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성 기자 〈리서치센터 국장·칼럼니스트〉
■ 태조가 기도한 ‘소림굴’이 산문(山門)을 나섰다…소림사, 서울시민 400명과 만난다
■ 범패(梵唄)·선명상(禪冥想)·연자말차까지…도심으로 나온 630년 불교문화의 시간
▲서울 종로 소림사의 역사와 ‘서울시민불교문화축제’의 의미를 평화롭고 따뜻한 색감으로 형상화한 이미지. 범패와 선명상, 사찰음식과 다도 체험이 산문 밖 도심 시민문화로 펼쳐지는 장면을 담았다. 일러스트=AI 생성.
■ 조선 태조가 기도한 사찰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가 즉위 전 기도를 올린 사찰이 있다. 서울 종로구 세검정 자락의 소림사다.
그 소림사가 산문山門을 나선다.
오는 18일, 산중 법당이 아니라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볼룸에서 서울시민 400명과 만난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문화행사 안내로만 읽을 일이 아니다. 소림사는 원래 ‘굴’이었다.
창건 당시 이름은 ‘소림굴’이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등극 전 이곳 굴에서 수도했고, 뜻을 이룬 뒤 1396년 혜철 선사에게 명해 절을 짓게 했다는 내력을 품고 있다.
그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면벽좌선(面壁坐禪)했다는 중국 숭산 소림사의 이름을 따 ‘소림굴’이라 불렀다. 이후 1817년 순조 때 관해 스님이 중건하면서 오늘의 소림사로 이어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니까 이번 행사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630년 전 굴에서 시작된 수행修行의 시간이, 서울 도심 한복판 그랜드볼룸으로 나온 장면이다.
■ 산중 법당이 아니라 도심 컨벤션센터
대한불교조계종 소림사는 오는 18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볼룸에서 ‘소림사와 함께하는 서울시민불교문화축제’를 개최한다. 행사는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장소는 종로구 자하문로 255, 하림각 건물 2층 그랜드볼룸이다.
산중 법당이 아니다. 도심 컨벤션센터다. 여기에 이번 행사의 의미가 있다.
불교문화를 절 안에만 두지 않고, 시민이 직접 보고 듣고 맛보고 쉬어가는 문화 체험으로 풀어낸 자리다. 이번 축제의 핵심은 불교를 교리가 아닌 문화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불교를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불교문화를 어떻게 경험하느냐의 문제다.
■ 범패·선명상·다도, 세 갈래 문화 체험
소림사가 준비한 프로그램은 세 갈래다.
첫째는 한국 불교 전통의식음악인 범패다. 범패 공연과 작법무(作法舞), 의례 시연이 마련된다. 둘째는 선명상 체험이다. 호흡 관찰 명상과 마음 관조 명상을 통해 시민들이 잠시 속도를 늦추는 시간을 갖는다. 셋째는 사찰음식과 다도(茶道)·다과 체험이다.
포스터에는 이 세 축이 분명히 박혀 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공연, 호흡과 알아차림으로 만나는 불교 수행, 수행과 함께하는 불교 다도·다과 체험이다.
보도자료만 보면 여기까지다. 하지만 추가 확인 결과, 행사의 온도는 더 구체적이었다.
■ “마음 치유 자원”으로 나온 불교문화
소림사 측은 이번 행사의 기획 배경에 대해 “소리, 명상, 음악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내면의 평온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불교문화가 현대 도시생활 속 마음 치유 자원으로 기능하도록 하겠다는 설명이다.
핵심은 ‘종교 행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림사 측은 이번 행사를 두고 “범패 공연, 사찰음식 체험, 선명상 체험 등 불교 고유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시민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또 “불교문화의 정신적 가치와 예술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전달하고 서울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교리보다 체험이다. 의식보다 공감이다. 산문 안 수행의 언어가, 산문 밖 시민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이다.
■ 동희 스님 범패, 이름만 걸린 공연 아니다
범패 공연도 이름만 걸린 행사가 아니다.
주최 측 답변에 따르면 어산(魚山) 어장(魚丈) 동희 스님 외 6인이 참여한다. 동희 스님은 대한불교 전통의식음악 범패 전승자이며, 국가무형유산 영산재(靈山齋) 전승교육사로 소개됐다. 수륙재(水陸齋)와 세계소리축제 등 국가급 행사에도 다수 참여한 인물이다.
어산은 범음(梵音)과 범패를 총칭하는 말이자 재를 올리는 현장을 뜻한다. 어장은 범음과 범패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스님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이번 무대는 단순 공연이 아니다. 불교 의례의 소리, 몸짓, 호흡이 시민 앞에 펼쳐지는 자리다. 범패는 절 안의 의식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날만큼은 서울시민이 직접 듣는 전통 공연예술이 된다.
■ 앉고, 숨 보고, 마음 보는 시간
선명상도 관람형 프로그램이 아니다.
