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주 3일제'가 기술 기업 수장들 사이에서 공통 화두로 떠올랐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AI 산업을 주도하는 주요 기업과 정책 기관들이 AI 생산성 향상이 노동시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업무 효율이 개선되는 수준을 넘어 '일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칸트는 일자리를 인간 본질의 핵심이라 봤다. 그러나 AI는 생산성의 측면에서 문명 발전의 트리거를 오히려 충실히 반영한다.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한 인류 문명의 핵심이 AI 그 자체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인간 본질의 핵심을 일하는 행위 그 자체에 놓을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일할 수 있는가라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출근길. 사진=연합뉴스
에릭 위안 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AI가 삶을 더 좋게 만든다면 왜 주 5일을 일해야 하느냐"며 "모든 기업이 주 3~4일 근무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업 도구 기업의 수장이 직접 근무일 단축을 언급해 눈길을 끈다. 심지어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역시 "AI 혁명은 사회 구조 변화를 동반하며 주 3일, 혹은 4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해 눈길을 끈다. 물론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새로운 일이 생겨 오히려 더 바빠질 수도 있다"고 덧붙이며 낙관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동시에 짚었으나, 세계 최고 AI 반도체 기업의 수장이 AI 혁명의 끝에 주 4일제를 거론한 것은 상당한 의미라는 평가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10년 내 주 2~3일 근무도 가능하다"면서 로봇세 도입과 더불어 인간이 과중한 일자리의 공포에서 벗어날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는 "10~20년 안에 일 자체가 선택 사항이 될 것"이라며 노동의 종말에 가까운 미래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주요 테크업계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거나 축소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노동시간 감소를 필연적 흐름으로 보는 뉘앙스를 숨기지 않는다.
현장의 사례도 나오고 있다. 당장 미국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컨빅셔널(Convictional)은 지난해 AI 기반 업무 자동화를 도입한 이후 주 3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도 직원 급여를 유지하고 기존 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한 사례를 공개했다. 캐나다 법률회사 로스 펌(The Ross Firm) 역시 생성형 AI를 문서 작성과 리서치 업무에 활용하면서 주 4일 근무제를 유지하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생성형 AI가 회의 일정 조정과 문서 작성, 데이터 분석 등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직원 1인당 주당 평균 10시간 이상을 절약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인적자원관리협회(SHRM)와 근로시간 단축 연구기관 '워크 타임 리덕션' 조사에 따르면 주 4일제를 운영 중인 기업 중 약 29%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제 기업의 AI 활용도는 상대적으로 낮아 생산성과 근무 방식이 동시에 재편되는 흐름이 드러나고 있다.
7일 오픈AI가 발표한 정책 보고서에서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32시간) 근무제' 시범 도입을 공식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로 증가한 생산성을 노동시간 단축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논리를 기술 기업이 직접 정책으로 제시한 셈이다. 오픈AI는 이와 함께 로봇세 도입과 공공기금 조성 등 AI 시대의 새로운 분배 구조까지 함께 제시하며 기술 기업이 노동 정책 설계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만 작동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동일한 시간에 더 많은 일을 요구하거나 인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 일부 기업에서는 AI 도입 이후 업무 강도가 오히려 높아지거나 인력 감축 압박이 강화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실제로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은 저서 'AI 최전선'에서 AI가 인간의 퍼포먼스를 10배 증폭시켜 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기업은 직원이 AI를 통해 10배의 효율을 낸다고 해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인력을 유지하며 100배의 이윤을 창출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I 발전해도 결국 영업이나 마케팅 직무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으며 AI가 알짜 고객을 선별하는 등 일하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영화 속 토니 스타크가 AI 자비스에게 세세한 지시를 내려 능력을 극대화하듯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AI로 날개를 단 동료와의 격차"라고 호프먼은 강조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6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콘퍼런스 '휴먼X' 행사에서 챗GPT와 같은 생성 AI 기술의 등장을 "코페르니쿠스적 순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사무직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 등 부정적 영향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주요 AI 모델에 대중에게 공개된 '헌법'(행동지침)이 적용돼야 한다며 AI 투명성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국내에서도 논의는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정부와 노동계 간담회에서 주 4일제 도입과 정년 연장 문제가 함께 거론되며 AI 시대 노동정책 전환 필요성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생산성 향상분을 임금과 근로시간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핵심 과제로 지목된다.
AI가 가져올 노동의 미래는 기술 그 자체보다 생산성 증가를 노동시간 단축으로 돌릴지 기업 이익 확대에 집중할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그 선택의 방향은 각국의 정책과 기업 전략, 그리고 노사 간의 합의에 따라 갈리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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