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진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표가 총알보다 강하다는 말은 원래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이 처음 사용했는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3 선거 때 자주 사용했다. 아마 정 대표는 ‘총알’이 동원됐던 12·3 불법계엄 사태를 연상시키려고 그런 표현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링컨이 말한 ‘총알론’의 의미는 훨씬 무겁고 깊다. 1974년 미국 하원 투표에서는 찬성 42표, 반대 41표로 단 한 표 차이로 영어가 미국의 공식 언어로 채택됐고, 1923년 독일 나치당 당수 투표에서 히틀러는 단 한 표차로 당선됐다는 기록이 있다. 총알은 사람을 죽이지만 투표는 역사를 바꾼다는 교훈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몰아치고 있는 ‘투표용지 부족사태’는 역사를 바꿀 정도는 아닐지라도 차기 당권과 맞물려서 정국 판도를 바꿀 정도로 메가톤급이라는 점을 대통령과 여야는 직시해야 한다.
다시 정리하면, 6·3 선거 이후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3가지 관전 포인트는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의 변화와 투표용지 부족사태의 파장,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당권 투쟁의 향방이라고 본다. 6·3 선거의 3대 후폭풍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정치권 전반을 뒤흔들 정도로 잠재적 폭발력이 크다.
李대통령 집권 2년…무리함·성급함 주의해야
먼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은 어떻게 변할까?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후 1년이 지나고 집권 2년차에 접어들 무렵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절정에 달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 국정 장악력과 정책 추진력이 최고조에 달하고 대표적인 업적과 성과들, DJ의 IT 벤처산업, YS의 금융실명제 등도 이 시기에 구체화됐다. 지난 6월 8일 장장 3시간에 걸친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정치·경제·문화·외교 안보 전반의 자신감이 넘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무리함과 성급함으로 치닫다가 애를 먹는 이른바 ‘집권 2년차 징크스’도 이 시기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 대통령이 집권 2년차 초입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할 1순위 현안은 뭘까? 그것은 ‘정청래 문제’도 ‘장동혁 문제’도 아닌 ‘선관위 문제’다. G7 정상회담 참석차 유럽을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은 국익 외교에 총력을 경주하는 와중에서도 틈틈이 국내 투표용지 부족사태를 챙겨야 할 정도로 그 정치적·법적·사회적 파급력은 강하고 크다고 본다.
지금 당장은 모든 비난의 화살이 선관위에 쏠려 있지만, 사태해결이 지지부진하고 시간이 지연될 경우, 그 화살은 대통령에게 향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이미 엄정한 진상규명을 촉구했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선관위에 압수수색에 돌입했으며, 여야는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을 위해 논의하고 있지만, 진상규명과 수사의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이런 와중에 선관위와 투표소의 각종 오류는 계속 나오고, 국민적 분노는 날로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선거 이후 10%포인트(P) 가량 떨어졌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에 추월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런 상태가 더 지속되면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
6월12일자 언론보도(갤럽 조사)에 의하면, 전면 재선거에 반대하는 사람이 48%였지만 찬성한다는 사람이 무려 44%에 달한다는 것은 심각하다. 특히 20대와 30대의 60% 이상이 재선거에 동의한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우리 국민의 절반 정도가 6·3 선거를 모두 무효화하고, 다시 투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정부·여당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대통령이 이번 투표용지 부족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2030 젊은층과 중도층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2030세대의 절반 이상이 진보 정당인 민주당이 아닌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는 데이터가 나왔고, 김부겸-김용남-하정우-김경수 등 민주당 후보들이 박빙으로 석패했던 주요인이 막판 중도층의 이탈 때문이었다는 분석을 깊이 되새겨야 한다. 그동안 이 대통령이 6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젊은층과 중도층의 기대 섞인 지지가 작용해왔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즉, 이 대통령은 앞으로 2030 세대와 중도층을 위한 정책 추진 및 성과 창출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 6월11일 오후 5시경 송파구 잠실에 있는 투표용지 부족사태의 집회 현장에 나가보니, 강성 우파로 보이는 사람들이 흔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많이 나부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공정성을 외치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낭독한 시국 선언문도 정치적 구호보다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치 대책을 강력히 촉구하는 내용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성을 느끼고, 지금보다 훨씬 더 신속하고도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여야는 머리를 맞대고 국회 국정조사특위와 특검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정치 공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권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국민의힘이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거나, 민주당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그 역풍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 모든 위험성을 미리 차단하고, 2030 젊은층과 중도층의 지지를 받아 집권 2년차의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해선 신속하고도 강력한 조치와 선관위 개혁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이 대통령이 선거 후 내심 신경이 쓰이는 것 중의 하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이 아닐까? 오 시장은 선거 때 “5선 서울시장이 되면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대통령에게 제동을 걸겠다”고 공언을 했는데, 실제로 그럴 경우 국무회의에서 어색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오 시장이 합리적 중도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적어 보이지만, 오 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여부와 발언 내용이 주목된다.
이제 이 대통령이 집권 2년차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쾌속 질주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은 2030 젊은층과 중도층 포용전략일 것이다. 6월 12일자 한 보수 언론의 특집기사에서 ‘청년들의 81%가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에서 내집 마련하기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보도 내용은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해 준다. 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과거 어느 대통령도 그랬듯이, 청년들을 위한 관심과 성과가 없으면 지지기반은 급속도로 좁아진다.
