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위기와 리더십 공백봉쇄 장기화할수록 피해 확산국내는 물론 전 세계 경제 위기미군이 13일 이란 석유 수출 중심지인 하르그섬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2월 26일 하르그섬의 모습. AP 뉴시스2026년 봄, 세계는 새로운 유형의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이것은 전쟁도 아니고 단순한 경제 충격도 아니다. 인공지능(AI) 기반 하이브리드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전이되는, 군사안보와 경제안보가 중첩된 복합위기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이 이란을 벼랑 끝으로 몰았고, 이란은 군사적 패배 이후 경제적 무기로 반격에 나섰다. 그 무기의 이름이 호르무즈해협이다.3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이례적 요청을 올렸다.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은 이 인위적 봉쇄로 피해를 받는 국가들로서 호르무즈해협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군함을 파병해야 한다.” 군사적으로 완전 제압했다는 이란에 맞서 동맹국들에 해군 파병을 요청한 것 자체가 위기의 본질을 드러낸다. 미국은 이 문제를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기는 미국 자신이 만들어낸 구조적 조건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찰스 킨들버거의 경고: 킨들버거 트랩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1930년대 대공황이 오랫동안 지속된 원인을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나 정책실패가 아닌 새로운 맥락에서 찾았다. 그 원인이 리더십 공백이라는 국제질서의 맥락에 있다고 보았다. 당시 영국은 세계 경제를 안정시킬 능력이 없었고, 미국은 그럴 의지가 없었다. 그 공백이 세계를 2차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이끌었다.오늘의 호르무즈 위기는 이 ‘킨들버거 트랩’의 21세기 버전처럼 보인다. 국제질서와 세계 경제를 안정시킬 능력을 가진 미국은 현재 그럴 의지가 없다. 이란을 “단지 재미로(just for fun)” 몇 번 더 폭격할 수 있다니, 당분간 미국에 리더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중국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유럽과 한국·일본·호주 등은 의지는 있으나 그럴 능력이 부족하다.호르무즈해협 봉쇄의 위험성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데이터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및 석유 제품은 하루 약 2,100만 배럴로 전 세계 공급의 21%에 달한다. 페르시아만 6개국의 생산량은 세계 총생산의 31%다.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대안 경로는 극히 제한적이다. 사우디의 동서 파이프라인(500만 배럴)과 UAE의 아부다비 원유 파이프라인(ADCOP·150만 배럴)을 합쳐도 우회 수송 가능 물량은 하루 650만 배럴에 불과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여유 생산능력 320만 배럴을 더해도 순 공급 부족은 하루 1,100만 배럴 이상이 된다. 역사상 어떤 공급 충격보다 큰 규모다.충격은 원유에 그치지 않는다. LNG 수송로가 동시에 교란되면 아시아 전역의 발전·난방·산업용 가스 공급이 흔들린다. 걸프산 나프타와 콘덴세이트 공급이 끊기면 석유화학 원료가 부족해지고, 이는 반도체 세정제·포토레지스트·봉지재 등 핵심 소재 생산 차질로 이어진다. 원유에서 LNG, 석유화학, 반도체, 제조업 전반으로 이어지는 연쇄 공급망 붕괴의 가능성, 이것이 호르무즈 봉쇄가 가진 진짜 파괴력이다. 유가는 현 배럴당 71달러에서 95~110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수 있고, 시장 패닉까지 가세하면 150달러 수준도 배제할 수 없다. 전면 봉쇄가 장기화된다면 현대 세계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인플레이션 충격이 올 수도 있다.원유 일일 현물가격. 박종희 교수 제공봉쇄 장기화로 인한 피해 구조피해의 구조는 세 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첫째, 미국은 공급망 충격에서 상당 부분 절연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가장 곤혹스러운 위치에 처한다. 셰일 혁명으로 걸프산 원유 의존도를 사실상 제로로 낮췄지만, 석유는 글로벌 단일 가격으로 거래된다. 