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현대와 운명 함께하는 도시
노동자·지역은 디스토피아 치닫는데
현대차만 유토피아 도달할 수는 없어
2021년 3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가 세워져 있다. 울산=연합뉴스
한국에서 기름밥 먹는 노동자가 중산층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높진 않지만 완전히 닫혀 있는 것도 아니다. 울산이 증거다. 노동계급 중산층의 도시. 국내 제조업 문제를 연구해온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책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에서 울산을 이렇게 정의했다. 고학력이 아니더라도 직업훈련소에서 한글과 기술을 배워 정규직이 된 노동자가 써내려간 현대사가 있는 도시라는 설명이다. 요즘 표현대로 하자면 '킹산직의 도시'다. 낳고 자란 고향에 먹고살 만한 급여를 주는 직장이 있다면 굳이 서울로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2월 울산대 교정에서 만난 토박이 대학생도 본보 기자에게 그 정서를 드러냈다.
"아빠가 현대차 생산직으로 30년 동안 일하셨어요. 웬만큼 좋은 '인서울 대학' 못 갈 바엔 울산대 가서 현대차 입사를 준비해 보라고 하셨죠. 저희 가족이 현대차에 의지해 살아왔으니까 그런 말을 하신 거 같아요."
20대 청년의 말처럼 '현대'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울산의 성장사를 설명할 수 없다. 창업주 정주영이 울산 동구 미포만의 허허벌판 백사장 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권 지폐를 가지고 그리스의 '해운 거물' 리바노스를 설득해 유조선 두 척을 수주받은 게 HD현대중공업의 시작이다. 정주영과 그의 동생인 정세영이 집념으로 만든 국내 최초 독자 모델 승용차인 '포니'도 울산 공장에서 탄생했다.
3일 울산 북구 명촌동의 밤거리가 한산하다. 울산=최주연 기자
바꿔 말하면 울산은 현대와 운명을 함께하는 도시다.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이 어림잡아 5만 명쯤 되니 울산 전체 인구(112만 명) 중 약 15만 명은 본인이나 가족이 이 회사에 다닌다고 추정할 수 있다. 현대차의 임금 협상 결과나 성과급 규모에 따라 울산 백화점 매출이 춤을 추고, 공장이 쉬는 날에는 백반집 사장이 순두부도 덜 만든다.
사람 닮은 로봇 '아틀라스'가 1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6'에서 능력을 과시한 이후 현대차 노동자만큼 울산 자영업자들의 걱정도 커졌다. 현대차가 기침할 때 울산은 몸살 앓는 일을 워낙 많이 봐온 터라 심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 기자가 '그림자 전쟁 : AI의 직업 침탈기'를 취재하며 만난 울산의 택시 기사가 "로봇이 택시를 타나, 원룸 월세를 내나. 사람 떠나면 울산 경제는 끝장날 것"이라고 한탄한 건 과한 걱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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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보트가 밥을 먹나, 월세를 내나. 울산은 끝인 기라"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30816340004040)
반면 현대차는 비교적 느긋하다. 아틀라스 도입 시 발생할 노동자 충격 문제에 대한 대안을 물었지만 "국내 도입이 결정된 것도 아닌데 대책을 언급하는 건 섣부른 일"이라는 취지의 답만 되풀이했다. 현대차 노조를 향한 여론이 싸늘하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서는 기댈 구석이다.
하지만 노동자와 울산의 미래가 디스토피아로 치닫는데 현대차에만 유토피아가 찾아오는 건 불가능하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노동자는 공장 밖으로 나오면 소비자이고 납세자"라고 말했다. 이들이 지갑을 닫아버린다면 로봇이 아무리 빨리 차를 만들어내도 의미 없는 일이 된다.
AI와 관련한 변곡점은 우리 예측보다 늘 빨리 왔다.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도,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빠르게 추격한 챗GPT도 그랬다. AI와 노동, 그리고 울산의 미래를 머리를 모아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의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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