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서울 고가 아파트 시장이 기형적 구조로 변했다. 담보대출 한도를 2억 원으로 죄면서 과도한 금융 대출을 지렛대 삼은 매수자들의 진입은 차단했지만 대부업체나 개인을 통한 사금융 우회로는 청약·매매 시장을 가리지 않고 확장하는 추세다. 막대한 유동성을 쥔 현금 자산가들의 매수세까지 겹치면서 시장은 제도권 금융 밖에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28일 서울경제신문이 상업용 부동산 종합 서비스기업 알스퀘어의 공적 장부 조회 서비스 ‘데이터허브’를 활용해 규제 본격화 이후 실거래 및 등기가 완료된 압구정 신현대(9·11·12차)와 잠실주공5단지의 등기부 116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사금융 이용 및 대출 우회로 보이는 거래가 부쩍 늘었다.
신현대의 경우 규제 이후 거래된 40건 중 4건, 잠실주공5단지는 76건 중 7건이 대부업체, 개인, 일반 법인으로부터 대출 한도 2억 원을 훌쩍 넘는 최고 50억 원대의 거액 근저당을 설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농협 등 상호금융 등을 통해 한도를 초과한 수십억 원이 거래 직후 근저당으로 설정된 사례도 각각 2건씩 확인됐다. 전체 거래의 12~15%에 달하는 수치다. 한도 제한 없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 규제만 받던 2023년부터 2025년 6월까지의 거래 51건을 무작위로 추출해 살폈을 때 이 같은 거래는 총 2건에 그쳤다는 점에서 증가세도 확연했다.
두 단지는 재건축에 속도가 붙은 강남권 대표 단지로 평균 매매가가 각각 80억 원대, 40억 원대에 달해 규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제도권 금융의 문턱이 높아지자 매수자들이 다양한 경로로 자금 조달을 모색한 결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출 규제로 가장 불만이 큰 수요자 집단이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이나 전문직”이라며 “1·2금융권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 매수에 나선 셈으로 등기부에 잡히지 않는 가족 간 차용 등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등기부를 살펴보면 대출 우회로를 활용해 주택 매수 자금을 마련한 정황은 다수 의심된다. 7월 거래된 신현대 9차의 경우 대부업체 두 곳으로부터 매매가의 80%에 해당하는 57억 원의 근저당이 소유권 이전 등기와 같은 날 설정됐다. 올해 1월 거래된 잠실주공5단지 역시 매매가의 60%에 해당하는 25억 원에 대한 대부업체 근저당이 소유권 이전 등기일에 동시 설정됐다. 잔금을 치른 직후 한 협동조합으로부터 30억 원 규모의 근저당이 설정되거나 두 달 뒤 개인 이름으로 16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된 경우도 있다.
기형적 거래는 청약시장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이른바 ‘30억 로또 청약’으로 기대를 모으는 서초구 ‘디에이치 반포124’ 분양을 앞두고 대출 규제로 자금줄이 막힌 고가점 무주택자와 자금을 댈 투자자를 연결해 차익을 나누려는 ‘신종 떴다방’이 등장했다. 가점은 높지만 현금을 마련하지 못해 청약 기회를 놓칠 위기에 놓인 무주택자들의 빈틈을 파고든 변종 사금융인 셈이다.
‘우회로’를 찾지 못해 기회를 놓친 실수요자들의 자리는 현금 부자들이 차지했다. 대출 규제 이후 매매된 116건 중 절반을 웃도는 66건(56.9%)은 근저당 설정이 전혀 없었다. 신현대의 경우 규제 이후 거래된 40건 중 28건(70%)이 금융권 담보대출을 1원도 끼지 않은 ‘무근저당’ 거래였다. 잠실주공5단지도 76건 중 38건(50%)에 근저당 설정이 없어 전액 현금 거래로 추정됐다.
규제 이전에는 금융권 대출을 이용한 거래 비중이 더 높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대책 이전에는 제도권 금융을 이용한 거래가 전체 33건 중 25건(75.8%)으로 압도적인 반면 무근저당 거래는 7건(21.2%)에 그쳤다. 신현대 역시 대책 이전에는 채권최고액 10억 원 이상의 대출을 낀 거래가 절반(18건 중 9건)에 달했다.
매수자들의 연령대와 주소지 면면을 살펴봐도 시장의 변화는 감지됐다. 압구정신현대는 40세 미만이 매수한 가구가 16가구(40%)에 달했으며 이중 절반인 8가구는 60억~128억 원대 아파트를 ‘단독 명의’로 취득한 사례였다. 또 2030이 사들인 단독 명의 8가구 중 5건은 담보대출을 1원도 끼지 않은 거래였다. 매수자 주소지는 강남3구뿐 아니라 마포·용산·성동 등 서울 비강남권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방 거주자까지 골고루 분포하는 등 전국구 자산가들이 모였다.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가 ‘무리한 영끌’이나 사업자 대출 유용 등을 막아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확보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사금융 이용과 자산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현금 자산가가 대기하는 상황에 대출까지 풀리면 집값 오름세를 감당할 수 없는 만큼 규제 완화는 시기상조로 평가하고 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지금은 전반적인 공급 부족과 다주택자 규제로 인한 전월세 물량 급감과 ‘똘똘한 한 채’ 등으로 주요 입지 아파트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데 대출 규제와 세금 등으로 가까스로 눌러놓은 상황”이라며 “서울 주요 입지의 공급 물량을 빨리 확보한 후 불필요한 규제를 조금씩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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