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제 추천은 이미 하고 있었다…법제화 후 변화는
'최적 요금제 안내 의무화' 실효성은 하위법령에 달려
대포폰 연 10만개 시대…법은 대리점 창구만 막는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시내 한 통신사 대리점에 통신사 로고가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인트데일리 손지하 기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통신사가 이용자에게 더 저렴한 요금제를 주기적으로 안내하도록 의무화하고 대포폰 개통을 방치한 통신사에 영업정지까지 부과할 수 있게 하는 내용입니다.
정부는 가계 통신비 절감과 보이스피싱 차단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제도 설계의 핵심 내용이 아직 미정인 데다 정작 문제가 큰 영역을 비껴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적 요금제' 기준, 아무도 모른다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항은 '최적 요금제 고지 의무화'입니다. 통신사는 이용자의 데이터 사용량과 요금 패턴을 분석해 더 싼 요금제가 있으면 주기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문제는 이 제도의 실질적인 내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기'가 분기인지 반기인지, '최적'을 판단하는 기준이 최근 3개월 평균인지 6개월인지, 결합할인이나 프로모션 요금을 반영하는지 여부 등 핵심 변수가 모두 하위법령으로 미뤄졌습니다. 고지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앱 알림으로 끝내느냐, 문자·우편·대리점 상담까지 연계하느냐에 따라 실제 요금제 전환율은 크게 달라집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모두 이미 자사 앱에서 AI 기반 요금제 추천 서비스를 운영 중입니다. 법 개정 전에도 해온 일입니다. 소비자 단체에서는 이번 의무화의 실질적 의미는 '추천 여부'가 아니라 '추천 기준의 공개와 검증 가능성'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통신사에 불리한 다운그레이드 안내까지 포함하도록 고지 기준을 시행령에서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법은 있되 관행은 그대로인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과기정통부는 오는 9월 시행 전까지 업계와 소비자 단체 의견을 수렴해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제도의 뼈대는 통과됐지만 살은 아직 붙지 않은 셈입니다.
◇대포폰 구멍, 법은 창구만 막는다
=대포폰 차단 조항도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대리점·판매점에서 부정 개통이 다수 발생하면 해당 통신사에 영업정지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책임을 일선 판매점에서 본사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기존 제도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러나 경찰 통계를 보면 대포폰 문제의 무게중심은 대리점 창구가 아닙니다.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적발된 대포폰 25만여개 가운데 상당수는 알뜰폰·편의점 선불 유심 등 비대면 채널에서 나왔습니다. 전체 적발 건수 중 알뜰폰 비중은 약 75%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이 채널에 대한 별도 규율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본인 확인 때 대포폰의 불법성을 고지하도록 한 조항도 포함됐지만 조직적으로 대포폰을 유통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단에 경고문 한 줄이 억지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수사 당국도 같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대포폰을 확보하는 경로는 이미 대리점 창구에서 편의점 선불 유심·비대면 온라인 개통 등 간편 채널로 옮겨간 지 오래라는 지적입니다. 대리점 관리 책임을 강화하더라도 비대면 본인확인(eKYC) 기준 강화와 선불 유심 실명제 등 병행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풍선 효과를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비대면 채널에 대한 별도 규율 없이는 이번 개정안이 대포폰 문제의 주변만 건드리는 데 그칠 수 있습니다.
◇'긴급 명령권' 신설, 양날의 검
=사이버 침해사고 대응 조항도 눈길을 끕니다. 정부는 해킹 등 긴급 상황에서 통신사에 필요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했습니다. 통신사에는 이용자 보호 매뉴얼 마련·운용 의무도 생겼습니다. 대규모 통신 장애나 해킹 사고 때마다 반복된 "사후 안내가 너무 늦었다"는 비판에 대한 응답입니다. 다만 '필요한 조치'의 범위가 열려 있어 사업자의 영업비밀 노출이나 과도한 행정개입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은 변수로 남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최적 요금제 고지, 대포폰 차단, 침해사고 대응 세 영역을 한꺼번에 손댔습니다. 방향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 제도 모두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결정할 세부 기준은 하나같이 하위법령으로 미뤄졌습니다. 공포 후 6개월의 유예 기간 그 기준을 얼마나 촘촘하게 설계하느냐가 이 법의 진짜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