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안= 이태영 기자]데미스 허사비스와 매디슨 황이 비슷한 시기 한국을 찾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단순한 일정상의 우연이라기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클라우드’에서 ‘현실 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을 전략 거점으로 선점하려는 빅테크의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CEO와 10년 전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펼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구글 포 코리아 2026' 행사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9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과 엔비디아는 각각 다른 접근 방식으로 한국 기업들과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두 글로벌 업체가 AI 기술을 실제 산업에 적용하는 이른바 ‘피지컬 AI’ 시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구글 측 핵심 인사인 허사비스 CEO는 방한 기간 동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주요 기업과 연쇄 회동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거대 AI 모델 경쟁을 넘어 제조, 모빌리티, 로보틱스 등 산업 전반으로 기술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공급망과 산업 데이터 확보가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엔비디아는 보다 직접적인 ‘현실 적용’에 방점을 찍고 있다. 매디슨 황 이사는 국내 기업 및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로봇, 디지털 트윈, 자율 시스템 등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AI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GPU 중심의 연산 인프라를 넘어 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김민표 두산로보틱스 대표와 매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 이사가 29일 경기도 성남시 두산로보틱스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대화하는 모습. [사진=두산로보틱스]
양사의 행보가 동시에 이뤄진 배경에는 한국의 산업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공급망과 현대차·LG 등 글로벌 제조 기반을 동시에 갖춘 국가다. 여기에 산업 밀집도가 높아 기술 실증과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AI 모델 개발부터 반도체, 실제 산업 적용까지 한 번에 검증할 수 있는 ‘완결형 테스트베드’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협력 확대 흐름 이면에는 주도권 경쟁도 감지된다. 구글은 자체 AI 모델과 칩(TPU)을 앞세워 생태계 확장을 노리고, 엔비디아는 GPU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산업 전반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 시장을 매개로 한 ‘모델 대 인프라’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동시 방한을 한국 산업에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AI와 반도체, 제조 역량을 결합할 경우 글로벌 AI 밸류체인의 핵심 축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플랫폼 주도권을 해외 기업에 의존할 경우 부가가치가 해외로 유출되는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AI 경쟁이 데이터센터 중심에서 실제 산업으로 옮겨가는 전환기”라며 “한국이 기술 협력의 중심에 서는 것은 분명한 기회지만, 주도권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산업 지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글로벌 업체의 이번 동시 방한은 단순한 교류를 넘어, AI가 현실 산업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한층 부각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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