고가 있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이다. 특히 수차례 부산 출마 의사를 피력해온 한동훈 전 대표는 북구갑 선거의 최대 변수다.
다만 민주당 부산시장 당내 경선에 나선 전재수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하지 않아 보궐선거가 치러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약 전 의원이 오는 4월 30일까지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으면 재보궐선거가 지방선거 뒤로 밀리게 된다. 한 현역 부산시의원은 "전재수 의원은 지역구를 한시도 비워두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청래 민주당 대표 입장에서는 부산에서 유일한 한 석을 걸고 한동훈 전 대표를 국회로 불러들이는 도박을 피하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보가 확정되지 않아 북구 주민들 역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 수석은 부산 사상구에 있는 사상초·사상중·구덕고를 나온 부산 토박이로, 전재수 의원의 구덕고 6년 후배기도 하다. 하 수석은 네이버 클라우드 AI센터장을 거쳐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최연소 수석으로 발탁됐는데, 전 의원이 지난 4월 2일 "하정우 수석 같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기대한다"며 사실상 후임자로 추천한 바 있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월 9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하GPT(하정우)' 요즘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작업 들어온다고 넘어가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 실제 출마를 감행할지는 미지수다.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도 '하정우'란 이름 석자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이날 오일장이 열려 북적이는 구포시장의 한 국숫집에서 만난 60대 남성 박모씨는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갑자기 나오면 좀 힘들낀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택시기사 60대 남성 하모씨 역시 "뭐 묻은 놈들이더라도 머리에 띠 한번 둘러볼라고 오는 놈들이 태반이다. 실세(實勢)여서 내려왔다가 떨어지면 올라가 버리는 기고. 철새 정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구 주민인 60대 남성 정모씨도 "서울에서만 살다가 이제 와서 정치하러 내려오는 거 아니에요. 부산을 떠났던 사람이 이제 와서 부산을 살리겠다고 나오는 건 아니라고 봐요"라고 잘라 말했다.
"한동훈·조국 서울 사람 같다"
한동훈 전 대표는 벌써 두 번째로 북구를 찾으며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지난 4월 7일에는 국민의힘 부산 북갑 당협위원장인 서병수 전 부산시장과 오찬 회동을 갖고 만덕횡단보도에서 하교하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만 한동훈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북구갑 출마를 강행할 경우, 같은 검사 출신으로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과 보수표가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 서병수 전 시장은 "무공천을 해서라도 한동훈 전 대표와 연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동훈 전 대표의 북구갑 출마를 두고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의견 역시 "마음이 안쓰럽다" "똑똑한 건 알겠는데 잘 모르겠다" "배신자" 등등 각양각색이었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을 지지한다고 밝힌 한 구포시장 상인(60대·여성)은 "대구에서도 버스를 대절해 한동훈 팬들이 내려왔는데, 몇 년 만에 장사도 참 잘됐다"라면서도 "한동훈이 나오면 찍어줄 것이냐"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구포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는 한 20대 사장은 지난 3월 7일 한 전 대표의 북구 방문을 두고 "배신자라고 소리지르는 사람도 절반이었다"고 전했다. 구포시장의 한 옷가게 상인(50대·여성)은 "나라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변화를 이끄는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겠냐"며 한동훈 전 대표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비호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택시기사 홍씨(60대·남성)는 "한 번 배신자는 영원한 배신자"라며 "한동훈은 배신자를 떠나서 부산에 (연고도) 별로…"라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검사 시절 부산지검과 부산고검에서 근무한 경력을 부산 연고로 내세우고 있다.
부신 출신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북구에서만큼은 외지인 취급을 받는 듯했다. 부산 서구 출신인 조 대표는 서구에 있는 대신중, 중구에 있는 혜광고를 나왔다. 북구에서 만난 정씨(60대·여성)는 "우리는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며 "아무리 자녀라도 자기가 대신 시험치는 부모가 있냐"고 잘라 말했다. 구포 국숫집의 박씨는 "조국은 이미지가 별로다. 부산 사람 안 같은 느낌, 서울 사람 같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택시기사 김씨도 "조국 팬이 부산에 별로 없어. 원래 부산 사람인데"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때문인지 조국 대표는 지난 4월 9일 "검찰개혁 동지셨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됐다"며 "경기 하남이 빌 것으로 예상되는데, 추 장관도 하남에서 1200표 차이로 이겼다"고 말하며 하남갑 출마 가능성을 피력했다.
민주당 부산광역시당 홍보소통실장은 "지난 선거 때도 막판에 뒤집혀 배신당한 곳이 부산"이라며 "북구라도 끝까지 방심할 수 없다"고 전했다. 격전지의 열기를 보여주듯 이날 민주·국민의힘 부산시당 사무실은 모두 공천 관련 회의로 북새통을 이루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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