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전섭 충북문화원연합회장
꽃은 뜰에서만 피는 것은 아니다. 새벽 바람결에 한 장의 사진으로 다시 꽃을 피우기도 한다. 버들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소낙비가 밤을 걷어내면, 어김없이 휴대전화에서 맑은 알림음 하나가 울린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카톡 소리일 뿐이지만, 나에겐 하루를 여는 꽃망울 터지는 소리다. 그 소리를 따라 오늘도 꽃방의 하루가 시작된다.
송암골로 이사 온 지 이십여년이 돼간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답답한 아파트와 다르게 전원생활은 삶의 활기가 넘친다.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하루가 새롭다.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흙 내음 가득한 시골 생활은 즐거움의 연속이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가꾸며, 무시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꽃을 사진과 짧은 글에 담곤 한다. 그 모습을 혼자 보기가 아까워 가까운 지인들에게 꽃소식을 전하다 아예 대화방을 만들었다. ‘꽃방’을 연지 벌써 11년이 넘는다.
아침을 깨우는 카톡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며 대화의 창문이 열린다. 톡방 지인들이 전하는 다양한 소식이 오가는 시공간이다. 문화예술계 소식과 희로애락을 담은 이야기,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소식을 전하며 선한 영향력의 군불을 지핀다. 이곳이 ‘전설이 될 꽃방’이라고 명명한 SNS상의 대화방이다.
꽃방을 운영하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 날 가까운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아침마다 예쁜 꽃 사진과 글을 받는데, 친구도 한번 감상하라며 보내왔다. 지구 반대편 캐나다의 친구가 아침마다 사진을 보내준단다. 낯익은 사진과 글이다.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아침마다 지인들에게 보낸 내 사진과 글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나에게 날아온 것이다. 세상에 어찌 이런 희한한 일이 일어날 줄이야.
초창기 꽃방은 지금처럼 생기가 넘치고 웃음이 머무는 공간은 아니었다. 한 분, 두 분 새로운 인연을 모실 때마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톡 알림 소리를 끄지 못해 난처함을 토로하는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하고, 사소한 오해로 오래된 인연에 실금이 가기도 했다. 저마다 삶의 결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에 어찌 어려움이 없으랴.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꽃방은 사람의 온기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육백명이 넘는 지금의 꽃방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자리를 내주는 쉼터가 됐다. 정치나 종교로 편을 가르거나, 타인에게 상처 주는 글을 올리지 않으려는 보이지 않는 약속이 모두의 마음에 자리 잡은 덕분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작은 배려가 꽃처럼 은은한 향기와 사람 냄새 가득한 정겨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꽃방에 올린 꽃 사진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공유한다. 가끔 꽃방을 통해 지친 삶에 위안을 얻고, 힘을 받는다는 사람도 있다. 또 업(業)과 업을 연결하며 지인들이 수확한 농산물도 팔아준다. 나아가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홍보로 어렵게 진행되는 크고 작은 행사에 큰 힘을 보태주기도 한다. 애당초 꽃방의 취지는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대화방’을 만들자는 거였다. 본래 의미가 시나브로 스며드는 것 같아 흐뭇하다.
묘시(卯時)는 나의 감성이 목수국 꽃송이처럼 부풀어 오르는 시간이다. 하지만 새벽의 신선함을 머금고 막 꽃송이를 여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사진을 찍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공들여 찍은 사진 중 그날의 감성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고르는 일이나 꽃말을 담아 짧은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꽃소식만으로 왁자하게 열리는 꽃방 사람들의 환한 모습을 떠올린다.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고, 힘듦을 견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꽃은 계절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피워 올린다. 한 송이 꽃이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오늘도 꽃방의 알림음이 하루를 연다. 각자의 생각을 담은 글과 꽃 사진이 연이어 올라온다. 화면 속에 피어난 꽃 한 송이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꽃을 건네는 마음은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 머문다. 언젠가 꽃방의 이름은 잊힐지라도, 꽃으로 열었던 우리들의 아침은 기억하리라. 전설이 되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으로 사람의 마음을 깨우던 그 따스한 손길일지도 모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