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투자계약상 주식매수청구권 조항을 근거로 한 창업자의 개인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했다. ‘투자인가, 대출인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신한캐피탈-어반베이스 사건이 3년여 만에 사법부 최고기관의 판단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오경미, 주심 엄상필)는 지난 4월 30일 신한캐피탈이 하진우 전 어반베이스 대표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 상고심(2026다200790)에서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하 전 대표는 투자 원금 5억 원에 연복리 15% 이자 8억 원을 더한 총 13억 원을 신한캐피탈에 지급해야 한다. 판결 이후에도 완제 시까지 이자는 매일 계속 불어나는 구조다.
8년 만에 160%, “많아 보이기는 하다”
신한캐피탈은 2017년 어반베이스에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5억 원을 투자했다. 투자계약서에는 ‘회생절차 개시 시 투자자가 이해관계인(창업자)에게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과 함께 연복리 15% 이자 조항이 담겨 있었다.
2023년 어반베이스가 회생절차를 신청하자 신한캐피탈은 이 조항을 근거로 하 전 대표 개인에게 투자금 회수를 요구했다. 8년간 누적 수익률 160%. 하 전 대표는 “배임이나 횡령 등 귀책사유 없이 성실하게 경영했다”며 반발했지만, 1·2·3심 모두 신한캐피탈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해야 할 주식대금이 많아 보이기는 하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도 “피고가 이러한 위험을 해소할 의도였다면, 관련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했어야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2심은 “피고는 투자 유치를 통해 사업 성공 시 막대한 이익을 누릴 기회를 얻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투자자에게 특정 상황에서의 투자금 회수를 보장하는 약정을 한 것”이라며 “당사자 간 상호 이익과 위험의 균형을 고려한 것으로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상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계약의 자유 vs 창업자 보호, 엇갈린 방향
이번 판결은 행정부·입법부와 사법부의 판단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벤처투자촉진법은 2022년 고의·과실 없는 창업자에 대한 연대책임을 금지하도록 개정됐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업권 자율규제 모범규준을 통해 창업자 개인 연대책임 부과 관행을 선제적으로 지양하겠다고 공식화했다. 김종민 의원(2025년 2월)과 안철수 의원(2026년 2월)이 신기술사업금융업 영역까지 연대책임 금지를 확대하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지만, 1년 넘게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법원은 계약의 자유를 우선했다. 신한캐피탈은 벤처캐피탈이 아닌 신기술사업금융사여서 벤처투자촉진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고, 법원은 2017년 체결된 계약서의 조항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같은 날, 1000억 벤처펀드 출범
판결이 선고된 4월 30일, 신한금융그룹은 금융위원회·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1,000억 원 규모의 민간벤처모펀드 출범을 발표했다. 신한캐피탈도 출자자로 참여하며, 레버리지 효과를 더하면 총 운용 규모는 1조 원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투자 대상은 AI·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 유망 스타트업이다.
같은 날 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연대책임 판결이 확정되고, 스타트업 투자펀드가 출범한 것이다.
“다시 도전할 기회를 달라”
하 전 대표는 대법원 판결 직후인 5월 5일, 신한금융그룹 진옥동 회장에게 공개 서한을 발송했다.
하 전 대표는 서한에서 “창업가이기 이전에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사법부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한때 신한이 선한 의지로 투자했던 수많은 창업가들에게 연대책임의 족쇄가 아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그는 “저 하나만을 위한 부탁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신한과 함께하려는 수많은 창업자들에게 신한이 어떤 금융 파트너인지 보여주는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신한금융그룹 측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재창업 프로그램 자격까지 영향
하 전 대표는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의 대국민 창업 오디션 <모두의 창업>에 지원한 상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기본 신청 자격 요건 중 하나는 “금융기관에 채무불이행이 없는 자”다.
신한캐피탈이 판결을 근거로 13억 원 채권을 실제 집행할 경우, 하 전 대표는 채무불이행자로 분류돼 정부 재창업 프로그램 지원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제도적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동일 계약서, 다른 선택
2017년 어반베이스 Series A 투자 당시 신한캐피탈과 함께 투자에 참여한 다른 투자사들 역시 동일한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회생절차 이후 창업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곳은 신한캐피탈이 유일하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향후 VC 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있다. 계약서에 유사한 조항이 있는 경우 투자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LP에 대한 배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계약의 자유를 인정했고, 행정부는 창업자 보호 제도를 정비 중이며, 입법부는 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은 나왔지만,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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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요한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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