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공연제 개막작 ‘알파고_리’
10년 전 대국 ‘희생의 제의’로 해석
AI에 거듭 패배하며 인간 바둑 기사(왼쪽 탁자 위)는 고통스러워하고, 빅테크 억만장자들은 기세가 오른다. 양의 머리를 한 사람들이 곧 또 다른 희생 제물이 될 차례인 것도 모른 채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AI와 인간의 권력 관계 역전을 상징하는 듯하다. /사진가 나탈리아 카바노프
모든 것은 10년 전 그 싸움에서 시작됐다. 2016년 3월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부터 벌써 10년. “질 자신이 없다”던 인간의 자존심은 처참히 무너졌고, 이제 아무도 인공지능(AI)의 ‘지배’에 맞설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그 기술이 이미 인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섰다는 걸 알면서도.
올해 23회를 맞은 부산국제공연예술제가 AI 시대를 성찰하는 실험적 개막작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9~10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공연한 ‘알파고_리: 희생의 원리’는 이 대결을 인류의 유산 바둑과 살아있는 전설이던 이세돌을 제물로 바쳐 AI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한 일종의 희생 제의로 재구성한다. 2억명이 넘게 시청한 이 글로벌 미디어 이벤트는 결과적으로 ‘인간은 AI를 이길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는 일종의 확신을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켰다.
공연은 열한 살 때 이미 체스 세계 2위였던 천재 데미스 허사비스가 구글에 자신의 영혼을 팔듯 머신러닝 기술로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를 파는 걸 시작으로, 인간 기사와의 대결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허사비스와는 반대로 승리를 자신하던 이세돌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극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무대 위에 펼친다. 무대 위를 이동하며 설치되는 스크린은 인간과 AI의 대결은 물론 그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거래와 극단적 감정의 충돌을 클로즈업하듯 비춘다. 강력한 베이스의 EDM과 효과적으로 활용한 조명이 120분간의 거대한 희생 제의 속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이 ‘역사적 대결’은 구글이 중국 시장에 재진출하기 직전에 세계 언론의 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였다. 치밀하게 계획된 이 홍보 캠페인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에게 도달해 인류가 인공지능에 최종적으로 패배하는 상징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세돌은 인류 전체를 대표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고, 알파고에 세 번째 대국까지 패한 뒤 “너무 많은 분들을 실망시켰다. 내 무력함을 용서해달라”고 고백한다. 양의 머리를 쓴 무용수들이 추는 격렬한 춤, 구글 관계자들이 가장 비싼 샴페인잔을 부딪히는 호텔 발코니 너머로 뛰어내리는 하얗고 어린 양의 AI 제작 영상은 상징적이다. 빅테크의 거물들은 말한다. “세계 2억명이 보고 있어. AI가 이기면 이제 아무도 막지 못 해.” 인류는 집중력과 프라이버시, 진실을 내어주고 일상의 편리를 택했고, AI는 이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는 파격적 연출, 라이브 카메라와 적극적 영상 미디어 활용 등 독창적 스타일과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주목 받아온 폴란드 극단 ‘스튜디오 테아트르갈레리아’의 신작. 극단의 예술감독인 폴란드 여성 연출가 나탈리아 코르차코프스카가 직접 연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AI 전문가와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등이 자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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