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법 시행 이틀 전 ‘뒤집기’
면제 조치 만료 시점도 명시 안 해
중간선거 앞 ‘왕은 없다’ 시위
미국 플로리다에서 17일(현지시간) 열린 ‘왕은 없다’ 시위에서 한 시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가면 속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는 그림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강도 대러시아 제재를 시행 이틀 전 유예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이 대러 제재 완화 조치를 이어가면서 우크라이나·유럽연합(EU)과의 공조 체제에 균열이 깊어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린지 그레이엄 러시아·이란 제재법’(그레이엄법) 중 대러 제재 조치의 효력을 면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일부 효력 면제를 할 수 있도록 한 법 조항에 따라 “이 조치가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는 확인서를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기자들에게 이 조치가 “미국에 좋은 결정이 될 것이고, 세계에도 좋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이엄법은 지난 7월 숨진 대러 강경파 린지 그레이엄 전 공화당 상원의원 이름을 따 제정됐다. 러시아산 상품에 최대 500% 관세를 매기고,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주요 구매국과 러시아의 석유 제재 회피를 지원하는 국가에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러시아 정부 인사와 금융기관의 자산을 동결하고, 에너지·해운 분야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달 18일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이달 18일 시행을 앞뒀으나, 이번 행정명령으로 효력이 중단됐다.
행정명령에는 면제 조치가 만료되는 시점은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러시아에 제재와 관세를 모두 부과하는 것이 세계 경제, 나아가 미국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하기 위해 60일의 기간을 두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다음달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유값을 낮춰 민심을 회복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9일 러시아산 경유를 미국 시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일부 제재를 풀면서 “위대한 농부와 목장주, 트럭 기사들을 위한 가격 인하가 나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레이엄법 ‘뒤집기’를 두고 반발이 이어졌다.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엑스에 “극도로 무책임하다”며 “러시아 독재자에게 굴복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적었다.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도 “린지가 경악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레이엄 의원 사망 직후 이 법안은 “린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환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미 행정부와의 주요 연락책으로 꼽히는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엑스에서 “그레이엄법 일부 조항의 시행 유예는 중요하고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일주일 사이 대러 제재 완화로 급선회했다. 지난 9일 미·러 경유 거래 합의를 시작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교체를 요구하고, 러·우 에너지 휴전을 일방 발표한 뒤 이번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군용 통신망인 스타링크 속도 제한에도 트럼프 대통령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엑스에 “경유 거래와 그레이엄법 관련 조치가 끝이 아닐 것”이라며 “잘못된 결정이며 분명 러시아에만 도움이 된다”고 적었다. 그는 12월 미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미·러·우 3국 회담 개최 가능성을 두고 “러시아, 미국 어느 쪽에서도 아직 확답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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