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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특파원 리포트] 전기가 비싼 나라에 산다는 것

그러나 최근에 몇 년 사이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작된 가운데, 국제유가 급등과 AI 수요 폭증까지 맞물려 앞으로 더 많은 청구서가 예고되고 있다. 호르무즈발 위기는 혼란스러운 정책 속에서 우리가 누려온 전기료의...

[특파원 리포트] 전기가 비싼 나라에 산다는 것

2022년 3월 일본 경제산업성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절전을 위해 전등을 끈 채 일하는 모습. 지진에 따른 발전소 가동 중단과 추위 때문에 전력이 부족해지자 수도권과 도호쿠 지역에 전력 수급 위기 경보가 발령됐다. /교도 연합뉴스

도쿄에 부임한 뒤 전기요금 고지서를 처음 받아봤다. 이곳에 오기 전, 일본은 전기료가 한국의 2배라는 말에 살짝 겁을 먹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서 같은 달 냈던 금액보다 30% 줄었다. 계산해 보니 단위당 요금은 일본이 비쌌다. 하지만 이곳에서 쓴 전기량이 서울에서보다 70% 적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선 ‘3대 이모님’으로 불리는 건조기·식기세척기·로봇청소기를 원 없이 썼다. 하지만 이곳에선 건조기는커녕, 대다수 가정에서 쓰는 작은 통돌이 세탁기를 쓰고 있다. 식기세척기는 없는 채로 살고 있고, 냉장고 용량은 한국의 절반 크기다. 한국에선 평범하게 누렸던 것들이 이곳에선 사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전기료가 절약된 것이다.

생활 속 긴장감도 서울과는 달랐다. 에너지가 비싼 나라에 왔다는 생각에 LED 등은 작은 걸 택했다. 쓰지 않는 방은 수시로 불을 끄고 있다. 이곳은 난방도 전기(온풍기)로 해야 하기에, 추워도 참는 날이 많다. 전기요금 하나로 도쿄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셈이다.

통계를 봐도, 서울은 도쿄보다 전기를 많이 쓰는 편이다. 도쿄는 서울보다 경제 규모가 2배 크지만, 총 전력 사용량(2024년 76TWh)은 서울의 1.55배 수준이다. 2010년 1.8배에서 더 줄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직후 탈원전에 나섰다. 이듬해엔 전체 전력의 30%를 담당했던 원자로가 모두 멈추면서 나라 전체가 생존을 위한 절전 모드에 돌입했다. 수도권은 전기 사용 15% 줄이기가 의무화됐고, ‘조명 4분의 1 소등’ ‘엘리베이터 일부 정지’ ‘여름엔 28도, 겨울엔 20도’ 같은 지침이 전국 기업·관청에 내려졌다. 이때 자리 잡은 절전 습관이 일본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그래서인지 도쿄의 밤거리는 서울보다 어둡다. 간판·가로등의 조도가 낮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가 2022년 ‘원전 회귀’로 방향을 틀었지만 아직 원전이 전력에 기여하는 건 8~9% 수준이다. 화력·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려온 와중에 불안한 국제 정세까지 더해지면서, 일본은 계속 비싼 전기요금을 치를 예정이다.

오랫동안 값싼 전기를 누려온 한국은 이제야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터진 에너지 위기가 이젠 정말 내 일이 됐다는 ‘현타’가 온 것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대못을 박으면서도 지지율을 의식해 전기요금 인상은 뒤로 미뤘다. 그러나 최근에 몇 년 사이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작된 가운데, 국제유가 급등과 AI 수요 폭증까지 맞물려 앞으로 더 많은 청구서가 예고되고 있다. 호르무즈발 위기는 혼란스러운 정책 속에서 우리가 누려온 전기료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 일깨워준다. 현재의 편리함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지 그것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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