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랑코 모딜리아니는 소장학자 시절인 1954년 ‘생애주기 가설’을 발표했다. 사람은 지금의 소득액뿐만 아니라 남은 생을 염두에 두고 현재의 소비를 결정한다는 주장이었다. 저축의 가장 중요한 동기로는 노후 대비가 꼽혔다.
생애주기라는 안경을 쓰면 연령대별 수입과 씀씀이 특징도 한눈에 들어왔다. 젊은 사람은 돈이 없고, 중년에 부가 늘어난다. 은퇴 직전에 정점에 이른 자산은 은퇴 후 식비와 주거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각하는 수순을 밟는다.
인간의 경제 활동에 ‘시간’이라는 변수의 영향을 부각시킨 의미는 작지 않았다. 결혼과 출산까지 경제적 요인으로 분석한 게리 베커도 경제 주체의 생애주기별 선택에 주목했다. 1975년 출간한 <생애주기에서 시간과 재화의 배분>에서 베커는 “가구는 예상되는 미래 사건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시간이 희소한 자원이라는 점을 따진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틀에 갇히지 않는다. ‘부의 전성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소비 패턴도 일정하지 않다. 노인이 돼서도 저축을 열심히 하는 사람, 은퇴 직전에야 허둥지둥 노후 대비에 나서는 이가 혼재한다. 시대별·문화별 양상도 제각각이다.
국가데이터처가 한국인의 연령에 따른 소비와 노동소득 간 관계를 분석한 ‘2024년 국민이전계정’을 발표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28세 때 소비보다 소득이 많은 ‘흑자 인생’에 진입한다. 흑자 인생의 정점은 45세(1932만원), 종료 시점은 60세다. 어릴 때는 노동 소득이 없어서 적자고, 61세 이후에는 노동 소득은 줄고 의료비 지출은 늘어난 탓에 ‘적자 인생’으로 돌아간다.
큰 주기는 비슷해도 세부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다. 적자 전환 연령은 2010년 56세에서 5년 늦춰졌다. 61세 시점 적자 규모도 한 해 만에 138만원이나 줄었다. 과거보다 오래 일하는 고령층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변화에도 100세 시대에 ‘흑자 인생’은 여전히 33년에 불과하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한 발이라도 더 뛰라는 게 ‘생애주기 수지’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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