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안전의무 위반 여부 ‘쟁점’
-‘위험의 외주화’ 구조 시험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도 관심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경 [사진=고용노동부]
지난 1월 13일 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 배모 씨가 13시간 노동 끝에 쓰러져 숨졌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언론에 용인 첫 번째 공장을 “3개월 앞당겨 내년 2월 가동할 예정”이라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SNS를 통해 “정치권에서 부지 이전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용인에 대못을 박기 위해 무리하게 건설 속도를 높이려 한파 속에서도 고인이 장시간 노동을 거듭해야 했던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고 밝혔다.
반도체 생산 시설은 높은 층고, 복잡한 구조, 중량 자재 운반, 정밀 공정 대응이 동시다발적으로 요구된다. 공정 지연이 전체 일정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무리하게 공기 단축을 강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초 2027년 5월 가동 마감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 주 7일, 24시간 3교대로 돌아갔고, 하청업체는 지체 보상금을 물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는 셈이다. 잇따른 사고가 반도체 활황을 이유로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로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공장)의 첫 클린룸 가동 시기를 2027년 2월로 석 달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 25일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에 대한 신규 시설투자비를 약 21조6000억원 더 집행하기로 했고, 총 투자 규모를 약 31조원 수준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삼성과 SK는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생산량 확대를 위해 신규 팹 완공 시점을 앞당기는 ‘속도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1000조 원이 투입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정치권에서 전북 새만금으로 이전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자 이를 의식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속도전의 실제 부담은 건설 노동자들에게 향할 수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감독 결과는 현장의 일정 압박이 노동시간 위반으로 이어졌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계는 발주와 시공, 하도급이 촘촘히 얽힌 구조 속에서 위험이 아래로 전가되는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라고 지적하며, 원청 경영책임자까지 포함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법조계와 노동계는 이번 사안을 두고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관측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원청 경영책임자인 SK에코플랜트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했는지, 하청업체인 남웅건설에 무리한 공기 단축을 압박했는지가 향후 수사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 / 알티케이뉴스 DB
권영국 대표는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반도체 공장을 발주한 원청 경영책임자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공기 단축은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며 “아무리 현장에서 안전을 강조한다한들, 실제 사업의 결정권을 가진 원청의 최고 경영자가 같은 인력과 같은 비용 하에서 설계에 예정된 공기를 단축하라고 지시하면 안전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과 별개로, SK에코플랜트는 이미 과거 시흥 월곶고가교 붕괴 사고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법원의 집행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일시 효력이 정지됐지만,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진행 중이다.
만약 이번 중처법 수사에서도 기소·유죄가 확정될 경우, SK에코플랜트는 국내 최대 건설 현장을 시공하면서 동시에 형사 책임을 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실제 원청 책임을 둘러싼 판단은 점점 엄격해지는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산업 안전, 이제 선택 아닌 필수’ 세미나에서 허훈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나온 법원 선고 85건 중 유죄가 선고된 사건은 75건으로 이 중 48%인 36건은 하청업체 근로자 사망 사고였다고 밝혔다. 이는 하청 노동자에게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원청의 관리·감독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법원은 유죄가 선고된 75건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은 경우, 동종 사업장에서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 적발된 경우, 사고 발생 후 허위 문서를 작성한 경우 등을 불리한 양형 사유로 판단했다. 반면 동종 전과가 없고 합의에 따라 피해자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정부의 시정 명령을 이행한 경우, 사고 이후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구축한 경우 등은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알티케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노동자 사망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로 볼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 건설 현장에 만연한 장시간 중노동과 한파 속 야간작업이 겹쳐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며 “노조는 사고 이후 SK 측을 규탄하고, 노동부에도 시정조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철저한 수사와 원청·경영책임자 책임 규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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