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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추억의 항구에서

다리 위에 자동차들이 분주해진다. 6차선 차도를 정리하는 경찰의 호각소리에 재바르게 속도를 높여 지나가거나 서서히 멈춘다. 드디어 멈춘 자동차가 행렬로 이어지고 도로는 비워진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한 지점을 기점하여 양쪽 방향으로 일사분란하게 나뉜다.

추억의 항구에서

구글 선호출처 추가

이명길 수필가

다리 위에 자동차들이 분주해진다. 6차선 차도를 정리하는 경찰의 호각소리에 재바르게 속도를 높여 지나가거나 서서히 멈춘다. 드디어 멈춘 자동차가 행렬로 이어지고 도로는 비워진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한 지점을 기점하여 양쪽 방향으로 일사분란하게 나뉜다. 적확한 시각에 사이렌이 울리고, '굳세어라 금순아' 옛 시절의 묵은 유행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다리 한쪽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두 쪽으로 나누어진 다리 중 시내 쪽을 한껏 들어 올리자 붉은 다리 아래에서 갈매기 너덧 마리가 비상한다. 열광하는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진다. 이내 바다는 하얗게 품 가르고 길을 열어준다. 때맞춰 다리 아래로 어선 한 척이 통통거리며 지나간다. 15분간 이뤄지는 도개의 퍼포먼스다. 순간, 내 안에 닫힌 시간의 문이 스르륵 열린다.

다리 하나로 영도와 시내를 잇던 시절이다. 누구도 영도를 갇힌 섬으로 간주하진 않지만, 다리를 건너다닐 기회는 자주 없었다. 어머니를 따라 동래 온천장에 목욕을 가거나 서면에 할머니 댁으로 가는 일 외에는 버스도 타지 않았으니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살았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다니면서 다리를 오갔다. 성인이 될 즈음, 기존 다리 곁에 '부산대교'가 신설되었다. 붉은 아치형의 새 다리가 개통되자 묵은 다리는 그전만큼 역할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결혼 후, 시내로 나와 살아 예전 다리를 잊고 살았다.

중학교 평준화가 처음 시행되던 해였다. 학교 배정을 추첨하는 날인데 시내 학교에 가길 소원했다. 갇힌 듯 생활하는 곳을 열고 도시로 진입하고 싶은 내 안의 욕망이 눈을 뜨는 날이었다. 엄마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물가에 내놓는 어린아이 같아서 안 된다며 집 가까운 곳의 학교를 희망했다. 비록 키가 작고 막내라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어쩌면 어려운 살림에 교통비가 걱정되어 내 입을 쥐어박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창문 열어 바깥 공기를 들이키듯 자유로운 선택의 의사였으나 축복처럼 내 입방정대로 시내 학교로 배정되었다.

버스 종점이 집 가까이 있었다. 새벽 여섯 시에 첫 차인 입석버스를 타는데 뒷문 기둥 옆 자리가 내 지정석이었다. 거기 앉아야만 목적지에 내릴 수가 있었다. 버스는 영도다리를 벗어나기도 전부터 콩나물시루가 되기 십상이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무릎 위로 남의 가방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때론 주인도 모르는 가방이 창으로 먼저 들어왔다. 어디에서 흘렀는지 김치 국물이 교복 치마를 물들인 적도 있다. 버스는 반드시 굽어진 길에서 몸체를 뒤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없던 공간이 훌러덩 생겼다. 그러면 다음 승객들이 버스 발판에 발만 올려도 안내양의 힘으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갔다. 틈을 뚫고 내릴 때는 교복이 찢기고 가방 끈이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호기심이 많던 시절이었다. 버스비는 간식으로 바꾸고, 국제시장과 남포동 거리를 쏘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다리의 인도 바닥은 단단한 아스팔트가 아니라 목재였다. 더러 엉성하기도 하여 발밑으로 물결이 드러났다. 걸을 때마다 바람이 재워지길 빌며 난간에 매달리다시피 건넜다. 업무관계로 드나들던 시청은 수년 전 대형백화점이 되었다. 건물의 어떤 형체도 알아챌 수 없게 다른 시간의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다리 옆의 즐비하던 선구점도, 다리 밑에 줄지었던 초재상도 다 사라졌다.

영도에도 거대한 변화물결이 일었다. 마천루 같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신도로가 건설되었다. 여기저기 새 다리가 도시의 자존심처럼 이어졌다. 비틀대며 오가던 산복도로는 전설을 간직한 관광코스로 바뀌었다. 나 역시 세월의 파도를 건너 지금에 이르러서일까. 영도다리를 다시 찾으니,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추억의 항구다. 기억의 다리가 열리고 닫힐 때면 지나온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오늘을 건너간다. 완전히 닫히는 것이 아니기에 삶은 여전히 빛을 받아들여 이어진다. 역사도 마땅하다. 준공 당시 영도다리는 도개다리였다. 도시의 발전으로 교통량이 증가되고 상수도관이 설치되면서 그런 기능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지역 경제의 촉진사업으로 복원했다. 이제 영도다리의 도개 퍼포먼스는 토요일마다 문화 콘텐츠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다시 다리가 닫힌다. 금순이를 찾아 헤매던 그는 국제시장 장사치기가 되었다더니 아직도 영도다리 난간 위에서 초생달만 올려볼까. 통일 그날이 아직 오질 않아 얼싸안고 춤도 춰 보자던 그리움을 어쩔거나. 그렇거나 말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어진 다리 위로 자동차가 쌩쌩 오간다. 사람들도 자기 길을 찾아가느라 순식간에 흩어진다. 추억의 항구에서 영도다리 도개를 보며 잊힌 나를 건너본다. 이명길 수필가

이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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