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진행중인 대한상의 하계 포럼에서 인공지능(AI) 관련 대담을 하고 있다./대한상의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등락을 거듭하는
SK(034730)
하이닉스 주가에 대해 “메모리는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면 우상향으로 간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상의 하계포럼 중 ‘한국경제의 인공지능(AI) 성장을 위한 아젠다’를 주제로 대담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다음 달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지만 샀다 팔았다 하지 말고 가만히 갖고 있는 게 재산 보전에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최 회장은 메모리 수요 증가를 아이의 성장 과정에 빗대어 설명했다. 어린아이는 경험이 적어 머릿속에 담긴 기억이 많지 않지만 성인이 되면서 축적된 기억이 방대해지듯 AI도 유능해지고 성숙해질수록 그만큼 많은 기억을 저장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이 기억을 저장하는 게 메모리 칩이고, 그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주가가 갑자기 10배씩 오른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며 “전망이 좋아지면 올라갔다가 조금 아닌 거 같으면 확 떨어지기도 하는데, 너무 빨리 오른 만큼 현실에 적응하는 시기를 거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진행한 하계포럼 전문가 대담에서 이재욱(왼쪽부터) 서울대 AI연구원장의 진행으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한국경제의 AI 성장을 위한 아젠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대한상의
이날 대담에는 AI 전문가인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도 함께해 메모리 병목을 ‘지능 생산의 병목’으로 규정했다. 몇 년 전까지는 누가 더 크고 강력한 AI 모델을 만드느냐가 화두였다면 최근에는 가격 대비 성능, 전력 대비 성능, 긴 컨텍스트 처리 능력으로 논의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흐름의 가장 좁은 길목을 차지한 것이 HBM과 D램 같은 메모리로, 앞으로 기술이 진화할수록 이 병목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한 지능 생산 산업 전반에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권 교수는 이어 AI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특이점(Singularity) 논의로 화제를 넓히며 이런 논의들이 한국에는 큰 도전이자 동시에 기회가 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AI 산업 전략에 대해 최 회장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우회한 틈새시장 공략을 제안했다. 그는 “미래 AI는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방·안보와 직결된 문제”라며 “미국은 최고 품질의 AI를 만드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퀄리티 전략을, 중국은 토큰 생성 비용을 낮추는 가격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실제로 미국은 훨씬 많은 돈을 쓰는데도 중국이 적은 돈을 쓰면서 격차를 상당히 좁혀오고 있다”며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중국의 토큰 코스트는 미국 대비 거의 10분의 1 수준까지 내려온 상태”라고 부연했다.
최 회장은 “한국은 토큰 코스트를 낮추기도 힘들고 퀄리티로 미국을 따라잡는 전략도 별 도움이 안 된다”며 “우리 인프라를 빨리 깔아 그 위에 미국과 중국이 관심 없거나 영역이 작은 틈새시장, 혹은 제3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이 워낙 위협적이라 중립 국가들은 둘 중 하나를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국이 만든 거대언어모델(LLM)이나 애플리케이션을 이들 나라에 수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메모리 칩만 팔 게 아니라 컴퓨팅 용량 자체를 만들어 해외에 파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상품이 아니라 지능을 수출하는 쪽으로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다.
AI 시대에 필요한 경쟁력으로는 생각 근육, 공감 근육, 적응(회복) 근육, 바디 스킬 네 가지를 제시했다. 최 회장은 “미래 교육은 주입식이 아니라 인간 생활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게 뭔지 찾아내는 훈련이어야 한다”며 “그런 교육 체계를 못 바꾸는 학교는 도태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채용 시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방침을 언급하며 “대학을 나와야만 인재인 시대는 끝났다”고도 말했다. 공감 근육에 대해서는 “AI는 이해하는 척은 해도 자기 리소스를 희생해서 상대를 위로하겠다는 결심은 하지 못한다”며 공감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 미래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봤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진행한 하계포럼의 ‘한국경제의 AI 성장을 위한 아젠다’ 전문가 대담에서 이재욱(왼쪽) 서울대 AI연구원장과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대한상의
권 교수는 인재·교육 논의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초·중·고·대학·대학원으로 이어지는 선형적 교육 로드맵이 이제는 의미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공 하나로 평생을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며 학생들에게 전공을 1개가 아니라 여러 개, 그것도 순차적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익히라고 주문한다고 전했다. 교육과 인재 논의가 젊은 세대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반도체·AI데이터센터·피지컬AI라는 이른바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만큼 기존 산업 종사자들도 새로운 전공으로 갈아탈 수 있고, 인구 감소로 은퇴 없는 시대가 오는 만큼 중장년층도 교육·재훈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AI 발전의 목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최 회장은 “AI 에이전트를 계속 학습시켜서 생산성을 높인다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니다”라며 “남는 인력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그 인력에게 회사가 여태 못 하던 새로운 일을 맡겨 매출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을 줄일 생각보다 남는 사람에게 무슨 일을 시킬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조직도 부서 단위의 고정된 업무 배분에서 벗어나 여유 시간이 생긴 직원이 다른 부서 일을 돕는 올라운드 플레이어형 조직으로 바뀔 것이라 내다봤다. 나아가 한 사람이 여러 회사와 계약을 맺고 동시에 일하는 ‘N잡러’가 많아지고 직원과 회사 간의 관계도 정규직 중심에서 AI가 성과를 분석해 산출한 맞춤형 계약 관계로 재편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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