호르무즈가 막히면 미국 주유소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휘발유 가격은 이미 갤런당 4달러라는 정치적 임계점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2008년 유가 폭등기와 2022년 러·우 전쟁 직후, 당시 미국 집권 행정부의 지지율을 수직으로 끌어내린 것이 정확히 이 선이었다.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 유가 급등은 치명적이다. 이 위기가 이스라엘에 끌려 준비 없이 시작한 중동 개입의 결과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유가 고통의 책임은 이란이 아니라 백악관으로 향한다. 이란은 정확히 이 정치적 역풍을 계산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패배했더라도 미국의 중간선거판을 흔들 수 있다면, 전략적 목표는 달성된다.둘째, 공급망 충격이 가장 깊이 파고드는 곳은 아시아다. 충격을 흡수할 완충재 없이 걸프산 원유에 절대적으로 노출된 이 지역은, 봉쇄가 장기화될수록 세계 경제의 가장 위험한 뇌관이 된다. 유럽은 노르웨이, 북아프리카, 러시아 대체선으로 공급을 다변화해 왔다. 반면 한국, 중국, 일본, 아세안 국가들과 글로벌 사우스 대부분은 걸프산 원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EIA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은 원유 수입의 75%, 한국은 70%, 인도는 65%, 중국은 45%가 걸프산이다. 이 수치들이 곧 봉쇄 충격의 흡수 강도를 결정한다. 이들 국가들은 1차 공급망 충격에 더해 유가 폭등으로 시작되는 수입 물가 상승, 무역수지 악화, 통화가치 하락, 금리 압박 등의 2차 충격을 받게 된다. 이란이 중국행 유조선을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고 위안화 결제를 추진하는 것은 아시아에 집중될 공급망 충격을 미국 탓으로 돌리고 중국을 이 분쟁에 끌어들여 '친이란 대 반이란' 구도를 조성하려는 노림수다.셋째, 한국의 처지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특히 우려스럽다. 석유 수입 의존도 97%, 그중 약 70%가 페르시아만산이다. 한국은 단순한 에너지 소비국이 아니다. 연간 50조 원 규모의 석유화학 산업이 걸프산 나프타와 콘덴세이트를 원료로 쓰며, 정유 능력 하루 340만 배럴로 아시아의 주요 석유 제품 수출국이기도 하다. 봉쇄는 원유 부족에 그치지 않고 석유화학-정유-제조업으로 번지는 산업 연쇄 붕괴를 유발한다. 정부가 발표한 전략비축유 208일분은 숫자상으로 나쁘지 않지만, 민간 재고를 제외한 실질 방출 가능량은 이보다 적다. 전면 봉쇄 시 정유 가동률이 40% 수준으로 하락하면 비축유 소진까지 약 85일밖에 남지 않을 수 있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이 걸프 산유국 유전 개발에 직접 지분 투자해 위기 시 우선 배분권을 제도화해 놓은 것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한국 정부는 불철주야 움직이고 있다. UAE와의 긴급 협의를 통해 600만 배럴 이상의 원유 도입을 확정하고,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ADCOP 종착지 푸자이라항을 활용해 국적 유조선 2척을 즉시 투입하기로 했다. UAE가 한국 내 공동 비축 중인 원유 200만 배럴도 요청 즉시 공급받을 수 있다는 확약을 얻었다. 한국이 수출한 방공 시스템 ‘천궁’이 UAE의 안보를 지키고, UAE의 원유가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안보-에너지 호혜 구조가 실제로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UAE의 항구도 이란의 공격 범위에 놓여 있다. 또한 600만 배럴은 하루 소비량 270만 배럴의 이틀 치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작금의 위기는 경제안보 차원의 중요성을 넘어선다. 세계 제조업의 중심인 아시아가 1차 공급망 충격, 2차 인플레이션 충격을 받게 되면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 킨들버거가 경고한 리더십 공백의 끔찍한 결과가 호르무즈해협에서 현실화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킨들버거 트랩'과 위기의 한국 경제 [아침을 열며]
인공지능(AI) 기반 하이브리드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전이되는, 군사안보와 경제안보가 중첩된 복합위기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이 이란을 벼랑 끝으로 몰았고, 이란은 군사적 패배 이후 경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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