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여는창
서종덕 충북교육문화원 원장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 점심 메뉴는 누가 뭐라 해도 칼국수가 최고다. 오늘도 직원 몇 명을 꼬드겨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역시나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다행히 우리는 예약을 하고 왔기에 도착하자마자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미처 예약하지 못한 분들은 빗줄기를 피해 좁은 처마 밑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언제쯤 자리가 날까 하는 조바심으로 순번을 기다린다.
한국인의 칼국수 사랑은 유별나다.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한 끼지만, 전날 술이라도 한잔 기울였다면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며 속을 달래줄 때, 우리는 해장의 참맛을 경험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비 오는 날이면 대한민국 전역의 칼국수 식당이 이토록 북새통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맛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DNA 속에 각인된 어떤 집단적 기억 때문일까.
환갑을 넘긴 우리 세대에게 어쩌면 그것은 결핍의 시대를 건너온 이들의 아련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쌀이 귀하던 시절, 밀가루는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마운 대체재였다. 평생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 나는 비 오는 날이 좋았다. 비 오는 날에는 부모님이 농사일을 나가지 않고, 툇마루에 앉아 밀가루 반죽을 치대 부침개를 부쳐주시거나 칼국수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투박한 손으로 단정하게 썰어 낸 면발을 양은 냄비에 끓여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누어 먹던 그 시간. 비 오는 날의 칼국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노동의 쉼표이자 가족의 온기였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학창 시절만 해도 국가 차원에서 분식을 장려하고 보리쌀 혼식을 강요하던 때가 있었다. 자취 생활을 하던 중학교 시절, 보리쌀이 섞인 도시락을 싸갈 수 없어 점심시간마다 단속에 걸려 벌칙으로 당번을 하며 억울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당시는 쌀을 아끼기 위해 밀가루를 먹으라던 목소리가 드높았는데, 이제는 거꾸로 쌀 소비가 줄어 고민이라며 쌀 소비 촉진 운동을 벌이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밀가루를 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글루텐이 소화에 좋지 않다느니, 혈당을 급격히 올린다느니 하는 의학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에 이롭고 해롭고를 떠나, 누구에게나 영혼을 달래주는 소울 푸드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맛있게 먹으면 영 칼로리라는 농담처럼, 비 오는 날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나누는 칼국수 한 그릇이 주는 심리적 포만감은 그 어떤 보약보다 값진 것 아닐까.
그렇지만 나이가 한 살 두 살 늘어갈수록 건강이 최고라는 명제와 아내의 잔소리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진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가려 섭취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칼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이 탄수화물 덩어리를 계속 즐겨도 될까’라는 세속적인 고민과‘이 맛을 포기하고 무슨 재미로 살까’라는 철학적 고뇌가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결국, 인생은 균형의 문제일 것이다. 빗소리를 반찬 삼아 먹는 칼국수 한 그릇의 행복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즐거움을 오래 누리기 위해서라도, 내일은 오늘 먹은 칼국수만큼 더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식당을 나서니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다. 건강과 맛, 추억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아마 나는 다음 비 오는 날에도 칼국수 집에 예약 전화를 누르고 있을 것만 같다.
서종덕 충북교육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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