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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혁신학교가 16년간 지켜온 것

2019년, 5·18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던 전두환을 향해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당당히 목소리를 낸 것은 광주동산초 학생들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5·18 다큐멘터리 관람 후원금을 스스로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혁신학교가 16년간 지켜온 것

혁신학교가 16년간 지켜온 것

김혜자 각화중학교 교장

2026년 09월 06일(일) 22:00

2019년, 5·18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위해 법정으로 향하던 전두환을 향해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당당히 목소리를 낸 것은 광주동산초 학생들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5·18 다큐멘터리 관람 후원금을 스스로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법원 맞은편이라는 장소성과 혁신교육의 교육과정 특성이 맞물려 아이들은 교과서 속 관념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아픔과 정의에 공감하는 학생 시민으로 자랐다. 광주 최초의 빛고을혁신학교로 출발한 이 학교가 걸어온 16년의 길이다.

그러나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 출범과 정책 전환의 흐름 속에서 혁신의 이름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해를 맞고 있다. 16년간 쌓아 올린 교육과정 중심 학교 문화와 학생 자치, 삶을 위한 교육 가치가 자칫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학교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혁신학교가 지켜 온 것은 단순한 현판이 아니다. 빛고을혁신학교 2.0이 그린 청사진에는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 2633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8인 실무단에서 시작해 100인 공론장과 다섯 차례의 현장 포럼을 거치며 광주 교육공동체가 서로 대화하고 학습한 숙의의 결과다.

공공·민주·자율·생태·연대, 이 다섯 가치 위에서 아이들은 도전과 상상으로 ‘모두 잘 삶’을 추구하는 온전한 시민으로 자란다. 학교민주주의는 교실 민주주의로 확장하고, 배움과 삶이 하나로 이어지는 교육과정을 세우며, 교실 문을 열고 학년을 넘어 마을과 세상을 잇는 협력과 연대의 실천공동체로 나아간다. ‘더 나은’ 학교를 함께 만들어 가려는 도전과 상상, 그것이 혁신학교들이 함께 그린 내일의 모습이다.

어느 교사는 혁신학교를 ‘밥상’이라 불렀다. 잘난 사람만 앉는 자리가 아니라, 모두가 둘러앉아 한 숟갈씩 나누며 함께 자라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라고. 누군가에게 혁신학교는 큰 나무와 작은 풀, 이름 모를 새까지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우러지는 ‘숲’이었고 경쟁을 좇는 학교들 사이에서 만난 ‘오아시스’였다. 다시 자라게 하는 ‘봄’이자,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북극성’이라고도 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정말 그럴까’를 묻게 하는 ‘물음표’였고, 언제나 돌아가야 할 ‘늘 첫마음’이었다.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은 광주동산초를 두고 단순한 초등학교를 넘어 지역의 역사성을 품은 민주시민교육의 상징적 공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깊은 배움과 성장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학교의 진심을, 이들은 오래 지켜보아 왔다. 혁신학교가 만들어 온 주체성과 역사의식은 그 틀 속에서 자라난 소중한 결실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혁신학교의 계절이 지나가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혁신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열여섯 살을 맞은 빛고을 광주의 혁신학교는 지금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교직원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며 성찰한다. 그렇게 쌓인 민주주의는 학교의 교육과정을 바꾸고 학생을 삶의 주체로 세우며 우리 삶의 태도로 스며든다. 마을과 함께하며 혁신학교는 교육생태계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왔다. AI시대, 학교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이 자리에서 혁신학교는 담담히 제안한다. 급변하는 시대의 새로운 교육, 그 정답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유네스코는 ‘교육의 미래’ 보고서에서 교육을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약속’이라 했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오늘의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자라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으려면 그 미래를 주체적으로 만들어 온 혁신교육의 가치가 지속되어야 한다. 16년의 이름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지키는 일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할수록 혁신에 대한 고민과 응원은 더 깊어져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미래에 필요한 것을 미리 가르치는 곳이라는 익숙한 정의를 넘어, 한 사회가 다음 세대와 가장 오랜 시간 만나며 자신이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장소여야 한다.

우리가 함께 그려나갈 미래 교육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에 있지 않다.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묻는 데 있다. 혁신학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도 새로운 내일을 만들고 있다. 교육 수장이 바뀐다고 교육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제대로 그 길을 올곧게 걸을 수 있도록 더 과감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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