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최불암 별세 후 그의 삶이 조명되면서 그를 잘 몰랐던 젊은 세대도 그가 살아온 발자취에 감동 받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단순히 유명한 히트작에 출연한 연기 잘 하는 배우이기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신드롬적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작품을 넘어서서 실제 삶에서도 지켜온 ‘어른’의 마음가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장례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른 것이 고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불암 정도의 대스타라면 방송인장이나 영화인장 같은 형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많은 연예인들이 그런 장례를 큰 영예로 여긴다. 하지만 최불암은 생전에 어린이재단 일에 정성을 다 했고, 자신이 사망할 경우 운구행렬이 방송사가 아닌 어린이재단을 찾도록 유언까지 남겼기 때문에 그의 뜻을 기려 장례를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르게 된 것이다.
최불암은 “나 혼자만 행복해지는 건 결코 상상할 수 없고, 어린이들을 또 하나의 나로 보아야 한다”라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이야기했다. 근엄하게 권위를 내세우면서 위세를 부리는 것이 어른이 아니라는 얘기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며 어린이들을 챙기는 것처럼 소외된 약자를 돕는 것이 바로 참된 어른의 모습이라고 했다.
최불암은 바로 그런 어른의 모습으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땐 술을 좋아하는 한량이었는데 ‘수사반장’ 속 역할에 몰입하면서 실제의 삶이 박 반장에 가까워졌다고 했었다.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 어른, 국민 아버지 캐릭터로 자리를 잡자 실제 자신의 모습도 그런 ‘어른’에 가까워지도록 애썼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적 욕망을 절제하는 인고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연기자가 구도자는 아니지만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젊은 시절엔 알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구도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깨달으면서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더 신경 쓰고자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를 입양하는 에피소드가 방영된 후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면 보통은 반응이 좋다면서 기뻐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불암은 자신이 실제로 한 일이 아닌 대본에 의한 연기로 칭찬 받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현실에서 어린이들을 챙기기 위해 지난 1981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활동을 시작했고 85년부터는 전국후원회장까지 맡게 됐다.
시청자에게 찬사를 받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라면 그의 도덕 감수성이 매우 높았던 것 같다. 악인은 큰 악행을 해도 가책을 받지 않지만 선인은 작은 잘못에도 평생 스스로를 질책한다. 그가 말년에 세례를 받는 등 종교에 귀의한 것에도 이런 도덕 감수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이지 않게 행한 잘못이 많은데, 세례를 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작은 잘못도 가슴 속에 무겁게 담아두는 윤리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려고 한 것이다.
세례 당시 염수정 추기경이 최불암의 부인 김민자의 세례명 ‘도미니카’에 맞춰 ‘도미니코’를 세례명으로 권했지만 그는 프란치스코를 골랐다. 어려운 이들을 극진히 섬기는 정신을 본받기 위해서였다. 염수정 추기경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2012년에 최불암이 소년 수형자 교화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만큼 그림자도 길어지듯, 눈부시게 성장한 사회의 그늘을 돌아봐야 한다”라며 연기자도 사회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저절로 내 앞으로 왔고, 난 그걸 사명처럼 받아들였을 뿐”이라며 봉사활동을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라고 했다.
이러한 최불암의 언행이 연일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것이 국민과 후배 연예인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소외된 약자를 생각하는 문화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이야말로 선한 영향력이며 최불암이 우리 사회에 남겨준 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른’이 정말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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