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박주범 기자|설립 1년된 뉴욕의 신생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일 오브 애니(Isle of Any)가 인공지능과 암호화폐라는, 자칫 차갑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첨단 기술을 가장 인간적인 서사로 풀어내어 주목받고 있다. 오픈AI 및 코인베이스(Coinbase)와 함께 선보인 최신 캠페인은 현재 마케팅의 핵심 키워드가 기술적 과시가 아닌 정서적 공감에 있음을 보여준다.
챗지피티, 영화의 '라스트 씬'으로 답하다
오픈AI의 챗지피티의 미니무비 스타일 캠페인은 기능 설명을 철저히 배제하고,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집중한다. 데릭 시안프랜스(Derek Cianfrance) 감독이 연출한 두 편의 영상은 모두 이야기의 ‘끝’에서 시작한다.
고장난 아버지의 트럭을 고치려는 형제와 레스토랑 창업을 준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설명 없이 펼쳐지며, 시청자는 이미 진행 중인 삶의 한 장면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캠페인 영상에서 챗지피티의 답변이 엔딩 크레딧처럼 흐른다. (영상 = 인스타그램@isleofany)
이때 챗지피티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대신 문제 해결을 돕는 조용한 존재로 기능한다. 특히 챗지피티의 대답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흐르는 장면은 사용자가 AI와 대화를 나눈 후 얻은 해답이나 결과물이 단순히 정보로 끝나지 않고, 사용자의 삶이라는 영화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된 뒤 남는 여운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또, 엔딩 크레딧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조력자를 조명하듯 챗지피티를 주인공의 삶이라는 영화를 함께 만든 공동 제작자로 포지셔닝한다. 사용자가 주인공이라면 AI는 그 뒤에서 서사를 지원하는 스태프의 역할을 하며, 챗지피티의 답변은 필요한 순간에 도착한 지혜로 작동한다.
오픈AI의 캠페인 영상은 챗지피티의 답변을 영화 엔딩 크레딧처럼 활용하여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 = 인스타그램@isleofany)
음악은 영상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60년대 영국 밴드 ‘디 액션(The Action)’의 ‘브레인(Brain)’과 조 코커(Joe Cocker)의 ‘더 레터(The Letter)’ 라이브 음원은 영상에 깊은 향수를 더하며, 기술이 인간의 서사를 완성하는 따뜻한 도구임을 강조한다. 제작진은 클라이맥스를 연출할 수 있는 적절한 구성과 악기 편성을 중심으로 장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마무리하는 기준으로 음악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코인베이스, "금융 시스템의 NPC에서 탈출하라"
지난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선보인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광고 ‘탈출구(Your Way Out)’는 레트로 비디오 게임 미학을 통해 현대 금융 시스템을 은유한다.
오스카 허드슨(Oscar Hudson) 감독이 연출한 캠페인 영상에서 인간은 NPC(플레이 불가능 캐릭터)로 설정되어 통제된 시스템 속에서 반복적인 선택만을 강요받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후 주인공이 시스템을 벗어나며 현실로 이동하는 과정은 경제적 자율성의 회복을 상징한다.
1세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상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대신 실제 세트와 아날로그 기법을 활용해 가상 세계를 구현했다. 배우들은 게임 캐릭터처럼 움직이도록 훈련받았고, 의상과 세트는 픽셀 단위로 제작됐다. 인간의 몸으로 구현된 기계적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기존 시스템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며, 주인공이 다시 인간의 표정을 되찾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캠페인 비하인드 영상은 실제 배우와 세트, 의상, 세트 디자인, 안무를 활용하여 가상 세계의 느낌을 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상 = youtube@coinbase)
나 자신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노래하는 올드 팝 'I've Gotta Be Me'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답답한 가상 세계를 부수고 실제 인간의 얼굴과 표정을 되찾으면서 시스템 밖의 현실로 질주하는 모습은, 영화 <트루먼 쇼>에서 가짜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의 해방감을 재현한다.
이 캠페인은 복잡한 금융 기술이나 암호화폐의 기능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게임에서 탈출한다’는 직관적인 비유와 사용자의 삶에 밀착된 이야기로 내러티브의 힘을 강조한다. 제작진은 스토리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 "기능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술을 설명하지 않고, 삶을 보여주다
두 기술 회사의 캠페인 영상은 기술이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삶과 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음을 일깨운다. 기술은 사용자에게 해답을 제공하는 내부 시스템(챗지피티)이자, 때로는 벗어나야 할 구조(코인베이스)로 작동한다. 따라서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은 기술의 스펙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구축한 시스템 안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는가를 설명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이 일상이 된 지금, 소비자는 기능이 아니라 맥락과 감정을 통해 브랜드를 이해한다. 복잡한 기술일수록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이유다.
코인베이스의 새 캠페인은 시스템에서 탈출하는 'NPC'의 이야기를 보다 영화적인 접근 방식으로 보여준다. (사진 = 인스타그램@isleofany)
이러한 변화는 광고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능 설명보다 인간의 경험과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명확한 메시지 전달 대신 이야기의 일부만을 제시해 더 큰 서사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도록 구성한다. 고장난 트럭, 실제 세트, 저해상도 필름 질감,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 등 아날로그적 요소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핵심적인 문법으로 작동한다. ‘엔딩 크레딧’이나 ‘NPC 탈출’과 같은 시네마틱 장치는 대중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감정 구조를 활용해 브랜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개인의 삶을 공감하게 만드는 강력한 서사 형식이자, 브랜드 철학을 몰입감 있게 전달하는 최고의 스토리텔링 도구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이야기다. 기술은 그 이야기를 완성하는 도구일 뿐이다. 아일 오브 애니의 작업은 이러한 원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기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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