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한미 동맹…정공법으로 ‘조기 수습’ 방점
美, 강경화 대사에 차별금지 서한
방시혁 출금해제 등 무리한 요구
개별 기업 연계해 韓 잇따라 압박
핵잠 도입 등 안보 논의 지지부진
위성락 “정상 협력상태 위해 노력”
정치 쟁점화·갈등 확산 방지 집중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가 쿠팡이라는 개별 기업 문제가 한미 간 안보 협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공식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규제와 개인정보 유출 대응을 둘러싼 갈등이지만 실제로는 우라늄 농축,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한미 안보 현안의 후속 협의와도 맞물려 있는 셈이다. 그만큼 한미 관계가 물밑에서 조율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갈등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청와대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미국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쿠팡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대로 가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 논란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에 대해서도 상황을 명확히 설명하며 불필요한 확산을 차단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3일(현지 시간) 베트남 하노이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대응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실제로 안보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쿠팡 문제는 개별 기업의 사안으로 안보 협상과는 별개로 대응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라늄 농축과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주요 안보 논의의 진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위 실장은 “정부는 그런 방향의 연결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쿠팡의 문제는 법적 절차대로 진행하고 안보 협상은 안보 협상대로 진전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미국과 논의하고 있다”며 “지연시키지 않아야 하고 조속히 체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문제와 안보 협의를 분리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기조를 밝힌 셈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3일 베트남 하노이 한 호텔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미국 연방하원 공화당 의원들이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말라는 취지의 서한을 보낸 데 대해서는 “주목해서 봤다”며 “그 문제는 그것대로 의원들과 접촉해 설명하고 이해를 제공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측 우려에는 외교 채널을 통해 설명하되 국내 법 집행과 안보 협상은 별개의 사안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미 간 파열음은 올해 초부터 단계적으로 고조돼왔다. 올 1월 쿠팡 투자사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의향서를 발송한 데 이어 미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 대우하고 있다”며 조사를 요청하면서 통상·투자 쟁점으로 번졌다. 이후 개인정보 유출과 독점 문제를 둘러싼 국내 규제 움직임이 맞물리며 미국 측의 우려도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개입은 쿠팡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 분위기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 대한 출국 금지 해제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청장 직무대행에게 보냈다. 경찰이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사실상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미국이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닌 경찰에 직접 특정 인물의 출국 금지 해제를 요청한 것을 두고 외교 결례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 내부에서는 미국 로비스트들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감지된다. 일각에서는 쿠팡 사안 역시 미국 로비스트들이 개입해 문제를 키우면서 사실상 미국의 대(對)한국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입장에서는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을 전면에 내세워 한국을 압박하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정부의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 제기하기 어려운 사안들을 쿠팡을 앞세워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미 안보 협의는 잠시 삐걱댈 수는 있지만 계속 갈 수밖에 없는 만큼 쿠팡이 미국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의 구성 핵시설 발언 여파로 미국이 대북 정보 공유를 일부 제한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는 조기 수습에 방점을 찍었다. 위 실장은 “정상적인 협력 상태로 조속히 돌아가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간 불협화음은 인정하되 이를 정치 쟁점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당부한 것이다.
위 실장은 해당 논란과 관련해 “대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언급하며 “정 장관이 얘기한 게 미국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유출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전제 위에서 하는 주장과 논의는 잘못된 것이라는 취지다. 그게 정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이 여야 간 대결 소재로 증폭되고 있어 우려된다”며 논란 확산을 경계했다.
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한미 간 미묘한 온도 차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진전이 이뤄져 있고 이것을 정치적 편의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어 “외교·국방 당국 간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며 “한미 간 공조 체계를 손상하지 않고 전작권을 이른 시일 내 전환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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