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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청죽靑竹

육십 년을 걸어온 길 위로 산조 가락 휘날린다. 상석에 앉은 왼손잡이 젓대를 중심으로 제자들은 두루마리처럼 펼쳐 앉았다.

청죽靑竹

[백목련] 이향숙 수필가

육십 년을 걸어온 길 위로 산조 가락 휘날린다. 상석에 앉은 왼손잡이 젓대를 중심으로 제자들은 두루마리처럼 펼쳐 앉았다.

무엇 하나 부러울 일이 없을 것 같은 명인, 안정적인 생활과 명예를 모두 거머쥔 것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소년의 집 뒤로 대나무숲은 무성했다. 바깥마당 가장자리부터 농토로 이루어진 마을은 흥얼거리는 노랫가락도 범상치 않았다. 어려서부터 대금을 끼고 살았으나 농사를 지어야 했던 아버지와 거문고 명인인 숙부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귀가 밝아졌다. 중학교 때 아버지의 대금을 잡아보고 매력에 빠져 여성 유랑 극단을 찾아가게 된다. 상급학교로의 진학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연습이 곧 실전인 열 일 곱살 소년은 대금을 배우고 연주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대금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수업료도 제대로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민속악의 천재, 한일섭 선생의 문하생이 된다. 병고에 시달리던 스승은 소년에게 석 달 동안 대금을 가르치시고 영면에 드셨다. 그 후 서울예술단에서 무용 반주를 하며 끼니를 해결하지만 거처도 일정치 않았다. 그럼에도 새벽마다 인적 드문 산에 올라 대금소리로 잠든 숲을 깨웠다.

어린 시절 소 꼴을 베다가 오른손을 다치는 바람에 왼손잡이가 된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덕분에 서른을 겨우 넘겨 전주 대사습에 참여하여 명인의 반열에 오른다.

한일섭 선생에게 구음으로 배운 산조 가락을 실제 악기에 올려 대금산조 원장현류를 완성한다. 지금 무대에서 연주하는 곡은 한바탕을 짧게 연주하는 짧은 산조에 속한다. 문외한인 이 사람이 들어도 변주와 변청을 다양하게 구사하여 울창한 대나무숲에 들어앉은 기분을 들게 한다. 미세한 바람의 움직임마저 온몸으로 받아들여 노닐다 보면 내 속에 있던 오욕칠정이 제 마음대로 휘몰아치다 사뿐히 내려앉아 평온을 얻는다.

그러나 실전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명문대 출신 아내의 조언으로 야간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가고 결국 대학 강단에 서게 된다. 이제 명인으로 살아온 그는 더 이상 바랄 것은 없으며 후학에 힘쓰는 것 뿐이란다. 형편이 어려운 어린 제자들이 찾아오면 더 열심히 가르침을 준다고 한다. 본인의 고단했던 시절에 도움을 주셨던 스승님들께 입었던 은혜를 갚는 길이라 하는 그의 인성 또한 명인을 넘어선 인간문화재가 아닌가 한다.

오늘의 무대는 ‘청죽靑竹’이라는 부제로 올려졌다. 푸른 대나무는 그의 노익장을 상징한다. 고독한 길, 우리 것임에도 뒤로 한걸음 물러나 있어야 했던 국악이 늘 푸르른 대나무처럼 결코 늙지 않기를, 그리고 명인의 제자들 또한 그 의 정신을 따르며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람한다. 개인적으로 십여 년 전 금현국악원에서 우연한 기회에 뵈었었는데 그때나 이때나 푸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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