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수(한국AI의료헬스케어연구원 표준개발팀 리더)
[라포르시안] 안광학 기기는 더 이상 시력 보정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스마트안경과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 고기능 콘택트렌즈는 인간의 시각을 보조하는 단계를 넘어 생체신호를 해석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웨어러블 의료 인터페이스’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장시간 노출은 시각 피로와 안구 건조를 넘어 생체리듬 교란과 신경계 부담으로 이어진다. 콘택트렌즈 착용 때 발생하는 각막 저산소 상태 역시 장기적인 안질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변화는 안광학 기기를 단순 소비재가 아닌 지속적 건강관리 수단으로 재정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과 의료현장 사이에는 성능 정의와 해석 기준의 간극이 존재한다.
최근 글로벌 기술 흐름을 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에서는 AI 스마트안경을 중심으로 ▲시선추적 ▲동공 반응 ▲환경광 분석을 결합해 시각 피로뿐 아니라 인지 상태와 신경학적 이상까지 탐지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일부 기업은 이를 의료기기로 확장하기 위해 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나 FDA 드 노보(De Novo) 경로를 고려하고 있다.
콘택트렌즈 분야에서도 단순 시력 보정을 넘어 센서를 내장한 스마트 렌즈가 개발되면서 안압·포도당 등 생체신호 측정까지 시도되고 있다. 중국은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에 대해 GB/T 38120과 같은 국가표준을 통해 특정 파장대 기준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산업 전반에 적용함으로써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통제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임상과 규제를, 중국은 국가표준을 중심으로 안광학 웨어러블 시장 질서를 설계하고 있으며, 기술 경쟁은 이미 ‘표준 경쟁’으로 전환된 상황이다.
특히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를 보면 이러한 흐름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거에는 단순히 몇 퍼센트를 차단하느냐가 주요 경쟁 요소였지만 최근에는 특정 파장대에서의 스펙트럼 제어와 생체리듬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IEC(국제전기기술위원회)·ISO(국제표준화기구) 기반 표준이 광생물학적 영향과 광학 성능을 정의하고 있지만 국가별 이를 재해석하면서 동일한 ‘차단율’이라는 용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제품 간 비교를 어렵게 만들고 의료적 해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한계를 낳는다.
따라서 현재 블루라이트 차단 성능에 대한 정확한 지표와 성능 시험 방법에 관한 국제표준은 사실상 부재한 상황이다. 콘택트렌즈 역시 유사한 전환기에 있다. 오랫동안 핵심 지표로 사용된 산소 투과도(Dk/t)는 여전히 중요한 기준이지만 실제 착용 환경에서는 ▲눈물막 ▲착용 시간 ▲깜빡임 등 변수에 따라 각막 산소포화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단순 물성 중심 평가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연구와 산업에서는 재료 기반 수치에서 벗어나 실제 착용 환경에서 각막의 산소 상태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에서는 센서 내장으로 인한 산소 차단 문제 해결을 위해 소재와 구조 설계를 동시에 최적화하는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안광학 기기가 단순 광학기기를 넘어 생체 인터페이스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AI 스마트안경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영역이다. 시선추적 기반의 피로도 분석, 환경광 및 블루라이트 노출 측정, 사용자 행동 기반 인지 상태 분석 등 다양한 기능을 결합하면서 단순 디스플레이 장치를 넘어 개인의 시각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의료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정확도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다. 즉 무엇을 측정하고 어떤 기준으로 해석하며 어느 범위까지 의료적 주장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데이터는 정보에 머물고 정보는 근거로 전환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표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기반이 된다.
현재 안광학 웨어러블 분야는 광학 성능을 다루는 ISO 표준과 웨어러블 전자기기를 다루는 IEC 표준, 국가별 규격이 각각의 개별 축으로 존재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는 데이터를 생산하지만 그 데이터가 의료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광학적 생체적 기준과의 연결과 함께 시장 접근을 위한 국가표준과의 정합성도 확보해야 한다. 이 세 축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신뢰를 축적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이미 웨어러블 기술과 안광학 표준 양측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IEC/TC 124를 통한 웨어러블 표준화 경험과 ISO/TC 172 SC 7·IEC TC 62를 통한 광학 및 의료기기 표준 역량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개별 표준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수집부터 광학적 제어, 생체 안전성 및 의료적 해석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연결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AI 스마트안경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가 광학적 영향을 조절하며, 콘택트렌즈가 생체 적합성과 산소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구조가 하나의 표준 체계로 연결될 때 안광학 웨어러블은 비로소 의료와 산업을 동시에 아우르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안광학 웨어러블 시장은 분명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의료와 연결되는 순간 경쟁 기준은 완전히 달라진다. 기술은 기업이 만들 수 있지만 시장에서의 신뢰와 확산은 결국 표준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은 규제와 임상을, 중국은 국가표준을 통해 이미 경쟁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를 넘어 기술의 의미와 성능을 국제적으로 정의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AI 스마트안경과 블루라이트 차단 렌즈, 그리고 콘택트렌즈 산소 투과성이라는 세 축을 연결하는 표준 전략을 마련한다면 안광학 기기가 단순한 시력 보정 도구를 넘어 시각 건강을 관리하는 글로벌 의료 플랫폼으로 재정의될 것이다.
“기술은 기업이 만들지만 시장은 표준이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이 기술을 만드는 국가를 넘어 기술의 의미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의료로 연결하는 ‘표준 설계 국가’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포르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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