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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특별기고)AMI 보급 완료 선언, 이제는 '인프라' 넘어 '성과'를 논할 때

영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의 인공지능 플랫폼 '크라켄(Kraken)'은 전력 데이터 활용의 정점을 보여준다. 크라켄은 실시간 전력 사용 데이터를 분석해 매시간 요금이 변하는...

(특별기고)AMI 보급 완료 선언, 이제는 '인프라' 넘어 '성과'를 논할 때

이한표 홍익대학교 전자전기융합공학과 교수.

국가지능형 전력망 기본계획에 따라 2010년부터 시작된 지능형 전력 계량 인프라(AMI) 보급 사업이 14년 만인 지난 2024년 11월, 마침내 전국적 보급 완료를 선언하며 스마트 그리드의 외형적 기틀을 마련했다. 현장 여건이나 제도적 한계로 설치가 불가능했던 일부 대상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가정에 실시간 데이터 확인과 양방향 서비스가 가능한 똑똑한 계량기 체계가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국에 설치한 AMI 체계 위에서 정작 어떤 서비스들이 제공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국민의 삶에 얼마나 실질적인 보탬이 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때다.

소외된 1193만호 아파트 세대의 AMI 보급과 제도 개선 필요성

우선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AMI 보급 사업을 완료했다고 밝혔지만, 이면에는 제도적 한계로 인해 보급 대상에서 제외된 아파트 세대 약 1193만호가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라는 특이점 때문에 이는 전체 주택용 고객의 절반에 육박하는 상당한 비중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AMI를 활용한 에너지 효율화 서비스 제공이 가능할 것인지, 필자는 그것에 큰 의문이 든다.

일반 주택과 달리 우리나라 아파트는 전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전기 계약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전과 아파트 각 세대별로 계약을 맺는 ‘세대별 계약’도 있지만, 대다수의 아파트들은 아파트 단지 전체를 하나로 묶어 관리사무소가 대표로 한전과 계약을 맺는 ‘종합계약’ 혹은 ‘단일계약’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경우 각 세대는 한전의 직접 고객이 아니라 이들의 계량기는 한전의 자산이 아닌 아파트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사유 재산’이 된다. 결국 일반 주택의 계량기는 한전 소유라 한전 주도로 교체가 가능했지만, 아파트 계량기는 사유 재산이라는 이유로 그간 정부와 한전의 AMI 보급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우리와 주거 형태가 가장 유사한 홍콩의 사례를 보자. 홍콩 역시 과거에는 아파트 단위의 ‘단일계약’ 방식을 채택했으나, 현재는 국가 전력 규정에 따라 ‘일호일표(一戶一表)’, 즉 ‘세대별 계약’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전력회사가 아파트 내부망과 계량기를 직접 소유하고 관리함으로써, 아파트 거주자들도 일반 주택 거주자와 차별 없이 동등한 지능형 전력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AMI 데이터를 활용한 전 국민 대상의 에너지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아파트 세대를 제외하거나 활용 범위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인프라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도록, 계량기 소유 구조를 개선하고 아파트 내부망 고도화를 지원하는 전향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운영 성과에 대한 정밀한 검증과 패러다임의 전환

현재 AMI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는 전력 사업 전반에서 이미 우리 삶의 방식을 조용히 바꾸고 있다. 고객 서비스 측면에서는 검침원의 방문 없이 전기 사용량이 자동으로 측정되는 ‘원격 검침’과 이사 시 번거로운 절차를 줄여주는 ‘자동 이사 정산’이 도입되어 생활의 편의를 크게 향상시켰다. 또한 스마트폰 앱으로 실시간 전력 정보를 확인하거나, 비정상적인 전력 사용을 포착하는 ‘위약 탐지’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정전 발생 시 고장 구간을 신속히 파악해 복구 시간을 단축하고, 전압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하여 가전제품을 보호하는 등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기초적인 기능을 넘어 태양광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분산에너지 자원의 운영 상태를 모니터링하거나, 전기차 충전 시간과 전력 사용을 관리하는 서비스에도 AMI가 활용되고 있다. 특히, 전기 사용 패턴을 분석해 홀로 계신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는 ‘1인 가구 돌봄 서비스’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따뜻한 사회 안정망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AMI는 단순한 계량기를 넘어 전력망의 디지털화를 이끄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는 주로 공급자 중심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 앞으로는 이미 구축된 시스템이 국민 개개인에게 어떠한 실질적인 혜택을 전달하고 있는지 정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나아가 AMI 데이터가 국민의 일상에 체감되는 편익을 제공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과 정책적 지원책 마련이 시급히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서비스 모델 벤치마킹과 데이터 주권 확립

글로벌 유틸리티 기업들의 혁신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데이터 활용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영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의 인공지능 플랫폼 ‘크라켄(Kraken)’은 전력 데이터 활용의 정점을 보여준다. 크라켄은 실시간 전력 사용 데이터를 분석해 매시간 요금이 변하는 ‘다이내믹 요금제’를 운영하며, 전기가 싼 시간대에 전기차를 충전하거나 가전제품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데이터 기반의 유연한 서비스는 고객의 요금을 낮추는 동시에 전력망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이러한 혁신이 가능한 배경에는 2012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 주도로 시작된 ‘그린 버튼(Green Button)’과 같은 데이터 개방 제도가 있다. 소비자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신의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안전하게 내려받거나, 본인이 원하는 민간 서비스 업체에 전송해 맞춤형 관리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마이데이터 플랫폼’ 등을 통해 데이터 개방을 추진 중이지만, 민간 사업자가 데이터를 실시간에 가깝게 빠르게 활용하기에는 여전히 절차적·기술적 문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단순한 벤치마킹을 넘어, 국내 실정에 맞는 실질적인 ‘데이터 주권’을 실현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전력회사에만 머물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창의적인 민간 서비스 업체들로 자유롭고 빠르게 흐를 수 있도록 표준화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인프라라는 하드웨어적 완성을 넘어, 이러한 데이터 유통의 유연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글로벌 수준의 에너지 서비스 생태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 가치 입증을 통한 진정한 보급 사업의 완성

현행 전력 시장 환경에서 AMI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국민 편익을 높이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이다. AMI 사업을 단순히 노후 계량기를 바꾸는 장비 교체 작업이 아니라, 전력 서비스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지능형 인프라’ 관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1,193만 호에 달하는 아파트 세대에 대한 AMI 보급을 완수하여 인프라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또한 현재 제공 중인 서비스들이 국민 삶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운영 성과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글로벌 유틸리티의 성공 사례처럼 데이터를 민간에 과감히 개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인프라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였느냐는 수치보다, 그 안에서 흐르는 데이터가 국민의 삶에 어떤 구체적인 혜택을 주는지를 입증하는 것이야말로 AMI 사업의 진정한 완성이다. 이러한 노력이 결합될 때 AMI는 대한민국 에너지 효율 향상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이한표 홍익대학교 전자전기융합공학과 교수 (hplee@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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