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실험적 시도 ‘싱크넥스트’ 흥행
“멍석은 깔아주되 간섭은 안해
낯섦의 범위에 대해서만 고민”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지난 5일 ‘싱크넥스트’ 공연이 주로 열리는 S씨어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이제 서울의 컨템퍼러리가 세계 문화를 이끌 때입니다.”
지난 5일, 40도에 육박한 광화문광장 옆 세종문화회관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안호상 사장은 “이제 핸들이 우리(한국)에게 왔는데, 그 핸들을 돌릴 준비가 됐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취임 5년간 그가 세종문화회관을 컨템퍼러리 공연예술과 제작극장으로 자리매김시킨 문제의식이다. 안 사장은 그 배경을 도시의 성격에서 짚었다. “미국 뉴욕이 세계 문화의 주도권을 쥐었던 1950∼1960년대, 프랑스 파리가 주도하던 1910년대를 보면 모두 문화적 갈등이 심했던 도시였고 그 역동성이 예술가들의 표현 공간을 넓혔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서울이 그렇다. “서울은 갈등적인 요소가 많고 시대적 격차가 혼재돼 있습니다. 그 역동성의 내부는 갈등과 충격과 아픔이고, 그게 터져 나오는 것이 예술입니다.”
안 사장은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들며 “모두 한국 현대사에 관한 이야기이자 지금의 이야기”라고 했다. “갈등과 아픔을 표현한 것이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고, 그게 지금 대한민국의 컨템퍼러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이 세계 컨템퍼러리를 주도해야 할 시기이지만 표현할 장이 없다는 아쉬움에서, 분노, 아픔, 갈망과 욕망을 뿜어낼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 실험의 장이 2022년 출범해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은 컨템퍼러리 브랜드 ‘싱크넥스트’다. 안 사장은 “장르적 정형성을 갖지 않은 예술가들이 무언가 시도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됐다”고 자평했다. 처음부터 대중적 호응을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실험은 흥행으로도 이어졌다. 지난해 이 브랜드의 객석 점유율은 90%를 넘었고, 시즌제 티켓 구매로 반응이 나타났다. 안 사장은 이를 “폭발적 대중성은 아니고, 밀도 높은 공감의 영역에 마니아가 생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싱크넥스트는 블루오션을 개척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는 “블루오션 전략의 대표적 원작 사례가 몬트리올의 시르크 뒤 솔레이”라며 비주류로 밀려 전승이 끊긴 서커스에 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게임과 결합한 새로운 공연처럼, ‘슬립 노 모어’식으로 물리적 한계를 넘는 확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도 했다.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해 예술경영인의 길을 걸어온 그는 기획자의 책무를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알아봐 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개입은 최소한에 그친다. “멍석은 깔되 간섭은 안 한다”는 원칙이다. “너무 낯선 것만 모으면 관객이 피로해질 수 있어, 낯섦의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지는 기획 차원에서 고민한다”고 했다. 다만 수익성과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좇아야 하는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K컨템퍼러리’에 대한 확신의 배경에는 K컬처의 현재가 있다. 안 사장은 세계 문화를 이끌어 온 중심지에 공백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유럽과 미국의 주요 무대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동력을 잃은 반면 국내에서는 클래식 관객이 늘고 있다. 싱크넥스트에 올랐던 작품은 유럽 무대로도 나아간다. 지난 2023년 그가 영국 런던의 한 극장을 찾았을 때는 극장장이 저녁 식사를 제안하고 먼저 “컨템퍼러리를 함께하자”고 제안해 왔다. 안 사장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유럽 무대뿐 아니라 싱가포르·상하이(上海) 등 아시아 도시 극장과의 협업도 늘릴 것”이라고 했다.
무대 밖 공간도 크게 열렸다. 무대를 열어 관객이 누워서 음악을 듣게 한 ‘리스닝 스테이지’, 국악 공연에 셰프를 초청한 실험, 라운지와 에스컬레이터 설치가 그 흐름을 만들었다. 40도에 육박한 이날도 도심 나들이·관광을 왔다가 로비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민이 많았고, 할인 티켓을 구하려 줄을 선 광경도 보였다. 지난해 대비 입점 식음료 매장 매출은 30%가량 늘었다. 여기에 서울시가 47년간 닫혀 있던 대극장 옥상을 공공 옥상정원으로 조성해 연내 시민에게 개방하면서 공간은 더 열릴 예정이다. 안 사장은 “사람들 마음속의 장벽, 문턱을 헐어 주면 어떤 공간보다 잘 온다”며 “광장에 나온 시민이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와 쉬어 가는, 마음속 사랑방 같은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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