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을 관리하는 이치
생활이 안정되고 질서가 잡히면, 여가생활을 누리고자 하는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다. 이러한 이치로 공자는 지산겸(地山謙) 다음에 뇌지예(雷地豫)를 두었다. 예(豫)는 풍류를 즐기는 도리를 말한다. 일상에서 풍류는 삶의 활기를 북돋우는 놀이문화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놀이문화의 특성상 절제된 활동은 힘들다. 인간의 욕구를 적당히 조율하는 데 생활문화의 묘미가 있다.
뇌지예(雷地豫)괘.
괘사(卦辭)는 풍류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는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예는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이롭다(豫, 利建侯行師).” 풍류의 본래 의미는 자연의 흐름을 따라 걸림이 없이 사는 삶의 도리를 말한다. 풍류 문화가 최고로 발현되면 풍류도(風流道)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절제되고 격조 있는 풍류도를 지닌 문화라 하더라도, 대중문화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따라서 풍속의 청정한 유지에는, 끊임없는 자율적 각성과 더불어 타율적 조율작용이 동시에 필요하다. 제후와 군사는 후자를 의미한다.
지나치게 자유로운 놀이문화가 사회 저변에 확산하면, 도덕의식은 혼탁해지기 쉽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크다. 뇌지예 괘에 경책이 많은 이유다. 공자는 《계사전》에서 경책의 말씀으로 뇌지예 괘의 의미를 부여했다. “문을 이중으로 하고 격탁을 쳐서 강도를 대비하니, 이것은 예의 괘에서 취했다(重門擊柝, 以待暴客, 蓋取諸豫).” 소위 ‘딱따기’라 불리는 격탁(擊柝)은 옛날에 야경(夜警)을 돌 때 치는 두 짝의 나무토막이다. 격탁은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놀이문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변수를 막는 예방책을 대표한다.
단사(彖辭)는 괘사의 의미를 보다 자세하게 풀이하고 있다. “예는 강한 것에 응하여 뜻이 행하는 것이다. 움직임에 순순히 따름이 예다. 예는 움직임에 순순히 따르고 있고, 천지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하물며 제후를 세우고 군사를 일으키는 일에 있어서야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豫, 剛應而志行, 順以動, 豫. 豫, 順以動, 故天地如之, 而況建侯行師乎).” 위의 강한 움직임에 아래가 순응하는 형국이다.
단사는 이어서 자연의 이치로부터 사회의 질서를 끌어내고 있다. “천지는 움직임에 따르므로, 해와 달도 지나침이 없고, 사계절도 어긋남이 없다. 성인도 움직임에 순응한다. 이러한 도리로 형벌이 맑아 백성이 복종한다. 예의 시대가 갖는 의의는 참으로 크다(天地, 以順動, 故日月不過, 而四時不忒, 聖人以順動, 則刑罰淸而民服. 豫之時義大矣哉).”
대자연의 생태적 법칙과 보편적 도덕률은 성인도 거부할 수 없다. 음양이 기운 생동하는 대자연에는 엄정한 풍류도의 섭리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생명 순환의 질서와 섭리에 맞게 살기 힘들다. 따라서 공평무사한 법의 집행은 풍속의 흐름을 맑게 관리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법질서와 절제의 미덕이 조화를 이루면, 사회는 안정과 번영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상사(象辭)는 먼저 괘상(卦象)을 말한다. “우레가 땅 위로 떨침이 예다(雷出地奮, 豫).” 상괘에는 우레를 뜻한 진괘(震卦)가 있고, 하괘에는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가 있는 모습이다. 이어 상사는 이러한 모습에서 한 나라의 풍속과 질서를 바로잡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선왕은 이로써 덕을 숭상하는 음악을 만들어 상제께도 성대히 올리고, 조상까지도 함께 배향했다(先王以作樂崇德, 殷薦之上帝, 以配祖考).”
고대에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예악(禮樂)을 새롭게 정비했다. 특히 음악은 새로운 시대의 정신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가장 강력한 역할을 했다. 음악의 중요성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편 하늘의 신과 조상에 대한 제사는 새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사였다. AI 시대에는 다양한 문화 활동이 종교를 대신해서 보편 도리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초육(初六)은 생명 율동의 즐거움을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다. 효사는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소리를 내며 즐거워한다. 흉하다(鳴豫, 凶).” 초육은 음효가 양위에 있고, 중도도 없다. 비록 대응하는 구사(九四)와 정응하고 있지만, 초육이 감당하기에는 구사의 힘은 너무 강력하다. 상사는 초육의 미약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 “초육이 소리를 내며 즐거워한다고 함은 뜻이 궁하므로 흉하다는 뜻이다(初六鳴豫, 志窮凶也).” 초육의 변괘인 중뢰진(重雷震)과 중택태(重澤兌)에서 처세의 도리를 얻을 수 있다. 지나친 쾌락을 경계하고, 매사에 조심하자.
글 내용에 맞춰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자료=뉴스버스)
육이(六二)의 효사에는 매우 암시적인 말이 나온다. “돌처럼 굳게 지킨다.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올곧으면 길하다(介于石, 不終日, 貞吉).” 원문의 ‘개(介)’는 ‘경계’와 ‘매개’의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개우석(介于石)’은 어떤 경계 안에서 중재 역할의 도리를 설명한다. 육이가 확고한 절개를 지니고 중도의 도리를 지킬 때, 변화의 흐름을 장악할 수 있다. ‘부종일(不終日)’은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공자는 《계사전》에서 부종일(不終日)의 이치를 기미(幾微)로 설명했다.
