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국내 M&A 시장에서 AI(인공지능)는 압도적인 화두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실제 메가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금리 기조와 유동성 축소라는 거시경제적 제약 속에서 매수 기업들은 미래 성장가능성보다 당장의 현금창출능력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립적인 AI 기업의 대규모 인수보다는, 기존 사업의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소규모 볼트온 투자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그쳤다.
그렇다면 밸류에이션을 제대로 인정받은 AI 기업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을까. 실제 중견·중소기업 M&A 시장을 살펴보면, 그 답은 명확하다. 특정 산업에 즉시 적용 가능한 도메인 특화 버티컬 AI 솔루션에 집중된 기업들이었다.
제조업 분야의 대표 사례는 지난 2월, 전통 전자부품 제조사 성호전자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장비기업 에이디에스테크의 지분 87.5%를 2,800억 원에 인수한 딜이다. 인수대금은 1,500억 원의 인수금융과 메자닌 채권을 혼합해 조달했다. 이 딜의 핵심은 피인수기업의 주력 제품인 액티브 얼라인먼트 장비를 성호전자의 기존 전력부품 제조라인과 결합함으로써, AI 인프라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단숨에 진입할 수 있는 전략적 옵션 가치를 인수자가 정량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서비스업 분야에서는 지난 2025년 1월 AI 교육 솔루션 스타트업 뤼이드와 어학 서비스 기업 퀄슨의 합병이 눈에 띈다. 지분 교환 방식으로 진행된 이 딜은 퀄슨이 보유한 방대한 고객 트래픽에 뤼이드의 AI 튜터 알고리즘 ‘산타’를 즉각 연동해, 강사 인건비 등 막대한 변동비를 구조적으로 절감하는 시너지 모델로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았다.
국내 M&A 시장에서 AI가 화두였지만, 실제 메가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고금리 기조와 유동성 축소라는 거시경제적 제약 속에서 매수 기업들은 미래 성장가능성보다 당장의 현금창출능력을 더 중시했다.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두 사례에서 주목할 공통점은 “이 AI가 우리 사업의 어떤 물리적 제약을 얼마나 해소해주는가”라는 질문이 가치 평가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 수준이나 성장 잠재력이 아니라, 매수 기업의 핵심 공정 인건비나 고객 응대 비용을 실제로 얼마나 줄여주는지, 즉 단위 경제성이 기준이 된 것이다.
이는 AI 기업 밸류에이션이 전통적인 현금흐름할인법(DCF)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리얼옵션 평가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얼옵션이란 쉽게 말해, 지금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이 인수가 우리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열어준다”는 전략적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하는 방식이다. 단, 그 옵션 가치가 인정받으려면 재무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컨대 도입 비용 10억 원의 AI 공정 자동화 솔루션이 연간 5억 원의 인건비와 불량 폐기 비용을 절감해 2년 내 투자 회수가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될 때, 비로소 그에 합당한 M&A 프리미엄이 붙는다.
결국 시장이 AI 기업에 묻는 것은 “얼마나 앞선 기술인가”가 아니라 “우리 조직의 어떤 비용을, 얼마나, 언제까지 줄여줄 수 있는가”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사실상 달마다 바뀐다. 완벽한 밸류에이션 공식이 정립되거나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조직 내 단위 업무부터 AI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자체적인 데이터 자산을 내재화하는 실행의 반복이다. 결국 M&A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밸류에이션 근거는, 화려한 피치덱이 아니라 이미 축적된 운영 데이터와 검증된 비용 절감 실적에서 나온다.
중기이코노미
이창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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