아마 이 대통령이 2기 총리에 정치인 출신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나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제치고 CEO 출신인 한성숙 벤처기업부 장관을 전격 발탁한 것도 그런 배경으로 보인다. 다만 한 총리 내정자가 250억원의 재산과 신상문제 등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정서에 어긋나지 않고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6·3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여야 양쪽 모두에게 몰아치고 있는 당권 투쟁은 모든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핫이슈다. 요즘 두 정당이 벌이고 있는 선거 승패 대한 엇갈린 해석과 당 대표 사퇴압박, 주류와 비주류의 공방 등을 보면 세상에 이런 닮은꼴이 없다. 한마디로 차기 당권과 내홍의 데자뷰다. 어느 정당의 내홍이 더 심하냐고 묻는다면, 역대 모든 정권에서 그랬듯이 집권 여당의 내홍이 유발하는 파급효과가 더 크다고 답할 수 있다. 야당의 내홍은 그 자체로 끝나지만, 여당의 내홍은 대통령과 정부에 악영향을 주고 그 폐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위험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열린 4부 요인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민주당, 6·3 선거 애매한 결과로 당권투쟁 치열
국민의힘도 내분 격렬…장동혁, 서울시장 선거 승리로 ‘버티기’
민주당의 당권 투쟁은 6·3 선거의 애매한 결과에서 비롯된다. 확실히 승리한 것도 확실히 패배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청래 대표로서는 ‘큰 승리’라고 해석하고 당권에 재도전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 셈이다. 정 대표는 “국민은 영원하고 권력은 짧다”라는 매우 도발적인 멘트를 날리는 바람에 내부 투쟁이 더 격렬해졌다. 정 대표가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어떤 의미로 패러디했는지 모르겠지만, ‘나 정청래는 국민만 바라보고 직진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은 사실이다.
권력의 속성상 중요한 것은 여당 대표의 생각이 아니라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6·3 선거 이후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실상 국민들에게 차기 당대표는 정청래가 아니라 김민석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날렸다. 이러한 ‘명픽’(이재명 대통령의 선택)과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마음)은 상당히 견고해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정대표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갈래다. 8·17 전당대회에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 출마해서 낙선하는 것, 출마해서 당선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위험스러운 상황은 정 대표가 경쟁자를 꺾고 당 대표 연임에 성공하는 경우다. 모든 언론들은 ‘정청래가 이대통령의 아바타를 꺾었다’라고 대서특필하지 않을까? 이후 당청 관계는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과거 윤석열 vs 이준석&한동훈의 갈등이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요즘 언론에는 정 대표를 지지하는 ‘문조털불래유’의 6인과 정 대표를 반대하는 ‘한강새똥돼주길’의 6인이 치열하게 갈라져 싸운다는 보도가 있다. 여기서 ‘문조털불래유’는 문재인-조국-털보 김어준-매불쇼-정청래-유시민)를 의미하고, ‘한강새똥돼주길’(한준호-강득구-김민석의 새-이동형 친명 유튜버-김용민 나꼼수-돼지 김용민-이언주-송영길)를 의미한다고 한다.
조어(造語)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친명계와 반명계의 대립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이런 상태가 8월 17일 전당대회까지 2개월 동안 지속될 경우, 민주당은 과거 친이-친박계의 대결 못지않게 상승작용을 타고, 그것은 다음 총선·대선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이상, 공은 정 대표에게 넘어왔다. 정 대표가 굳이 재출마를 원한다면 당 대표직을 당장 내려놔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제 정 대표가 빠른 시일 안에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국민의힘도 선거결과에 대해 평가가 엇갈려 당권 싸움으로 바람잘 날이 없다. 선거 전에 장동혁 대표는 자신의 운명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 달렸다고 공언했는데, 이유야 어찌됐든 서울시장 선거에서 신승을 거두는 바람에 버티기의 명분을 갖게 됐고, 당 내분은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에게 15:1로 참패했더라도 장 대표는 어떤 빌미를 찾아서라도 버텼을 것이다. 장 대표가 외치고 있는 비현실적인 ‘전면 재선거’도 그런 맥락이며, 그게 없었더라도 또 다른 구실을 찾았을 것이다. 이른바 ‘장동혁 리더십’은 합리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전망하면 틀리기 십상이었다.
앞으로 장 대표의 선택지도 3가지다. 곧바로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 내년 8월까지 임기를 꼭 채우는 것, 도중에 하차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어렵다고 보며, 세 번째인 적절한 시점의 중도 하자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장 대표가 당권파인 정점식 원내대표를 지원해서 당선시키고 두 사람 간에 모종의 역할분담을 한 뒤, 적절한 시점에 비대위를 출범시킨다는 것이다. 이어 장 대표는 2선으로 후퇴해서 정점식 원내대표와 보이지 않는 투톱 체제를 구축한다는 이른바 ‘장-정 말약설’이다.
그러나 장 대표가 여야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당부분 상실해버린 상태에서 그의 시나리오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한동훈 의원과 ‘친한계’는 이슈 때마다 장 대표를 향해 포화를 퍼붓고 있어서 이래저래 시간이 갈수록 장 대표는 심리적-정치적 사면초가에 처해 오래 버티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차이는 우열이 아니라 환경의 차이”라고 말했다.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워게임은 특정 계파의 우열이 아니라 달라진 민심의 환경에 따라서 판가름날 것이다. 아울러 총알보다 무서운 표심, 즉 민심은 대통령과 여야가 선관위 사태와 차기 당권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 나가는지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판단할 것이다. 국민들은 이미 정치권을 향해 ‘물리적인 재선거’가 아니라 ‘심리적인 재선거’를 시작했다고 본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weeklyhk@hankooki.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