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관리·감독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지난 6월 중기부 관계자에게 ‘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투자를 받는 기업은 벤처기업 인증을 받을 수 없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벤처기업법에선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AC) 등 법으로 정해놓은 기관(적격투자기관)으로부터 투자받는 기업이 벤처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업과 자산운용업은 적격투자기관에서 빠져 있다. 두 업종은 금융위원회 소관이기 때문에 투자 이력을 모니터링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기부의 설명이다. 당시 자산운용업계에선 ‘벤처기업 인증과 상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산운용사 투자를 꺼리는 유망 기업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기부 입장이 바뀐 것은 본지가 7월 금융투자회사의 적격투자기관 인정 문제를 보도하면서다. 보도 이후 중기부는 적격투자기관 인정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기부는 지난 23일 제2차 규제합리화위원회 회의에서 ‘창업기업 규제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코스닥벤처펀드와 창업·벤처 전문 사모펀드를 적격투자기관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자산운용사를 적격투자기관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단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부실 벤처기업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은 중기부의 고질적인 고민거리였다. 중기부로선 자산운용업계 투자까지 벤처기업 인정 요건에 포함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벤처기업법은 벤처기업에 다양한 세제·금융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그 요건을 나열하는 열거주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번 적격투자기관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열거주의 규제 체계가 모험자본 공급의 발목을 잡는 사례가 많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외부출자 비율을 40%로, 해외투자 비율을 20%로 고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CVC의 외부출자 비율을 법으로 규정해놓은 국가는 한국뿐이다. 대기업의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외부출자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자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지만, 관련 법 개정은 여전히 미진하다. 정부가 모험자본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한다고 밝힌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도 마찬가지다. 투자은행(IB) 및 기업금융 업무와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증권사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자본시장과 모험자본 기능 강화는 이재명 정부가 거듭 강조하는 정책 기조다. 모험자본 공급은 결국 열거주의 규제 체계를 바꿀 때 물꼬가 트일 것이다. 중기부가 자산운용업의 적격투자기관 인정 여부에 관한 입장을 바꾼 것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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