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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푸르름의 정체성

회색으로 출발한 겨울의 끝자락은 연두색으로 출발하여 지금은 온통 푸르름으로 질주한다. '오월은 푸르고 우리들은 자란다. ' 산과 들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는데, 초록도 푸르고 파란색도 푸르다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맑은 하늘빛이나 풀빛과 같은 색을 띤 상태를 말한다.

푸르름의 정체성

[충청논단] 박재명 수필가

회색으로 출발한 겨울의 끝자락은 연두색으로 출발하여 지금은 온통 푸르름으로 질주한다. '오월은 푸르고 우리들은 자란다.' 산과 들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는데, 초록도 푸르고 파란색도 푸르다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맑은 하늘빛이나 풀빛과 같은 색을 띤 상태를 말한다. 그 푸르름의 의미는 무엇일까?

푸르름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색깔이 다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현재형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의 표정이다. 산과 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젊음을 두고도 푸르다고 말한다. 이처럼 푸르름은 사물의 겉 빛을 넘어 존재의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살아 있고, 자라고 있으며, 아직 가능성을 잃지 않은 것들이 우리에게는 온통 푸르름이다.

봄의 잎사귀가 푸른 것은 단지 엽록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엄혹한 겨울을 견디고 다시 시작하는 힘이 그 안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 숲이 짙푸른 것은 무성함 때문만이 아니라, 제 자리를 지키며 햇빛과 비를 받아들인 시간의 두께 때문이다. 그래서 푸르름은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품는다. 처음 돋는 새순의 연둣빛에도 푸르름이 있고, 오래된 소나무의 깊은 녹색에도 푸르름이 있다.

사람의 삶에서도 푸르름은 나이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젊다고 해서 모두 푸른 것은 아니며, 늙었다고 해서 푸르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스무 살에 이미 메말라 있고, 어떤 이는 일흔에도 여전히 푸르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눈빛, 실패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마음, 타인의 아픔 앞에서 무뎌지지 않는 감정, 내일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용기는 우리 마음에 푸르름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푸르름은 완성보다 과정에 가깝다. 익어가는 열매는 결국 다른 색으로 변하지만, 그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시간은 모두 푸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숙함과 가능성, 흔들림과 성장, 그 모든 중간 과정이 푸르름이다. 그러므로 푸르름은 미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움직이는 역동적인 상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빨리 익으려 한다. 성과를 재촉하고, 결론을 서두르며, 그 결과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나치게 빨리 익은 것은 쉽게 시들기도 한다. 푸르름의 시간은 비록 서툴지만 그 과정이 소중하다. 흔들리며 뿌리를 내리고, 방황하며 방향을 찾고, 넘어지며 균형을 배운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 비로소 단단한 존재감이 열린다.

결국 푸르름의 정체성은 생명력이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마음, 아직 자라고 있는 존재, 완성된 세계와 연결되기를 멈추지 않는 상태다. 푸르름은 나무의 색이기 전에 영혼의 색이다. 그래서 오늘 내 안에 질문이 남아 있고, 작은 설렘 하나가 움직인다면, 나는 여전히 푸른 사람이다. 젊은 사람들이 줄고 늘어나는 고령자가 늘어난다. 이 사회에 푸르름을 간직한 시니어들이 움직일 때 우리 공동체는 더 푸르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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