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전북 완주] 따로 지어 다시 잇다…일과 쉼 사이 ‘아름다운 여백’
[카페 ‘든손’과 책방 ‘책든손’]
주거·상업·취미 3개 공간 분절해 배치
건물 사이, 마당·데크·브릿지로 연결
1층 마당에선 공기·빛·가까운 주변을
계단·브릿지로 올라갈수록 강·숲 조망
이동하며 햇빛·바람·계절의 변화 체감
공간 사이의 거리가 곧 ‘생활의 전환점’
2026년 10월 12일(월) 20:15
작은문화공간 카페 ‘든손’과 작은 책방 ‘책든손’ 전경. <전주시 건축사회>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 만경강을 따라 난 도로에서 마을 쪽으로 눈을 돌리면 낮은 집들의 지붕 위로 흰색 노출콘크리트 건물이 솟아 있다. 그 아래로 붉은 벽돌 벽이 이어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붉은 금속 외피를 두른 박공지붕 건물이 길게 몸을 낮춘다. 주변 풍경에 몸을 숨기는 건축은 아니다. 3층 높이의 콘크리트 매스는 인근 건물보다 높고, 붉은 건물 역시 색과 형태가 선명하다. 도로변 전신주와 전깃줄, 기존 주택, 그 너머 만경강과 뒤편 숲이 새 건축과 한 장면 안에 겹친다.
카페 ‘든손’과 작은 책방 ‘책든손’이 자리한 이곳의 특징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한 건물에 모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주거와 상업, 취미를 여러 매스로 나눈 뒤 마당과 통로, 브릿지로 다시 연결했다. 출발점에는 노년의 생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일을 완전히 놓지 않으면서 자연 가까이 살고,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일을 이어가는 삶이다. 건축은 그 생활을 하나의 큰 그릇에 담는 대신 몇 개의 공간으로 나눴다. 이곳을 이해하는 열쇳말은 ‘분리’와 ‘연결’이다.
건물 내 취미공간.
◇한 채로 짓지 않은 이유
설계를 맡은 우연건축 이일우 건축사는 주거·상업·취미의 기능을 하나의 큰 볼륨 안에 쌓지 않고 기능에 따라 건물을 나눈 뒤 필요한 지점에서 다시 이었다. 효율만 놓고 보면 유리한 선택은 아니다. 건물이 나뉘면 외벽 면적과 이동 동선이 늘고, 다른 동으로 가기 위해 바깥을 거쳐야 하는 곳도 생긴다.
대신 한 채로 지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공간을 얻었다. 건물 사이에는 마당과 데크, 통로가 생겼다. 위에서 바라보면 각 매스가 대지를 가득 점유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자리한다. 그 사이의 빈 공간이 오히려 전체 배치를 묶는다. 건물 사이로 숲이 보이고, 도로와 주변 마을 풍경도 끊어지지 않는다. 한 채를 여러 동으로 나눈 결과, 건축의 영역이 실내에만 머물지 않게 된 것이다.
◇브릿지를 건너며 달라지는 시선
대지는 만경강과 주변 산을 향하지만 지상에서는 모든 풍경이 한꺼번에 펼쳐지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는 도로와 담장, 주변 건물과 가까운 나무가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높이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1층에서는 마당과 가까운 주변이 중심이 되고, 계단을 올라가면 시선이 낮은 지붕과 나무를 넘기 시작한다. 주거와 상업 공간을 잇는 브릿지를 지나 높은 층에 이르면 멀리 강과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브릿지는 분리된 건물을 잇는 실용적인 장치이면서 이 건축의 성격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하나의 건물 안에서 복도를 따라 움직였다면 느끼기 어려웠을 바깥의 기온과 빛, 풍경이 이동 과정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이곳의 조망은 한 지점에서 완성되기보다 움직이면서 달라진다. 낮은 곳에서는 마을을 보고, 높이 올라갈수록 시선의 거리가 멀어진다.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에 위치한 카페 든손과 책방 책든손.
◇한 재료로 획일화되지 않은 건축
외관 역시 하나의 재료와 형태로 정리하지 않았다. 가장 높은 건물은 노출콘크리트다. 큰 면으로 이루어진 벽에는 거푸집과 폼타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옆의 붉은 벽돌은 작은 단위가 반복되며 콘크리트와 다른 질감을 만든다.
마당 건너 박공지붕 건물은 다시 분위기가 다르다. 지붕과 외벽을 붉은 계열의 금속재로 감쌌다. 경사지붕의 실루엣은 농촌의 주택이나 창고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재료를 단순하게 처리해 주변과 다른 표정을 갖는다.
책방 ‘책든손’은 이 박공지붕 아래 자리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붕의 형태가 실내에서도 그대로 읽힌다. 천장은 지붕선을 따라 높아지고, 아래에는 목재 서가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위쪽에는 작은 다락처럼 열린 공간도 자리한다. 벽면의 크기와 높이가 다른 창은 실내 전체를 바깥으로 열어놓지 않는다. 나무와 하늘, 빛의 일부만 잘려 들어온다.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는 공간과 책을 앞에 두고 머무는 공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깥을 받아들이는 셈이다.◇주변과 닮기보다 거리를 두다
이 건축은 주변 풍경에 몸을 숨기지 않는다. 3층 높이의 노출콘크리트 매스는 마을의 낮은 지붕선 위로 솟고, 붉은 금속 외피 역시 멀리서도 눈에 띈다. 주변과 닮기보다는 재료와 높이의 차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대신 건축은 덩치를 키우는 대신 몸을 나눴다. 주거와 일터, 취미 공간을 여러 동으로 떼어놓으면서 그 사이에 마당과 길을 남겼다. 콘크리트와 벽돌, 붉은 박공지붕 사이로 숲과 하늘, 기존 마을의 풍경이 끼어든다. 이곳에서 주변과의 관계는 ‘조화’보다는 ‘대비 속의 여백’에 가깝다.
그 여백은 생활 방식과도 이어진다. 건축주는 집 가까이에서 일을 이어가고 책을 읽으며 나이 들어가는 삶을 그렸지만, 그 모든 일을 한 건물 안에 모으지는 않았다. 자는 곳과 일하는 곳, 책을 읽는 곳을 조금씩 떨어뜨렸다. 다른 공간으로 옮기려면 문을 나서 마당을 지나거나 브릿지를 건너야 한다.
건물 내 상업공간.
효율만 따지면 번거로운 동선이다. 그러나 그 짧은 이동이 하루의 장면을 구분한다. 일을 마치고 다른 공간으로 건너가는 사이 잠시 바깥에 서고, 햇빛과 바람, 계절을 만난다. 공간 사이에 둔 거리가 생활의 전환점이 되는 셈이다.
가까이 두되 하나로 합치지 않고, 연결하되 완전히 붙이지 않았다. 완주 고산의 이 건축이 보여주는 것은 세 건물의 형태보다, 일과 쉼 사이에 얼마만큼의 거리를 남겨둘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이일우 건축사는 1996년 건축설계를 시작해 현재 우연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건축을 단순히 건물을 만드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땅과 건축, 사람이 하나로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유기적 공간을 만드는 일로 바라본다. 최소한의 건축적 요소로 부지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그 위에 사용자의 삶과 지역의 기억을 담아내는 것이 나의 건축철학이다.
특히 지역마다 축적되어 온 고유한 색과 문화를 발견하고, 우리 지역만이 가질 수 있는 건축적 정체성을 찾아내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공간, 기능과 미적 가치를 넘어 경험과 영감을 주는 공간, 사용자의 생활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부드러운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전북일보=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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