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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쿠팡 핑계’는 누워서 침 뱉기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몇 배 더 많은 돈을 쓴다. 만약 이 정도 외풍에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과 원잠 협의가 멈췄다면, 문제는 쿠팡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빈약한 협상력과 전략 부재를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더...

[특파원 리포트] ‘쿠팡 핑계’는 누워서 침 뱉기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뉴스1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10월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지 반년이 넘었다. 하지만 한·미 간 본격 협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고, 미국은 19일에야 “몇 주 내로 실무 그룹을 출범시키겠다”는 선언적 계획을 내놨다. 그간 정부 안팎에서는 “쿠팡 문제가 한·미 안보 협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일개 기업의 규제 이슈가 한·미 동맹의 최상위 안보 과제를 막고 있다는 ‘쿠팡 핑계’는 사실상 누워서 침 뱉기다. 쿠팡이 올해 1분기 워싱턴에 쏟아부은 로비 자금은 약 178만달러, 우리 돈 27억원 남짓이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몇 배 더 많은 돈을 쓴다. 만약 이 정도 외풍에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과 원잠 협의가 멈췄다면, 문제는 쿠팡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빈약한 협상력과 전략 부재를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더 비교되는 건 최근 워싱턴에서 논란이 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자력 협정이다. 미국은 2009년 UAE와 협정을 계기로 신규 원자력 협력국들에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포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사우디는 “이란이 핵 능력을 확보하는데 왜 우리만 우라늄 농축 권리를 포기해야 하느냐”며 수년째 미국과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현재 워싱턴에서는 미 의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와의 협정을 위해 기존 원칙의 완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 배경에는 철저한 거래 전략이 있었다. 사우디는 미국에 대규모 투자와 무기 구매를 약속하는 동시에, 미국이 조건을 완화해주지 않으면 중국 원전을 도입할 수 있다는 말을 흘렸다. 미국 입장에서는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식 정치의 핵심은 결국 거래다. 미국 내 일자리, 투자, 제조업 부활, 중동 영향력 유지 같은 정치적 성과를 눈앞에 가져다주면 기존 원칙도 흔들린다.

한국은 어떤가.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까지 미국에 3500억달러(약 52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를 약속하고도 정작 원잠 실무 협의는 반년째 제자리였다. 미국 조선업 기반이 붕괴 수준이고, 한국 없이는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도 어렵다는 평가가 워싱턴에서 쏟아지는데도 한국 정부는 쿠팡 핑계를 대며 수세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한국의 원잠 건조를 공개 승인까지 했음에도 반년이 넘도록 실질적 진전이 없다면, 문제는 쿠팡이 아니라 우리가 미국을 상대로 전략적 청구서를 제대로 내밀지 못한 것 아닌가. 사우디는 미국의 거래 본능을 집요하게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고도 “쿠팡 때문에 어렵다”는 말만 반복해 왔다. 주도적으로 전략을 짜고 협상을 이끌어야 한다. 쿠팡을 들먹일수록 결국 우리 협상력이 빈곤하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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