소림사 측은 스님의 진행에 맞춰 호흡 관찰 명상과 마음 관조 명상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스님의 안내에 따라 함께 선명상을 체험하게 된다.
복잡한 설명보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앉는다. 숨을 본다. 마음을 본다. 서울의 속도에서 잠시 내려오는 시간이다.
도시의 하루는 빠르다. 출근길도 빠르고, 뉴스도 빠르고, 마음도 빨리 닳는다. 그 속도 앞에서 선명상은 멈춤의 기술이 된다.
■ 연자말차와 다식, 오감으로 만나는 불교
사찰음식과 다도 체험도 준비됐다.
주최 측은 사찰음식 전문가가 진행하며, 연자말차와 다식(茶食) 등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교문화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소리로 만나고, 호흡으로 만나고, 차와 다식으로도 만난다. 그래서 이번 축제는 ‘오감의 행사’다.
눈으로는 작법무와 의례 시연을 본다. 귀로는 범패를 듣는다. 몸으로는 명상을 따라간다. 입으로는 사찰음식과 차를 맛본다. 마음으로는 잠시 쉬어간다.
불교는 설명되는 순간보다 경험되는 순간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소림사와 함께하는 서울시민불교문화축제 포스터. 630년 전 ‘소림굴’로 시작된 서울 종로 소림사의 시간이 범패, 선명상, 사찰음식, 다도 체험을 통해 도심 시민문화로 확장된다. 사진=대한불교조계종 소림사 제공.
■ 400명 모집 마감, 수요가 먼저 답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또 있다. 서울시민 400명 선착순 모집은 이미 마감됐다.
기존 행사 안내 기사들은 “서울시민 400명을 모집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소림사 측은 추가 확인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어 현재 선착순 모집이 마감됐다”고 밝혔다.
보도자료는 행사를 알렸지만, 모집 마감은 수요를 증명했다. 서울시민이 반응했다는 뜻이다.
그 반응은 단순히 무료 행사라서만은 아닐 수 있다. 도심 시민들에게는 잠시 멈출 자리가 필요했다. 종교를 믿느냐보다, 지친 일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쉬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먼저였을 수 있다.
■ 조선 수륙재의 기억까지 품은 도량
소림사의 역사를 놓고 보면 이번 행사는 더 크게 읽힌다.
소림사는 조선 태조의 기도처였고, 왕명으로 세워진 도량이었다. 조선의 시간 속에서 수행처로 이어졌고, 근현대에는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맥을 이었다.
조선 전기 소림굴의 이름은 수륙재 기록과도 맞닿아 있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불교 의례다. 소림사의 시간은 개인의 기도처를 넘어, 공동체의 위로와 의례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었다.
산문 안에서 이어진 시간이 있었다. 이제 그 시간이 산문 밖으로 나왔다.
■ 종로에서 다시 읽히는 불교문화
종로는 서울의 오래된 시간과 현재가 겹치는 공간이다. 궁궐과 사찰, 골목과 빌딩, 오래된 신앙과 현대 도시의 속도가 함께 놓인 곳이다.
그곳에서 불교문화축제가 열린다.
전통은 박제되지 않는다. 시민이 경험할 때 다시 살아난다. 범패는 전통의식음악이면서 공연예술이 된다. 선명상은 수행이면서 현대인의 쉼이 된다. 사찰음식과 다도는 불교의 생활문화로 시민 앞에 놓인다.
조선 600년의 시간과 비구니 수행도량의 고요함을 품은 소림사가 도심 한복판에 서는 이번 축제는, 불교 전통을 오늘의 시민이 직접 체험하는 문화의 장으로 다시 꺼낸다.
■ 불교를 설명하는 자리 아니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그래서 분명하다. 불교를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불교문화를 경험하는 자리다.
소림사 관계자는 “이번 축제는 종교를 넘어 서울시민 누구나 불교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도록 정성껏 준비했다”며 “전 세대가 소통하고 화합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행사 당일 취재와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다만 별도의 포토타임은 없고, 당일 인터뷰는 사전 일정에 따라 어려울 수 있다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그래도 장면은 충분하다. 범패가 울리는 순간, 시민들이 눈을 감고 호흡을 따라가는 순간, 연자말차와 다식이 놓이는 순간. 그 장면들이 말해줄 것이다. 630년 전 소림굴에서 시작된 수행의 시간이 왜 지금 서울시민 앞에 다시 놓였는지.
■ 630년 수행의 시간, 시민 언어로 번역되다
행사는 18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열린다. 참가 신청은 선착순 400명 모집이 마감됐다. 문의는 02-742-9500으로 가능하다.
소림사가 산문을 나섰다.
이번에는 전법(傳法)보다 먼저 문화로, 의례보다 먼저 체험으로, 종교보다 먼저 쉼으로 서울시민을 만난다.
소림사의 이번 외출은 행사가 아니라, 오래된 수행이 오늘의 시민 언어로 번역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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