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련 동화작가
편리하게, 편안하게, 고통 없이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이런 욕망이 밥솥에도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밖에서도 집안을 들여다보면서 관리하는 세상으로 발전시켰다. 통증의 정도를 낮춰주는 무통주사는 수술 후 필수요건이 되었다. 참으로 멋진 신세계다. 이처럼 멋진 신세계는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까?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안정효/소담출판사)'를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복잡해진 머릿속이 책을 덮는 순간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책 속에 펼쳐진 신세계가 조금도 멋지지 않아서였다.
저자가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1932년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 있던 시절이었다. 세계가 전쟁과 가난, 정치적 혼란에 흔들리던 시대다. 인간이 시험관에서 태어나고, 유전자에 따라 능력이 설계되며, 행복마저 국가가 관리하는 세상. 당시에는 허황하고 황당한 공상이었을 이야기다. 그런데 시험관 아기가 일반화된 시대를 살고 있으니 수십 년 뒤의 세상을 그려낸 그의 상상력이 얼마나 예리했는지 놀라운 건 사실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미래 사회다. 사람은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거대한 부화장에서 생산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계급이 결정되고, 그 계급에 만족하도록 교육받는다. 사랑도 가족도 불필요하다. 슬픔과 불안은 '소마' 한 알이면 사라진다. 누구도 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고,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자유나 깊은 사랑,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순간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과연 이런 세상이 멋진 신세계일까, 회의하는 순간 자연 출생한 존이 등장한다. 야만인으로 그려진 존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적인 면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어머니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존.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체제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최고 권력자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담 중에 나온 존의 외침이다. 고통도 인간다운 삶의 일부다. 자유 없는 삶보다 고통스럽더라도 자유롭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 펼쳐지는 곳이야말로 진정 멋진 신세계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격하게 공감했다. 편안함보다 자유를, 안전보다 인간다운 삶을 선택한 존의 결정에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스스로 선택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출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얻은 아기는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감수하고, 양육에 최선을 다하는 모성애와 부성애는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절대가치가 아닌가.
소설 속 사람들은 괴로우면 소마를 먹는다. 약 한 알이 모든 감정을 지워 준다. 그 장면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현실의 마약 문제가 떠올랐다. 고통을 견디기보다 잊으려는 유혹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그러나 고통을 지운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마주하고 견디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성장한다. 소마는 고통뿐 아니라 성장의 기회까지 함께 지워 버리는 약이란 사실이 씁쓸했다. 더욱 씁쓸한 일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은 슬프기까지 했다. 태어나는 순간 계급이 정해지고 평생 그 운명을 살아가면서도 누구 하나 질문하지 않는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유를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기쁨은 슬픔의 이면이다. 희망은 절망을 견뎌 본 사람에게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실패를 모른다면 성취의 기쁨도 크지 않을 것이다. 이별 없는 만남이 얼마나 소중할까. 나는 희로애락을 다 좋아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감정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언어인 까닭이다.
기술은 앞으로도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더 똑똑해지고 생명공학은 더 정교해질 것이다. 언젠가는 헉슬리가 상상했던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현실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편리한 세상이 온다 해도 인간의 자유와 사랑, 고통을 견디며 성장하는 힘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제 '멋진 신세계'가 반대로 읽힌다. 헉슬리가 보여 준 세계는 우리가 진짜 멋진 세상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역설이라는 생각이다. 진정한 신세계는 고통이 사라진 세상이 아니다. 고통마저 삶의 의미로 품을 수 있는 세상이다. 누구도 대신 선택해 주지 않는 자유 속에서 사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세상. 얼마나 멋진가. 장세련 동화작가
장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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