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신세계·한화, 서로 다른 길에도…같은 목적지 ‘AI 운영’
[디지털데일리 왕진화기자] 최근 쿠팡과 신세계, 한화가 나란히 인공지능(AI) 활용 전략을 발표한 가운데, 유통업계에서 AI는 더 이상 미래 사업이 아니라 현재의 운영 언어가 되고 있다는 점이 시사됐다.
AI를 먼저 자기 시스템 안에 깊게 심는 기업이 다음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들 기업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유통과 서비스 산업의 경쟁 기준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체 AI 인프라를 얼마나 깊게 구축하고 그것을 운영 효율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쿠팡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통해 ‘AI 팩토리’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미 수십억 달러를 들여 물류와 풀필먼트 인프라를 쌓아온 쿠팡은 이제 그 위에 AI를 얹는 단계에 들어간 셈이다.
핵심은 쿠팡 인텔리전트 클라우드(CIC)다. 이 시스템을 통해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모델을 빠르게 실험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물류센터 스케줄링과 적재 효율이 개선됐다.
그래픽처리장치(GPU) 활용률도 65%에서 95%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쿠팡에게 AI는 새로운 사업을 꾸미기 위한 장식보다 로켓배송이라는 약속을 더 낮은 비용과 더 높은 정확도로 유지하기 위한 운영 도구에 가깝다.
신세계그룹이 구글 딥마인드 출신 연구원들이 창업한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리플렉션 AI(Reflection AI)와 손잡고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사진=구글나노바나나 생성]
신세계의 접근은 다소 다르다. 신세계는 미국 AI 스타트업 ‘리플렉션 AI’와 손잡고 국내 최대 규모인 250M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AI 수출 프로그램’ 첫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도 크다.
아직 부지 선정과 전력 확보, 인허가, 자금 조달 같은 초기 과제가 남아 있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신세계는 유통기업의 외피 안에 AI 인프라 기업의 성격을 함께 심겠다는 구상이다. 즉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클라우드와 맞춤형 AI 솔루션을 제공하고, 동시에 이를 그룹 내부의 AI 전환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쿠팡은 이미 엔드투엔드 물류망과 데이터 처리 구조를 갖춘 상태에서 AI를 통해 효율을 더 끌어올리는 단계에 있다.
반면 신세계는 AI 인프라 자체를 새 성장축으로 삼아 유통 구조를 다시 짜려는 단계에 가깝다. 쿠팡이 ‘운영 최적화형 AI’에 가깝다면, 신세계는 ‘인프라 확장형 AI’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기업이 만나는 지점도 있다. 두 곳 모두 AI를 고객 경험 개선만이 아니라 비용 구조 개편과 수익성 개선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신세계가 말하는 ‘쇼핑 AI 에이전트’나 ‘리테일 AI 풀스택’ 역시 결국은 재고 관리, 물류 운영, 판매 분석까지 유통 전 과정을 다시 설계하겠다는 뜻이다. 온라인몰에서 맞춤형 상품을 고르고 결제와 배송까지 연결하는 AI 커머스는 소비자 경험 혁신이 기본이며, 운영 자동화와 효율 개선이 핵심이다.
한화의 움직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 흐름을 보여준다. 한화는 테크와 라이프 솔루션 부문 간 협업을 통해 AI 카메라, 협동로봇, 자동 발주 시스템 같은 기술을 백화점을 비롯한 호텔, 리조트, 급식 사업장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갤러리아에서는 매장 혼잡도와 고객 선호를 분석하고, 아워홈에서는 위생 점검과 안전 관리, 식자재 발주를 AI 기반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쿠팡처럼 거대한 물류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신세계처럼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도 아니다. 대신 한화는 자신이 가진 로봇·비전 기술을 생활 서비스 현장에 이식해 운영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세 기업은 서로 다른 출발선 위에 서 있다. 쿠팡은 물류와 배송의 초정밀화에, 신세계는 유통과 AI 인프라의 결합에, 한화는 서비스 현장의 자동화와 맞춤형 운영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셋 모두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도 있다. AI가 더 이상 ‘추천 알고리즘’이나 ‘챗봇’ 수준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기업 운영의 뼈대를 다시 짜는 기술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AI 자체 인프라를 가진 기업은 효율과 속도, 품질 면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물류 경로를 더 촘촘하게 짜는 한편 재고를 더 정확히 예측하며 고객 취향을 더 세밀하게 읽어낼 수 있다. 반면 AI 인프라 경쟁은 자본과 전력, GPU, 전문 인력까지 모두 요구하는 고비용 경쟁이기도 하다.
쿠팡처럼 이미 축적된 운영망 위에서 AI를 고도화하는 기업과 신세계처럼 이제 막 대형 인프라를 지으려는 기업 사이에는 투자 회수의 시간차도 존재한다. 한화처럼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방식 역시 실제 수익모델로 이어지기까지는 검증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AI를 도입했느냐는 이미 모든 기업에게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며 “AI를 통해 무엇을 바꾸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데, 세 기업의 최근 행보는 유통과 서비스 산업의 경쟁이 이제 ‘판매 경쟁’에서 ‘운영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누가 더 좋은 상품을 파느냐보다, 누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정확하고 빠르게 운영하느냐가 기업 가치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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