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경 대림대학교 스포츠재활학과 교수
6·3지방선거가 치러졌다. 투표소 91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하여 선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그 누구의 관리 감독도 받지 않고 어떠한 감사도 받지 않은 조직의 결말이 이번 사태를 가져왔다고 본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고, 선출된 권력은 다시 국민의 평가를 받는다. 이 과정이 공정하게 작동할 때 민주주의는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정성을 보증하는 기관이 바로 선거관리위원회다. 선관위는 국민의 참정권을 수호하고 선거의 신뢰를 지키는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국민의 신뢰는 곧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오늘날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각종 논란과 부실한 대응, 그리고 책임 있는 자세를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은 국민적 실망을 키워왔다. 문제는 단순히 몇몇 사건의 발생 여부가 아니다. 심각한 것은 선관위가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설명과 반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높은 도덕성과 투명성을 요구받는 기관이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법을 존중해야 하듯, 선거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기관은 스스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제기된 여러 논란 속에서 국민이 목격한 것은 엄정한 자기 성찰이 아니라 조직 보호를 우선하는 태도였다.
선관위는 종종 독립성을 방패막이로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선관위의 독립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의 영향력 아래 놓인 선관위는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러나 독립성과 무책임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독립성은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일 뿐 국민의 비판과 감시까지 거부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국민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특정 사건 자체보다도 조직 문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축소하고 방어하려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신뢰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조직 구성원들의 태도와 문화 속에서 형성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선관위를 향한 불신이 결국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승자는 결과를 존중하고 패자는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선거 결과마저 의심받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 전체를 위협하는 문제다.
선관위는 지금이라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필요한 것은 개혁 의지다. 조직 내부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인사와 운영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며, 국민이 제기하는 의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선거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기관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세다.
민주주의는 신뢰 위에 세워진다. 국민이 선거를 믿지 못하고 선관위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의 토대는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실질적인 혁신, 그리고 국민 앞에 겸손한 자세로 선관위 본연의 역할을 되찾을 때 민주주의 역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강도 높은 쇄신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조직이 되길 바란다.
/이태경 대림대학교 스포츠재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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