“기미라는 것은 움직이려는 찰나의 미미한 조짐이다. 길함을 미리 볼 수 있는 것이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을 착수하고, 온종일 기다리지 않는다(幾者, 動之微, 吉之先見者也. 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
상사는 육이의 비결을 중도에 두고 있다. “중정하기 때문이다(以中正也).” 중정(中正)의 도리는 공자가 음양의 양극적 흐름을 하나로 꿰뚫어 볼 수 있던 비결이기도 하다. 중정의 도를 체득한 사람은 변화의 흐름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그 능력은, 공자가 《논어》 〈자한편〉에서 밝혔듯이, 고정관념을 두지 않고 양면을 모두 파악한 후에 결론을 내리는 태도에서 발현된다.
육삼(六三)의 효사는 곤괘의 끝에서 진괘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쳐다보며 즐거워하지만, 후회는 있다. 지체하면 후회는 있다(盱豫悔, 遲有悔).” 육삼은 음효가 양위에 있고, 중도도 없다. 더욱이 대응하는 상육(上六)과도 정응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육삼은 즐거움을 누릴 처지가 아니다.
상사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위치가 부당하기 때문이다(位不當也).” 육삼의 변괘인 뇌산소과(雷山小過)와 풍택중부(風澤中孚)에서 지혜를 얻어보자. 현재의 삶에서 만족을 구하고, 일상의 작은 허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 능력 밖의 즐거움을 추구하면, 자신과 가족을 망친다. 이런 풍조가 확대되면, 사회가 부패하게 된다.
구사(九四)는 유일한 양효(陽爻)로서 뇌지예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효사는 좋다. “시절 인연으로 인해 즐거운 예로, 크게 얻음이 있다. 의심하지 않으면, 벗들이 모여들 것이다(由豫, 大有得. 勿疑, 朋盍簪).” 뇌지예의 시대에 풍류 문화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중심 동력은 구사의 역동적인 역할에서 나온다.
상사도 구사의 역할을 높이 칭찬하고 있다. “뜻이 크게 행해진다(志大行也).” 풍류 문화는 하늘의 뜻이 대중문화 속에 녹아들 때 빛을 발한다. 따라서 최고 지도자보다는 구사의 위치에 있는 실질적인 참모들이 풍류 문화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구사의 변괘는 중지곤(重地坤)과 중천건(重天乾)이다. 구사가 기운 생동하는 음양의 도리를 따르면, 대중문화는 크게 부흥할 것이다.
육오(六五)는 풍류의 시대를 맞이한 지도자의 고충을 말한다. 효사의 앞부분은 육오의 상황이다. “올곧음을 지키느라 병이 든다(貞疾).” 상사는 육오가 힘든 이유를 설명한다. “강한 것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乘剛也).” 육오의 의무는 풍류를 즐기는 일이 아니라, 풍속의 흐름을 감독하는 것이다. 구사의 강한 활동을 감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효사의 결론은 나쁘지 않다.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恒不死).” 상사는 그 근거를 유덕한 태도에 두고 있다. “중도가 있으므로 망하지는 않는다(中未亡也).” 육오의 변괘인 택지췌(澤地萃)와 산천대축(山天大畜)에서 처신의 도리를 구할 수 있다. 육오는 군중심리를 조심하고, 중도의 도리로 대중문화를 조율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육(上六)은 변화의 끝자락이다. 효사는 풍류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말한다. “즐거움이 끝나간다. 이룸이 있더라도 바꿈이 있어야 허물이 없다(冥豫, 成, 有渝无咎).”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현상은 극에 이르면 변하게 된다. 상사도 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 “위에 있는데 즐거움이 끝나가니,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冥豫在上, 何可長也).”
상육의 변괘인 화지진(火地晉)과 수천수(水天需)에서 변화의 도리를 찾을 수 있다. 시절 인연의 변화에 맞게 도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순리다. 풍류 문화는 생명의 역동성을 다양한 활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융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감성을 주로 자극하는 놀이문화나 공연문화의 경계를 넘어 보편 도리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풍류 문화가 발전하면, 사회의 격조는 높아질 것이다. 이 점에서, 진정한 풍류 문화는 일상에서 대자연의 섭리와 조화를 이루는 생활 방식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AI가 촉발하고 있는 문명의 대융합은 풍류도를 일상에서 구현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
서동석
은 동서통합 사상가인 에머슨을 통해서 정신문화에 입문했다. 특별한 인연으로 수행(修行)을 연구한 이후, 수행의 원리를 다방면으로 해석하고 개인과 사회를 혁신하는 데 적용하고 있다. 주역에 관한 새로운 해석도 이러한 차원에서 하는 중이다. <주역 인생전략>을 비롯해 <경계를 넘어 통합을 보다>, <나를 찾을 결심>, <융합창의력과 인간교육>, <어둠을 밝히는 지혜>, <미국의 정신 에머슨> <AI 시대의 생존전략, 수행>등 15권 이상의 관련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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