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주완 순천향대 아산학연구소장
“(우리는) 길 위에 난 길을 가되, 그 길은 사람이 만든 길이며 사람만이 그 길을 완성할 수 있다. 우리 같은 장돌뱅이들에게는 돈보다 사람이 먼저고 의리가 목숨보다 중하다. 돈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한곳에 머물지 않으며, 그 물결을 타는 자만이 세상을 얻는다. 우리는 발바닥으로 세상을 읽고, 등짐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이다”라는 글귀는 김주영의 <객주>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객주>는 단순한 상업 소설을 넘어 조선 팔도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민초들의 기록이다. 소설 속 보부상들의 삶은 풍찬노숙의 고단함과 치열한 생존 투쟁,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끈끈한 연대의 서사로 요약된다. 소설에서 상인들에게 집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잠자리에 불과했다.
<객주>의 주인공 천봉삼을 비롯한 보부상들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험한 산맥과 강줄기를 넘나들며 물자를 유통했다. 이들에게 길은 삶의 터전이자 동시에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전장에 다름 아니었다. 맹수의 습격, 도적의 위협, 그리고 관가의 수탈 속에서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의 이동성은 폐쇄적인 봉건 사회를 잇는 소통의 혈맥이 됐으며, 정착민과는 다른 역동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토대가 됐다. 이들의 삶을 지탱한 가장 큰 힘은 조직적인 연대였고 사농공상의 위계질서 아래 천대의 아픔을 딛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규율은 엄격했다. 어려움과 재앙이 닥쳤을 때 서로를 구원한다는 원칙 아래, 동료의 병고와 액운을 자신의 일처럼 돌보는 이들의 의리는 혈연보다 진했다.
이들은 장사꾼으로서 가장 큰 자산인 신용을 목숨처럼 여겼다. 비록 비천한 신분일지언정, 약속을 지키고 상도를 따르는 모습은 부패한 권력층의 허위의식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인간다운 존엄을 증명해 보였다. 소설의 배경인 19세기 말은 외세의 경제 침탈이 본격화되던 격변기였다. 일본과 청나라 상인들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객주> 속 상인들은 단순히 이윤을 쫓는 개인에 머물지 않았다.
이들은 토착 상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경제적 저항군의 면모를 보여줬다. 관료들의 가혹한 세금 수탈과 외세의 자본 공세 사이에서 보부상들은 생존을 위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도 근대적 시민 의식을 조금씩 싹틔워 나갔다. 산간벽지의 약초가 포구의 소금과 만나는 과정이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기본 원리이듯이 소설은 고립된 국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고, 개별 상인의 힘만으로는 거대한 외국자본의 침탈을 막아낼 수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보부상들이 나아간 길은 대외 무역의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려는 돌파구였으며 조선이 세계라는 더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했던 운명의 길이었다.
<객주>의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100년이 훨씬 지난 2026년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길이 막히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과거 보부상들이 디뎠던 길은 이제 우리에게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거대한 에너지 통로로 치환됐다. 지난 2월 말 발발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이 통로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오가는 길목이 봉쇄되자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가볍게 넘어섰고, 원유 도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우리의 경제적 혈관은 급격히 수축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객주>의 서사는 단순한 문학적 기록을 넘어 우리에게 서늘한 기시감을 준다. 외세의 자본이 조선의 상권을 잠식할 때 보부상들이 느꼈던 그 막막함은, 지금 우리가 고유가와 공급망 붕괴라는 파도 앞에서 느끼는 위기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봇짐 속에 든 면포와 놋그릇이 당시의 핵심 자산이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원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이를 통해 움직이는 반도체와 자동차 공장이 곧 현대판 봇짐에 다름 아니다.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객주의 정신은 지금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유효하다. 고유가로 인한 생산비 상승과 물가 폭등은 필연적이지만, 국가 간 외교적 협력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통해 이 풍랑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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