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이태영 기자]반도체 가격 급등이 산업 전반에 ‘호재’로 직결된다는 단순한 해석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메모리 업황 반등이 기업 실적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완제품 가격 인상과 수요 둔화를 유발하는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주목된다. 공급망 상단의 이익 개선이 하단 수요를 위축시키는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 가능성이 현실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최태원(오른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과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 국빈 방한 환영 만찬에 참석해 있다. [사진=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최근 시장에서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범용 D램 고정거래가격은 올해 들어 분기 기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낸드 역시 재고 조정이 마무리되면서 가격 반등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공급 부족 양상이 심화되며 가격 협상력이 공급업체로 빠르게 이동하는 분위기다. 일부 제품군에서는 전년 대비 큰 폭의 가격 상승이 이미 현실화됐고, 추가 인상 기대감도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수혜의 강도는 기업별로 크게 엇갈린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가격 상승의 효과가 곧바로 실적에 반영된다. 특히 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증하면서 D램·낸드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흐름은 ‘이익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요인이다. 시장에서 ‘메모리 슈퍼사이클’ 기대가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23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수출액은 533억 달러로 전년 보다 50.4%(178억6000만 달러) 증가했다. 매월 20일간 수출 실적으로는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품목별로는 반도체(163.9%), 승용차(11.1%), 석유제품(49.0%), 컴퓨터 주변기기(269.4%), 철강제품(21.6%) 등 대부분 효자품목의 수출이 늘었다. [그래픽=뉴시스]
반면 삼성전자는 동일한 환경에서도 상반된 압력을 동시에 받는다. 반도체(DS) 부문은 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 개선 국면에 진입하지만, 스마트폰·TV·가전을 담당하는 DX 부문은 원가 상승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문제는 이 비용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순간이다. 이미 회복 속도가 더딘 글로벌 IT 수요에 가격 인상까지 겹칠 경우, 소비 위축→출하 감소→실적 둔화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이러한 ‘상단 호황-하단 위축’의 비대칭 구조를 경계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공급사 수익성을 개선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PC·스마트폰 등 세트 수요를 훼손해 다시 반도체 수요를 약화시키는 ‘되먹임(loop)’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업황 사이클에서도 가격 급등 이후 수요 둔화가 뒤따르며 변동성이 확대된 사례는 반복돼 왔다.
더욱이 이 같은 구조적 긴장은 기업 내부로도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부문이 초과이익을 누리는 동안 세트 부문은 비용 압박과 수요 둔화에 직면하면, 사업부 간 실적 격차는 빠르게 벌어진다. 성과급 등 보상 체계가 실적 연동 구조인 점을 감안하면, 보상 격차 확대는 곧 조직 내 갈등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과도한 성과보상 체계가 부문별 ‘온도차’를 키워 노노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메모리 가격 상승 국면의 핵심 변수는 ‘지속 가능성’"이라며 "가격 상승이 최종 수요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어질 수 있느냐"를 관건으로 꼽았다.
특히 “반도체 가격 상승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완제품 수요가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냐는 점”이라며 “수요 기반이 흔들리면 반도체 호황 역시 길게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